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단상과 잡담

안철수가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한 이유는 무얼까.

by kirang 2012. 11. 24.

안철수가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했다.

그간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그가 권력욕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다. 아마도 승패가 불확실해진 이번 대선보다 5년 뒤로 승부를 미룬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즉, 이번 사퇴는 철저한 정치적 계산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안철수는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지지율은 계속 빠지는 중이고, 단일화 협상에 있어서도 여론이 안 좋아지는 참이었다. 단일화를 하자니 기본 지지율이 빠진 시점이라 불리하고, 3자 대결로 가자니 박근혜에게 지는 것은 뻔한 상황. 게다가 단일화 무산의 책임이 더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고심 끝에 스스로 죽는 방식을 통해 사는 길을 찾은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본다고 해서 안철수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뜻밖의 정치적 감각과 결단력에 감탄하는 쪽에 가깝다.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코앞의 이익을 버리지 못하고, 허우적대다가 침몰하는 것에 비하면 안철수의 이번 승부수는 적어도 범인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눈앞에 대통령 자리가 왔다 갔다 하는데, 이걸 던지고 후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그릇으로는 못할 일이다. 과감성이 있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거대한 욕망 앞에서 냉철하게 자기 객관화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이전에도 박찬종이나 문국현처럼 신선함을 내세운 정치 신인들이 혜성처럼 등장한 적이 있지만, 한번의 바람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안철수의 미래는 좀 다를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그래, 그런 사람이 있었지' 하고 잊어버리기에 20프로가 넘는 지지율을 가진 유력 대통령 후보의 전격적인 사퇴가 주는 임팩트가 너무도 크다. 게다가 국민들의 마음에 큰 빚을 진 듯한 느낌을 심어 주었다는 게 중요하다. 지금의 안철수 지지자들은 본래 바람을 타고 모인 터라 선거에 실패하면 바로 흩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이들이었지만, 앞으로 단단하고도 열렬한 지지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이 불가능해 보이는 부산시장에 연거푸 도전했다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노사모가 결성되었듯이, 안철수는 지지자들에게 그가 아낌없이 지지를 받을만한 인물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서울시장직 후보 사퇴에 이은 대통령 후보 사퇴를 통해 안철수는 엄청난 정치적 자산을 얻었다. 바람 타고 나타난 정치 신인 중 한 명의 수준을 훌쩍 넘어서 버린 것이다. 안철수가 어떠한 행보를 하든, 정치판의 주목을 한몸에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앞으로 거대한 정계 개편이 일어난다면 아마도 그 중심엔 안철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