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역사 노트

서양 증기선 나온 19세기 지도를 고려시대 지도라 속였다

by kirang 2019. 3. 1.

2019년 2월 21일 『매일경제』 신문에는 「평양이 中지역이라고…논문검증시스템 부실논란」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문제가 된 연구는 군산대학교 수학과의 정택선 교수와 인하대학교 수학교육과의 최규흥 명예교수가 2017년 12월에 발표한 논문 「위상수학 교육과 묘청의 고지도 분석에의 응용」 『교육문화 연구』 23-6이다. 이 논문은 ‘고려 시대 묘청의 고지도’를 위상 수학으로 분석한 결과 고려 시대의 평양이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중국 요양 지역임을 밝혀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2018년 1월 22일 뉴스톱에 「평양 위치가 중국? 엉터리 연구에 놀아난 한국」이라는 팩트 체크 기사가 게재된 바 있다. 뉴스톱은 해당 논문의 저자들이 고려 초기의 것이라 제시하며 연구에 이용한 고지도가 실제로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이라는 점을 밝혔고, 해당 고지도가 묘사하고 있는 지역 역시 현재의 평양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여러 자료의 제시를 통해 확인하였다. 해당 논문의 허위성은 명백하다.

연구 부정행위 신고받은 한국연구재단의 책임 떠넘기기

주목해야 할 점은 해당 논문이 핵심 자료인 고지도의 성격을 위조․변조하여 제시하는 기만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이를 생물학 분야로 치환해 비유하자면 동물의 배아 세포를 인간의 배아세포라고 속여서 논문을 쓴 격이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제공하는 연구윤리 매뉴얼(2017)에 따르면 ‘위조’란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 혹은 연구 결과 등을 허위로 만들어내는 행위를 말하며, ‘변조’란 연구의 자료나 연구 과정 등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데이터를 임의로 변형 삭제함으로써 연구 내용 또는 결과를 왜곡하는 행위를 말한다.

정택선․최규흥은 조선 후기의 지도를 가져와 존재하지도 않는 고려 초기의 고지도로 속이며 연구를 수행하였다. 연구윤리 매뉴얼 상의 위조․변조의 정의와 정확히 부합하는 가짜 학술 행위이자, 연구 부정 행위이다. 해당 논문이 세금으로 조성된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를 받아 수행된 연구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인지한 나는 해당 논문의 연구 부정 사실을 재단 측에 제보하였다. 학계 시스템이 자정력을 발휘하며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제보된 연구윤리위반 사실을 직접 조사하지 않고, 인하대학교와 군산대학교에 전달하였다. 두 학교에서는 각각 연구윤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너무도 명료한 연구 부정 사안이었음에도 두 학교의 조사 기간은 매우 길었다. 최종 결과가 나온 것은 제보일에서 무려 9개월이나 지난 2018년 10월 23일이었다. 소요된 시간도 시간이지만 통보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인하대학교 측은 “핵심데이터를 잘못 사용한 오류와 착오는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논문 핵심데이터의 위조 혹은 변조의 범주에 들어가는 연구윤리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군산대학교 측은 “연구부정행위로 보긴 어렵고, 저자가 논문 철회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됨.”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두 학교 모두 논문 내용에 문제가 있음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오류와 착오’라고 규정하며 연구 부정에 대해서만큼은 인정하지 않았다. 자교 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편향적인 판정이었다. 한국연구재단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듯 두 학교에서 나온 조사 결과가 이러하니 이의가 있으면 이제 제보자가 학교 측과 직접 이야기해서 해결하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그나마 군산대학교 측에서 ‘논문 철회’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는 점 정도가 의미 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결국 그 논문 철회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저자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군산대학교 측이 수용한 것이다. 군산대학교는 “논문 철회 권고는 연구윤리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위원회에서 판단할 사항이 아니고, 논문의 불성실 및 자료의 오류 등은 학계의 자유로운 학문적 평가를 통해 해결할 문제”라고 하였다. 결국 ‘학계’라는 추상적 대상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채 조사를 마무리한 것이다. 이로써 명백하게 문제가 있는 이 논문은 그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당당하게 게재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연구부정 교수들, 가짜 정보에 기반한 추가 논문 발표

이러한 가운데 정택선․최규흥은 다른 논문을 발표하였다. 2018년 부산대학교의 영남수학회에서 간행하는 『East Asian Math Journal』 34-4호에 「위상수학을 활용한 고려 평양부 고지도 분석」이라는 논문을 게재한 것이다. 이 논문에는 한국연구재단의 또 다른 연구비 지원 사실이 표기되었다.

