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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2

최초의 나라 고조선의 마지막 전쟁 전쟁의 배경 한나라는 건국 이후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강력한 집권 체제를 갖추는 한편, 자국의 영향력 밖에 있는 이민족들 또한 일원적 천하의 구성원으로 포섭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한 구체적 수단이 외신제(外臣制)였다. 비슷한 시기 고조선에서 위만(衛滿)이 정변을 통해 왕이 되자 한나라는 요동태수(遼東太守)를 통해 위만을 외신으로 삼았다. 위만에게는 이민족들이 한나라의 국경을 침입하는 것을 제어하는 역할을 맡기는 한편, 이민족의 군장(君長)들이 한나라와 교섭할 때의 중개자 역할을 부여하였다. 그 결과 위만이 이끄는 고조선은 강력한 위세와 부를 얻을 수 있었다. 위만은 형식적으로 한나라에 신하의 예를 갖추어야 했지만 내부 정치에 대해서는 일절 간섭을 받지 않았고 독자성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위만의 손자인 우.. 2015. 9. 10.
위만, '한국사 최초'의 왕위 찬탈자 위만(魏滿, 衛滿)은 중국에서 고조선(古朝鮮)으로 망명하여 왕위를 찬탈한 인물이다. 위만은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조선이라는 국명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그와 그의 후손들이 왕위에 있었던 시기를 '위만 조선'이라고 별도로 지칭한다.『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을 왕검조선이라고 부기하였는데, 원래의 국명인 ‘조선’ 앞에 ‘고(古)’를 붙인 것은 위만 조선과 구분하기 위함이다.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듯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함이 아니다. 『삼국유사』는 고려 때 저술된 책이기 때문에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라는 나라는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다. 위만의 이름 위만(魏滿, 衛滿)은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위만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사서인 『사기』인데, 거기에는 단지 ‘조선왕(朝鮮王) 만(滿)’이라고만 칭하고.. 2015.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