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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과 잡담

'인문학 무당' 이지성에 대한 비판

by kirang 2015. 6. 29.

  이지성이라는 사람이 있다. 자칭인지 타칭인지 '인문학 전도사'라는 호칭이 붙은 이인데, 인문학 관련한 책도 쓰고 강연도 꽤 많이 하는 나름 유명한 인물인 모양이다. 이 사람에 대해 처음 인지하게 된 것은 1년 전 쯤이었다. TV 채널을 돌리다 보니 방송에서 멀끔하게 생긴 사람이 한 명 나와 인문학 이야기를 하고 있길래 흥미가 생겨 2~3분 정도 지켜 보았는데, 딱 보아도 사기꾼 냄새가 농후하여 실소하며 채널을 돌린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한참 잊고 지냈는데, 며칠 전 모 신문의 문화 섹션을 보던 중 이지성이라는 사람이 쓴 "생각하는 인문학"이라는 책의 베스트셀러 순위가 크게 올랐다는 기사를 접하였다. 과연 어떤 책인가 검색해 보다가 어이가 없어 이 포스팅을 작성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지성은 인문학에 대해 떠들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며, 오히려 인문학적 지성과는 정반대쪽에 있는 사람이다. 그가 쓴 책의 내용을 보니 이건 인문학이 아니라 무속 신앙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면 정신이 깨이고, 세상의 이치를 일이관지하고, 좋은 직장도 얻고,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해지고...... 인문학 고전을 읽으면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불치병도 낫는다고 떠드는 수준이다. 이 정도면 '인문학 무당'이라고 불러도 되겠다.대체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였길래 이런 평가를 내리는가. 다음은 그의 책 "생각하는 인문학"의 일부이다.

    1. "격몽요결"과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반복적으로 읽어라. 되도록 두 눈을 감고 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반복해서 읽기 바란다. 이 두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두뇌 안에 새로운 생각 시스템이 자리잡을 수 있게 기초공사를 한다는 의미다. "괴테와의 대화"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을 함께 읽으면 더욱 좋다.

    2. "근사록" "퇴계선집" "남명집" "성호사설" "일득록"을 읽어라. 좋은 구절들을 따로 뽑아서 여러 번 필사하고 암송하라. 이 책들을 소화한다는 것은 새로운 생각 시스템의 뼈대를 만든다는 의미다. "학문의 진보" "방법서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을 함께 읽으면 더욱 좋다.

    3. "논어" "대학" "중용" "맹자", 즉 사서와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어라. 이 책들 역시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공자나 소크라테스처럼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읽고 필사하고 암송하고 사색하라. 이 작업을 한다는 것은 두뇌 안에 새로운 생각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자리잡게 만든다는 의미다.

이지성,  "생각하는 인문학", 차이, 83쪽.

  정말이지, 이 부분을 보고 배를 잡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이지성이 줄줄 읊어대는 저 책들, 정작 본인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다. 저런 책들을 읽는다고 생각 시스템의 기초공사니, 뼈대를 만드느니, 자리잡게 만드느니 하고 떠드는 것 자체가 야바위다.

  저런 이야기를 하려면 구체적으로 '왜' 그런지에 대해 설득력 있게 제시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언급된 책 목록이 대개 고전들이니 읽으면 당연히 좋은 책들이다. 하지만 수많은 고전 중에 왜 하필이면 이 책들인가? "격몽요결"을 읽는 게 왜 생각 시스템의 기초 공사가 되나? "논어"나 "맹자"를 읽는 건 새로운 생각 시스템이 자리잡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더 나아가 생각 시스템의 기초 공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뼈대는 무엇이고, 자리잡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각각 무슨 차이인가? 알 수 없다. 나만 알 수 없는 게 아니라 이지성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자기도 무슨 소리인지 모른 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드는 말'의 전형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전문 용어로 '헛소리'라고 부른다.

  이지성이 최근 한 인터뷰를 살펴보자. 

 네이버 TV Cast 65회 이지성(생각하는 인문학)편

http://tvcast.naver.com/v/428855

 

65회 이지성(생각하는 인문학)편

tbs TV책방 북소리 | 인문학 열풍의 주인공 중 하나였던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이지성 작가가 인문학적인 삶을 위한 지침서 같은 책 한 권을 출간했습니다. 바로 <생각하는 인문학> 인데요. 이번

tv.naver.com

 인터뷰에서 아나운서가    
Q. 독서량이 얼마나 되시는지?(13분 40초)
라는 질문을 던지자 이지성은 자기 자랑을 시작한다. 

