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의 이름은"
(스포일러 있음)
2016년 개봉한(한국에서는 2017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이다.
"너의 이름은"은 일본과 중국에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할 조짐이 보인다. 개봉 첫 주에 보러 갔는데, 상영관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애니메이션 장르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의 장점과 약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장점은 작화가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것이고, 단점은 서사와 개연성의 헛점이 크다는 점이다. 이번 영화의 경우 그중에서도 어느 쪽에 더 무게가 쏠리는가 하면, 사실 뒷쪽이다.
전작인 "초속 5cm"에서도 그러하였지만, 신카이 마코토가 남녀 주인공을 떼어 놓는 방식은 무척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다. 이 영화의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장면은 남자 주인공 타키와 여자 주인공 미츠하 사이에 3년의 시간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이후의 이야기 전개는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시공간을 사이에 두고 있다는 점을 소재 삼아 달려나간다. 일견 그럴듯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 설정 덕분에 이야기의 논리성에는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되었다.
우선 동갑내기로 묘사되었던 남녀 주인공이 몸이 뒤바뀌는 과정에서 서로간 3년의 시간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다. 둘은 몸이 뒤바뀌었을 때 일기를 통하여 소통을 하였다. 그런데 일기에는 반드시 포함되는 필수 요소가 있다. 바로 날짜이다.
더구나 타키가 일기를 쓰는 매체는 다름 아닌 스마트폰. 스마트폰 캘린더에는 자동으로 연도가 뜨게 되어 있다. 원래 몸으로 돌아온 후에는 마치 꿈을 꾸었던 것처럼 몸이 바뀌었던 때의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설정이 변명처럼 제시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3년의 연도 차이를 아예 인지조차 못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으니, 사실은 속임수에 가까운 얼버무림이다. 참고로 두 사람이 쓰는 스마트폰은 모두 아이폰인 것으로 여겨지는데, 3년 전 사람인 미츠하의 아이폰은 아이폰4나 아이폰 5 계열의 디자인으로 보이고, 타키의 아이폰은 아이폰6나 아이폰7 계열의 디자인으로 묘사된다. 각본이 개연성이 있으려면 미츠하가 타키의 몸으로 들어가 아이폰을 집어들자마자, '뭐야, 이런 아이폰이 언제 나왔지'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미츠하는 혜성이 떨어지기 전날 도쿄로 타키를 찾아가 만난다. 그리고 한눈에 상대를 알아본 자신과 달리 자신을 전혀 못알아보는 타키에게 실망하며 실연의 의미로 머리카락을 자른다. 이 역시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 전개이다. 성인의 3년과 중고등학교 때의 3년은 비교할 수 없이 큰 차이가 있다. 신체 발육에 급격한 변화가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무려 고3과 중3의 격차이다. 미츠하가 만난 타키는 그야말로 꼬마처럼 보였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중3의 타키와 고3의 타키는 실상 별 차이 없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타키가 유난히 성장이 빠른 '노안' 타입이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미츠하에게 인연의 엇갈림과 실연이라는 에피소드를 안겨 주기 위한 무리한 설정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타키가 미츠하가 살고 있던 마을의 전경을 그린 스케치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곳이 어딘지 몰라 헤맸던 것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3년 전의 일이라고는 하나 혜성이 떨어져 마을 하나가 붕괴하고 무려 500명이나 되는 사람이 사망한 대사건이다. 뉴스에서도 수도 없이 다루어졌을 마을의 모습과 이름을 주인공은 물론 그 지인들까지 까맣게 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비유하자면 배가 뒤집혀 밑바닥의 선수 부분만 물 위로 노출된 그림을 보면서도 세월호를 연상하지 못하는 한국 사람과 같다고나 할까.
이처럼 "너의 이름은"의 이야기에는 헛점이 매우 많다. 상당히 중요하고 결정적인 헛점들이기 때문에 시나리오 작업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결과는 이렇게 나오고 말았다. 신카이 마코토는 아귀가 깔끔하게 들어맞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그냥 머릿속에 떠오른 멋진 이미지나 순간적인 장면 등을 구현하는 것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개연성이야 어찌되든 보기 좋고, 감성만 흔들면 그만이라는 것일까. 하지만 개연성의 무시는 시나리오의 완결성을 해치고, 작품에 대한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아무리 애니메이션이라고는 하지만 그림만 예쁘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신카이 마코토는 정교하고 호흡이 긴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뮤직 비디오 정도가 적성에 맞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