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먹이 운다"
2005년에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이다.
류승완 감독에 최민식, 류승범 주연. 제작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만으로 충분히 구미가 당긴다. 포스터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둘이다. 자신의 존재 의의를 되찾기 위해 뒤늦은 도전을 감행하는 퇴물 복서와 가족사의 아픔을 가슴에 품은 채 옆도 안보고 질주하는 젊은 복서의 충돌. 이건 시나리오상만의 대결이 아니라 두 배우의 연기 대결이기도 했다. 누가 이겼을까? 내가 보기엔 류승범의 판정승이다.
최민식이 나쁜 연기를 펼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젊었을 적엔 그럭저럭 잘나갔지만 이제 퇴물이 되어버린, 그래서 후배에게까지 모욕을 당할 정도로 몰락해버린 3류 인간 연기는 최민식에게 있어 정형화된 감이 있다. "주먹이 운다"에서의 최민식과 "파이란"에서의 최민식은 실상 큰 차이가 없다 그 때문인지 최민식의 연기는 호연임에도 매너리즘이 느껴진다. 그에 비해 류승범의 연기는 생기가 돌며, 칼처럼 날이 서 있다. 영화의 흐름에 강한 임팩트를 주는 건 그래서 최민식보다 류승범 쪽이다.
주인공을 둘로 설정하고 그들의 사연을 같은 비중으로 독립적으로 진행시켜, 각각의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들을 결승전에서 맞붙게 한다,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관객들은 최민식과 류승범의 사연을 속속들이 안다. 그리고 둘 모두에게 똑같은 수위의 감정 이입을 경험한다. 그 결과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되어야 할 결승전의 몰입도는 현저히 떨어져버린다. 왜냐하면 둘 다 '우리편'이니까. 누가 이길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둘이 결승전에 올라온 이상 이제 누가 이겨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마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끼리 하는 결승전을 보는 것처럼.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순간 기존의 기승전결 스토리 구조에 익숙한 사람들은 2% 부족하다는 허전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만약 두 주인공이 각각 결승전에서 이겨야만 하는 이유를 보다 절박한 것으로 부여했다면 이런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