  겨우 20~30페이지 정도 되는 글을 쓰기 위해 자기가 구입한 책만 500만 원이라고 하며, 한 달 내내 밖에도 안 나가고 그 책들을 봤다고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자기가 멋지다고 생각되면서도 정신병자가 아닌가(농담조) 하는 생각도 들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리딩으로 리드하라" "생각하는 인문학"을 쓰기 위해 2,000만~3,000만 원어치의 책을 구입했다고 재차 강조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지성의 대답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의 지적 수준을 돈으로 환산해 제시하는 얄팍함이다. 장담하건대,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가 읽은 책의 양을 돈으로 환산해 자랑하는 걸 평생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그런 식으로 자랑하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책'을 읽는 것이기 때문에 책값이라는 것은 오히려 굴레이다. 책값이 오를수록 아쉬워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게 독서가들의 일반적인 태도이며, 할인이든 중고든 싸게 구입하면 더 좋아하는 게 독서가들의 마인드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읽는 것'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지성의 발언은 맥락이 엉뚱한 데 있다. 이지성의 자랑 포인트는 '나는 책을 구입하는 데 2,000~3,000만 원이나 쓰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데 있다. 방점이 '책'이 아니라 '2,000~3,000만 원'에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지성은 진짜 독서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게 '독서량'은 '권 수'도 아니고 'OOO원'로 환원되는 성격의 것이다(물론 읽은 책의 권수를 자랑하는 것도 유치한 행위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분명히 독서량을 물었는데 얼마치의 책을 샀다고 대답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을 샀다는 것은 책을 읽었다는 것과 엄연히 다르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많다. 바빠서 그럴 수도 있고 게을러서 그럴 수도 있다. 혹은 자료로서 일단 구입해 놓고 나중에 필요할 때 읽으려고 그럴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이지성의 책 구입은 '자료 확보'의 성격이 강하다. 책을 읽으려는 목적에서 사는 사람들은 대개 몇 권 단위로 책을 산다.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허용된 독서 가능한 시간을 감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료로서 책을 구입하는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자료로서의 책은 모두 읽을 필요가 없다. 일단 많이 확보해 놓고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읽으면 된다. 몇 백 만원, 몇 천 만원씩 책을 몰아서 구입하는 이지성의 책 구입 형태는 전형적인 '자료 확보형'이다.

  그렇다면 이지성에게 '자료 확보'란 무슨 목적에서의 자료 확보일까. 당연히 '책을 쓰기 위한 자료 확보'이다. 아마 이지성은 온라인 서점의 인문학 카테고리에 있는 책목록을 드르륵 긁어서 구입하고, 이 책들을 훑어보며 쓸만한 경구를 찾아 짜깁기 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건 독서라 할 수 없다. 그냥 '작업'일 뿐이다. 그것을 이지성 본인도 어느 정도는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독서량에 대한 질문에 대해 '얼마치의 책을 샀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지성의 '독서 형태'는 독서법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34분 30초). 이지성은 자기는 평소 아무 거나 집히는 대로 무질서하게 책을 읽지만 책을 집필할 때는 전투적으로 독서를 한다고 대답한다. 다시 말하지만, 뭔가를 쓰기 위해서 자료를 훑는 것은 독서가 아니다. 작업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걸 눈다래끼가 날 정도로 '전투적인 독서'라고 허풍을 친다. 

  이지성은 고전을 필사하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도 재미있는 점이 발견된다. 그는 자신의 필사법을 소개하는데, 처음에는 손으로 일일히 필사를 하였으나 손이 너무 아파서 워드로 필사(?)를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책의 중요한 부분을 복사해서 그 여백에다 필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안이 벙벙해지는 필사법(?)이다.

  필사라는 것은 시간을 투자해 원전을 다른 곳에 옮겨 적으며 그 내용을 음미하는 데 의미가 있다. 한 권의 책을 다 옮겨 적으면 이 또한 소장할 가치가 있는 한 권의 책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복사를 해서 그 복사지 여백에다 필사를 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의미로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이지성은  혹시 중고등학교 때 암기과목 내용을 달달 외우며 만들었던 '깜지쓰기' 같은 걸 필사라고 이야기 하는 것일까. 자신의 필사법에 대한 이지성의 설명을 보면 책을 쓰기 위한 작업의 일환인 내용 요약이나 메모, 자료 스크랩을 '필사'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과장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이지성의 글과 그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지성이라는 사람이 실제로는 별로 독서가 같지도 않다는 것, 그리고 그 대단한 인문학 고전들을 섭렵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치고는 지적 수준이 처참할 정도로 얄팍하다는 것이다. 그의 정신적 성숙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이지성의 과거 인터뷰를 보면 "열심히 사느라 연애는 언제 하세요?"라는 질문에 대뜸 미인대회 출신만 세 번 사귀었다고 대답한다.

(한겨레 인터뷰 2012년-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39206.html)

 

‘꿈꾸는 다락방’ 이지성, 왕따·멸시 딛고…

[김두식의 고백] ‘자기계발서 작가’ 이지성씨 빈민가에서 무명작가로 15년, 난 밑바닥을 알기 때문에 독자들이 내 책을 많이 읽고 희망 얻으면 보람이 있죠

www.hani.co.kr

  이지성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강한 콤플렉스와 과시욕을 감지할 수 있는 장면이다. 

  출판사로부터 80회에 이를 정도로 원고를 퇴짜맞으며 십 수년간 무명 시절을 거쳤던 그는 보상 심리가 대단히 큰 것으로 보인다. 불쑥 튀어나온 '미인 대회 출신만 세 번 사귀었다'는 대답은 성공에 대한 현시적 증거물로서의 '트로피 와이프'에 대한 갈망으로 해석된다. 이 발언 어디에서도 인문학적 지성이나 성찰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세속적이고 유치한 욕망에 사로잡힌 시시한 사내의 그림자만 보일 뿐. 

  이지성이 인문학 관련 서적 저술가로서 성공한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망과 허영심을 채워 주는 방법으로  '인문학'이라는 지적 사치품(=부적)을 제시한 데 있을 것이다. 물론 인문학은 인간의 지적 영역을 살찌우는 가치 있는 분야이다. 하지만 인문학 책 몇 권 읽는 것으로 지적 능력이 리셋되고 인생의 성공이 다가온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사기적 언술이다. 이지성의 말대로라면 이 땅의 수많은 인문학 전공자들은 왜 쫄쫄 굶고 있겠는가.

 이지성이라는 사이비 인문학 장사꾼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인문학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이런 헛된 말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