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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영화 "혈의 누"

by kirang 2009. 6. 18.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원치 않는 사람은 읽지 마시길) 


  영화를 보기 전 첫번째로 들었던 의문은 왜 제목을 "혈의 누"로 지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주지하다시피 "혈의 누"는 이인직이 지은 신소설의 제목이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은 19세기 초의 조선시대. 무려 100년의 시차가 난다. 아무래도 뜬금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방송 등을 통해 노출된 일부 장면들을 보면 조선 군관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권총을 쏜다든지 하는 다소 낯선 장면이 등장한다. 때문에 이 영화가 역사적 고증과는 거리가 먼 국적불명의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혈의 누"는 여러가지 면에서 "장미의 이름"을 연상케 한다. 중세가 끝나가고 있는 시간적 배경, 고립된 공간, 예정된 형태의 연쇄 살인, 그리고 근대적 마인드를 가지고 사건을 풀어 나가는 주인공. 원규는 등장하자마자 망원경과 안경이라는 근대적 지성의 상징물을 사용하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데, 이는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 수사가 안경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장미의 이름"의 아류로 주저앉지 않는다. 중반 이후부터는 제법 독자적인 화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관객들의 머리에서 "장미의 이름"의 그림자를 지워나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장미의 이름"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을 삽입하여 범인에 대한 관객들의 의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놓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예컨대 김치성 대감은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극단적 보수주의자 호르헤 신부를 연상케 하지 않는가!

 

  "혈의 누"에서 지적받을 부분은 예고대로 시행되는 연쇄 살인들에 우연적 요소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범인이 배에 불을 지르고 난 직후 범행 목표였던 발고자 중 한 명이 안성맞춤으로 타인에게 독살당한다. 독살 혐의로 감금되어있던 또 다른 발고자는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창밖을 내다보다 범인의 손에 걸려 질식해 죽는다. 문초를 받던 또 다른 발고자는 작살에 몸이 꿰어 끌려가는데,  하필 그의 뒤쪽에 바위가 놓여 있어 머리가 부서져 죽는다. 만들어 놓은 설정을 밀어 붙이기 위해 개연성이 포기된 듯한 인상이다. 그 외에도 원규에게 붙잡힌 발고자들이 다른 발고자들의 정체를 죽는 순간까지 감추려 들었던 이유가 딱히 제시되지 못하는 등 스토리 진행의 추진력 역할을 하는 주요 설정에서 설득력의 부족함이 노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문제점은 작품 감상에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영화의 전반적인 짜임새가 견실한 편인데다, 정서적 울림이 큰 충격적 영상들이 쉴 새 없이 몰아치기 때문이다. 충격요법으로 관객들의 혼을 빼놓으려 든다는 점에서 꼼수라면 꼼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같이 잔인한 장면만 보면 놀라 정신이 혼미해지는 유형의 사람에게는 분명 효과적이었다.

 

  "혈의 누"에서 가장 좋은 점은 스릴러물임을 내세우면서도 단순한 오락 영화 이상의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고, 계도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목적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혈의 누"는 평범한 인간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사악함'의 일단을 들추려 한다. 일상을 영위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그 스스로 악행을 주도하거나 실행하지는 않지만 다른 강자의 악행을 용인함으로써 소극적으로 악에 동참하곤 한다. 우리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불의에 눈을 감고, 손바닥만한 이익을 위해 악행을 방조한다. 그러면서도 일이 잘못되어 악행의 주도자가 처단받는 때가 오면 떼로 몰려나와 저주와 욕설을 퍼부으며 스스로의 순결성을 증명하려 든다. 영화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인공 원규는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끝까지 양심과 원칙을 지키려 했지만, 결국 섬을 떠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연의 손수건을 바다에 버리고 만다. 그마저 현실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그의 총에 맞아 죽은 인권의 말대로 원규는 평생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며 위선적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인권의 저주가 원규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저주라는 점이 엔딩 크레딧을 보면 한기를 느끼게 한다.

 

* 덧붙임: 코미디 전문 배우로 알려진 차승원의 캐스팅에 우려가 있었으나 기대 이상의 결과물이 나왔다. 이 작품으로 차승원은 자신이 코미디 외의 영역에서도 전혀 어색함없이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훌륭하게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