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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이비역사의 탄생 : 거짓 역사, 가짜 과학, 사이비종교"

kirang 2016. 7. 7. 13:44

로널드 프리츠 지음 | 이광일 옮김 | 이론과실천 | 2010년 12월 30일 출간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저자인 로널드 플리츠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애선스 주립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 책의 원제는 "Invented Knowledge: False History, Fake Science and Pseudo-religions"이다. 다루는 주제가 역사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이비 역사의 탄생"이라는 한국어판 제목은 내용과 좀 맞지 않는 편이다.

  이 책에서 논하는 내용은 대부분 미국의 사례이다. 때문에 한국인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예시로 들고 있는 인물과 사건들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탓이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에서 준동하고 있는 '사이비 역사'와 관련해 유용한 시사점을 주는 내용이 꽤 있다. 다음은 이 책의 서론에서 눈길이 가는 구절들을 발췌한 것이다. 

  "사이비역사 내지 사이비학문이란 무엇인가? 대단히 까다로운 질문이다. 연구 수준이나 당대의 취향, 유행 등에 따라 답이 매우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중략)... 역사에 대한 단순하고도 우아한 정의는 '인간의 과거에 관한 진짜 이야기'다. 문제는 사이비 역사가들도 자신의 생각이나 저술이 인간의 과거에 관한 진짜 이야기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물론 비판적인 학자들은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개인이 역사와 과학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사실인지, 무엇이 거짓말이고 허위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증거다. 그리고 증거의 질과 양까지도 문제가 된다. 증거는 고대의 기록일 수도 있고, 고지도, 유물, 역사와 관련된 고고학적.과학적 발견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답은 그런 증거를 분석하고 평가함에 있어서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방법을 사용했는가이다. 사심 없이 주제를 다루는 객관적인 학자들은 증거를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본다. 아니, 적어도 인간적으로 가능한 한 편견에 물들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반면에 사이비역사가들은 대개 선입견을 가지고 주제에 접근한다. 추종자들을 끌어 모으거나 명성을 얻으려는 꿍꿍이를 감추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들도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논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장을 입증해줄 증거를 찾는다. 그러나 결국 사이비역사가들은 증거를 선별적으로 채택한다.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것은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강화해주는 증거만을 사용한다. 고전적으로 훈련을 받은 객관적인 역사학자들은 입수 가능한 증거를 모두 살피려고 노력하며, 복잡한 증거 전체를 일괄할 수 있는 해석이나 분석을 제시하려고 애쓴다." pp.14-15.


"사이비 역사와 사이비학문을 솎아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지금은 폐기된 부정확한, 잘못된, 또는 구닥다리가 된 역사와 과학을 구분하는 것이다. 중세 때는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이 정통적인 세계관이었고, 당대 주류 지식의 일부였다. 요즘 지구 중심적 태양계 이론을 학문적으로 치장해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이비학자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지구가 편평하다는 이론을 주창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다...(중략)...사이비역사가와 사이비학자들의 문제는 이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철 지난 옛날 연구를 이론의 기초로 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pp.15-16.


"사이비역사가들은 텔레비전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변호사처럼 논리 전개 과정에서 가능성과 개연성의 구분을 흐려버리는 경향이 있다. 둘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데도 말이다. '어떤 일이 가능하다'고 할 때는, 그런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났을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발생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반면에 '어떤 일이 개연성이 있다'고 할 때에는 일어났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따라서 내일 누가 나한테 복권을 사줬는데 그 복권이 대박 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반면에 내일이 주중이라면 내가 학교 사무실에 나가 연구를 하는 것은 개연성이 있는 일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중국 탐험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러서 그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한편으로 배를 타고 지구를 한바퀴 돌았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입수 가능한 믿을 만한 증거를 기준으로 한다면 그랬을 개연성은 거의 없다." p.21.


"역사학자들이 논쟁하는 무대는 역사학자와 사이비역사가가 벌이는 논쟁의 무대와 다르다...(중략)... 역사학자들은 해석을 놓고 얼마든지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랄한 공방이 오가기도 한다. 그러나 거의 언제나 기본적인 사실은 논쟁 대상이 아니다....(중략)...반면에 사이비역사가들의 논쟁은 보통 기본적인 사실을 놓고 벌어진다. 어떤 사건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어떤 장소가 실제로 존재했느냐 존재하지 않았느냐? 또는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실제로 살았으나 산 적이 없느냐?......" p.22.


"사이비역사가, 사이비고고학자 또는 사이비과학자들의 전형적인 특징 가운데 주류 학자들과 자못 다른 점이 또 있다...(중략)...페이건에 따르면 사이비역사가들은 이제는 유효하지 않은 연구나 사상에 집착하거나 괜찮은 과학 이론들을 납득할 수 없는 수준으로 왜곡한다...(중략)...이런 식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이비역사가들은 역사, 지질학, 언어학, 생물학, 고고학을 비롯해 온갖 분야의 증거를 샅샅이 뒤진다. 그러나 그런 증거를 주변 맥락이나 표준적인 해석은 무시한 채 멋대로 사용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연구자라면 다수의 증거가 말해주는 바에 귀를 기울이겠지만, 그들은 하고많은 증거 중에서 하필 예외적인 것에 주목한다. 사이비역사는 센세이셔널한 주제를 주로 다룬다...(중략)...사이비역사가들은 자기가 논하는 주제에 푹 빠져서 다른 얘기는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pp.23-24.


"사이비역사를 '비주류 역사'나 '대체 역사'라고 표현하는 필자들도 있다. '비주류'니 '대체'니 하는 표현은 얼핏 보면 '사이비'라는 단어처럼 가치판단이 들어갔거나 멸칭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중략)...문제는 대부분의 사이비역사가 명백히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중략)...사이비역사는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된 역사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한 역사가 된다. 사이비역사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진실은 그것이 정확한 용어라는 것이다. 사이비는 가짜를 뜻하고, 사이비역사는 가짜 역사를 말한다. 사실관계에서 틀리고 방법론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이다."pp.26-27.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아! 사이비 역사 하는 사람들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행동 양식이 똑같구나. 알고보니 이 사람들, 굉장히 글로벌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었어.'. 

  사라진 고대 문명을 찾아헤매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꽤나 매력적인 일인 모양이다. 미국에서의 '아틀란티스'가 한국에서는 '위대한 환국'일 뿐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물론 한국의 사이비역사가들은 여기에 쇼비니즘이라는 양념을 한번 더 끼얹기는 했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사이비 역사가들을 '재야사학자'라고 불러 왔다. 하지만 그들의 정당한 명칭은 '사이비 역사가'가 맞다. 이러한 호칭이 지니는 폭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미 저들은 종교나 국가 권력과 결탁하여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는 터이다. 정당한 명칭을 통해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지 않으면 학문의 영역을 어지럽히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와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단호한 대처가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