정택선․최규흥은 기만을 되풀이하였다. 앞 논문에서 핵심 자료로 제시하였던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서경전도」에 대해 여전히 ‘묘청의 난(1135) 당시 인종 황제께 바쳤던 고려 서경 평양성의 위상도’(이하 묘청 고지도)라는 가짜 정보를 제시하는 한편,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해동지도』의 평양부 지도에 대해서도 ‘고려 태조 대왕 왕건 시대의 평양부 지도’라는 허위 정보를 제공하며 연구를 진행하였다. 앞서 인하대학교와 군산대학교가 내린 판정과 달리 이들이 저지른 행위가 단순한 ‘오류와 착오’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택선․최규흥은 애초에 자신들이 ‘오류’나 ‘착오’를 저질렀다는 점조차 인정한 바 없다.

출처: 『고려대학교 박물관 수장품목록』(1989), 256쪽.

정택선․최규흥이 두 논문에서 사용한 핵심 자료인 「서경전도」를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고려대학교 박물관 측의 수장품 목록을 보면 해당 지도의 크기와 재질, 제작 연대에 대한 소장처의 공식 견해를 알 수 있다. 목록에는 이 지도의 제작 시기가 조선 시대라고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다. 정상적인 연구였다면 우선 소장처가 밝힌 지도의 제작 시기를 소개하고, 저자들이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인지 근거와 함께 논증을 시도한 이후 연구를 진행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택선․최규흥은 논문에서 이 지도에 대한 아무런 객관적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고려 묘청 때의 고지도’라고 규정하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자료의 성격을 속이고, 논문의 독자를 기만한 것이다.

고려시대 지도라 주장한 서경전도에 19세기 증기선 등장

「서경전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지도의 제작 시기가 구체적으로 어느 때인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지도 왼쪽 하단을 보면 보통강이 대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몇 척의 배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중 한 척의 모습이 특이하다. 다른 배들과 달린 검은 색으로 그려져 있으며 배 가운데서는 연기도 뿜어져 나오고 있다. 증기선을 그린 것이다.

정택선, 최규흥이 고려 묘청 때(1135)의 지도라 주장하는 고려대 박물관 소장 「서경전도」

「서경전도」 왼쪽 하단에는 서양 증기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1866년 평양에서 파괴된 제너럴 셔먼호의 형태(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 같은 서양 배들은 조선 시대 말에 들어서 한반도에 출몰하였고, 당시에는 이양선이라 불렸다. 평양 지역에서는 이양선과 관련한 유명한 일이 있다. 1866년 미국 상선인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와 평양 지역에 침입하였다가 평양 군민과 무력 충돌이 발생하여 파괴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다. 따라서 증기선이 그려져 있는 「서경전도」의 제작 시기는 빨라도 1866년 이전이 될 수 없다. 정택선․최규흥의 연구는 무려 증기선이 그려져 있는 지도를 고려 초기에 그려진 것이라 전제한 채 진행되었다. 이들의 작업이 얼마나 허황되고 거짓된 것인지는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해동지도』의 평양부 모습

정택선․최규흥이 두 번째 논문에서 새로 소개하며 활용한 『해동지도』의 작성 연대는 더욱 명확하다. 소장처인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총설을 통해 지도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해동지도 (古大4709-41)
(제작시기: 1750년대 초, 규격: 47.0×30.5cm, 구성: 8책)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지도집. 이 지도집에는 조선전도, 도별도, 군현지도 뿐만 아니라 세계지도(<천하도>), 외국지도(<중국도>, <황성도>, <북경궁궐도>, <왜국지도>, <유구지도>), 관방지도( <요계관방도>) 등이 망라되어 있다.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집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활용된 관찬 군현지도집이다. ……통일성을 갖춘 이들 군현지도의 설명문은 대체로 1748년(영조 24)- 1750년(영조 26)의 상황까지 반영되어 있다. 1750년(영조 26)의 통계자료가 경기도 적성현 경작지 면적 기록에 활용된 점이 지도집 편찬 시점의 하한선이 된다. 서울지도 설명문에 기록된 훈련도감 금군 등 군영 관련 내용이 1751년(영조 31)의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 점, 1750년(영조 26)부터 시행되는 균역법에 관한 내용이 지도집에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점, 1751년(영조 27) 초에 폐지된 경상도 7진보에 관한 내용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은 이 지도집 편찬 시점의 상한선이 된다. 결국 해동지도는 1750년대 초, 구체적으로는 1750년(영조 26)- 1751년(영조 27) 사이에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해동지도』는 18세기 중반 영조대에 국가 차원에서 편찬한 지도집이다. 지도의 성격과 제작 시기에 대해 소장처의 명쾌한 해설이 제시되어 있음에도 정택선․최규흥은 아무런 논증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이 지도가 ‘고려 태조 왕건대의 지도’라 선언한 채 연구를 진행하였고, 더 나아가 이 지도에 그려진 곳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며 중국 요양시 일대라는 주장을 펼쳤다.

저자들이 이처럼 엄청난 주장을 하며 사용한 방법론은 매우 조악한 수준의 것이다. 고지도 상에 보이는 강의 섬 개수와 지금의 위성사진에서 확인되는 평양 대동강의 섬 개수를 세어서 비교해 보니 서로 다르더라는 것이다. 따라서 양자는 ‘위상 수학’적으로 동형(同形)이 아니며 다른 장소라는 식이다. 저자들은 이를 ‘위상 수학’으로 거창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유치하고 허점 투성이인 논리이다.

저자들의 방법론은 애초에 설계부터 잘못되었다. 첫째, 옛날 사람들이 고지도를 작성할 때 딱히 중요해 보이지 않는 강 위의 작은 섬들을 100% 정확하게 묘사해 그려 넣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심지어 저자들이 동일한 중국의 요양시 궁장령구를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서경전도」와 『해동지도』 두 지도만 비교해도 강의 섬 개수가 다르다. 저자들이 사용한 방법론을 따른다면 적어도 같은 곳을 그렸다는 「서경전도」와 『해동지도』 두 지도에는 섬의 개수가 같아야 할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저자들은 이 같은 모순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둘째, 하천에 있는 섬의 개수는 지속적인 퇴적과 침식 작용을 통해 불과 수십 년 사이에도 달라질 수 있다. 이를 간단히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근대에 제작된 측량 지도와 현재의 위성 사진을 대조해 보는 것이다.

"지도의 섬 개수 달라 같은 곳 아냐" 저자들의 엉터리 주장

현재의 위성 사진과 일제 강점기의 측량 지도, 1940년대 미군이 작성한 지도 등을 대조해 보면 수십 년의 시차에도 대동강의 섬 개수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근대 지도의 우측 상단에 있는 능라도 아래쪽에는 본래 반월도라는 작은 섬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위성 사진에서는 두 섬이 합쳐져 하나의 섬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측 하단에 있던 대양각도와 소양각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던 작은 섬들 역시 지금은 하나의 섬으로 합쳐져 있다. ‘지도와 위성 사진에서의 섬 개수가 다르면 같은 곳이 아니다’라는 정택선․최규흥의 대명제에 따르자면 일제 강점기의 평양과 지금의 평양은 다른 곳이라는 결론이 나와야 한다. 물론 터무니없는 소리이며, 정택선․최규흥의 논문은 겨우 이 정도 수준의 이야기이다. 학술적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다.

현재의 평양 지역 위성 사진

1918년 일제 강점기의 평양 지도(『조선전도』, 조선토지측량국)

1946년 미군 작성 평양 지도

두 개 논문 절반 가량 문장까지 똑같아 '자기 표절'

정택선․최규흥의 두 논문은 자기표절의 혐의도 가지고 있다. 2017년 『교육문화 연구』에 실은 논문 내용 대부분이 2018년 『East Asian Math Journal』에 그대로 복사되어 실린 것이 확인된다. 별 의미 없는 뒤의 부록 부분을 빼고 본론 부분만을 놓고 보면, 논문 분량의 절반 정도가 말 그야말로 ‘복사물’이다. 그림에서 노란색으로 칠한 영역은 2018년 논문 중에서 2017년 논문과 아예 문장까지 동일한 부분들을 표시한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2018년 논문에서는 이처럼 복사해 붙인 부분에서 일부러 한 문장 단위로 엔터를 쳐 단락을 다르게 구분한 경우가 다수 확인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번거로운 작업을 한 이유는 저자들이 두 논문을 최대한 다르게 보이기를 원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저자들 스스로가 표절을 의식하였고, 떳떳하지 못한 행위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노란색 부분은 2017년 『교육문화 연구』와 2018년 『East Asian Math Journal』에 실린 논문 중 중복된 내용이다. 논문의 절반 가량이 표현까지 똑같다.

연구 부정 행위, 가짜 학술 행위는 퇴출되어야 한다

학술 행위가 진실성을 담보해야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일종의 공동 작업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연구자들은 동료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진실성에 기반하여 수행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자신의 연구를 수행한다. 학술 활동은 동료 학자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에 누군가의 거짓된 연구는 학술 활동 전반에 심대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연구 부정이나 가짜 학술 행위에 단호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번 사건에서 한국연구재단과 인하대학교, 군산대학교 측은 연구 부정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보다 책임을 떠넘기고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명백한 사안조차도 바로잡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 학계가 건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우리 학계의 자정력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고, 두 학술지를 발간하는 학회 측에 재차 문제 제기를 하였다. 만약 지난번 제보 때와 마찬가지로 끝내 이 문제가 유야무야 된다면 우리 학계의 자기 검증 시스템은 이미 붕괴 상태에 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