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손 the guest"
2018년 케이블 채널인 OCN에서 방영한 16부작 드라마이다.
'큰 귀신'이라 불리는 '박일도 귀신'와 그가 부리는 악령들에 빙의된 사람들, 그리고 여기에 맞서 싸우는 영매, 사제, 형사의 이야기를 다루는 오컬트물이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흔치 않은 장르물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고, 시청률도 4.1%로 제법 괜찮게 나왔다.
"손 the guest"라는 제목은 다소 어색하다. '손'은 외부로부터의 방문자를 가리키며, 사람에게 달라붙은 귀신, 악령을 의미한다. 그런데 제목을 그냥 '손'이라고 하면 '핸드(hand)'와 헛갈릴 거라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포스가 떨어진다고 생각한 것인지 뒤에 'the guest'를 덧붙여서 부연하였다. 'the guest'보다는 한자인 '객(客)'을 작은 글씨로 붙여서 부연하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 제작진은 한자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 전달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첫 회 방송 내용은 충격적이다. 바다에서 온 정치 모를 미지의 존재가 사람에게 빙의되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는데, 지켜보는 입장에서 느껴지는 무력감과 공포감이 대단하다. 한국 드라마의 수준이 이 정도까지 올라왔나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이야기 전개와 연출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첫 회에 한정한다. "손 the guest"는 회차를 거듭할 수록 아쉬운 부분이 노정되는 드라마이다.
우선 기존의 성공한 오컬트물에서 차용한 연출이 지나치게 많다.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 중 영화 "곡성"이나 "검은 사제들"을 연상하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잘생기고 젊은 가톨릭 사제가 하는 구마 의식은 누가 봐도 "검은 사제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빙의된 자들이 입에서 물을 토해내는 장면이나 빙의의 매개체인 까마귀 시체 같은 소재는 "곡성"에 등장했던 연출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심지어 빙의자들이 몸을 이상한 형태로 꺾는 행위는 "부산행" 같은 좀비물을 참고한 것이 분명하다. 장르물인 만큼 비슷한 설정이나 연출이 나오는 것은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너무 대놓고 갖다 쓰는 것과 자기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건 문제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큰 문제는 극이 전개되면 될수록 귀신들이 안 무서워진다는 것이다. "손 the guest"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굉장히 말이 많다. 아니, 그걸 넘어서 친절하기까지 하다. 주인공들이 궁금해 하는 게 있으면 아주 장황하게 설명을 시작하는데, 이게 극의 몰입감을 크게 해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주변인을 죽이던 첫 회 귀신의 포스는 간데 없고, 곧 죽이려는 사람에게 시간을 질질 끌면서 질의응답을 되풀이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심지어 몇몇 빙의자들은 귀신에 씌인 사람이라기보다 그냥 질 나쁜 범죄자처럼 보일 뿐이다. 오컬트 장르에 대한 제작진의 이해도와 역량을 의심케 하는 점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자꾸 귀신의 정체와 설정에 대해 설명하려고 드는데, 정말 불필요한 일이다. 공포라는 것은 대상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일도 귀신만 하더라도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보다 첫회에서 말로 설명을 듣고 혼자 상상했을 때가 훨씬 무서웠다.
세 주인공 중에서도 중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윤화평의 캐릭터 설정도 좀 아쉽다. 윤화평이 흥분해서 "안되겠어. OOO에게 가봐야겠어."라고 말하면 최윤과 강길영이 가만 있으라고 말리고, 그러면 "이러다 박일도가 또 사람을 죽일거라고"라며 화를 내는 것이 정형화된 패턴이다. 그런데 툭하면 흥분하는 이 윤화평의 행동이 영 대책 없어 보인다는 게 문제다. 어차피 빙의자에 대한 물리적 제압은 강길영이, 구마 의식은 최윤이 맡고 있으니 윤화평은 하는 일도 별로 없다. 영매로서 빙의자가 사람들을 죽일 때 그 장면을 엿볼 수는 있다고 하는데, 이 능력이 그렇게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 같지도 않다. 굳이 말하자면 이 팀에서 흥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솔직히 나는 윤화평 캐릭터를 볼 때마다 좀 피곤했다.
정작 이 드라마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윤화평의 친구인 육광이다. 꽤 잘나가는 무당이라고 하는데, 능력을 발휘하는 부분은 별로 없었다. 그냥 분위기 띄우는 데 소비되는 개그 캐릭터인가 싶어서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후반부에서 무척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원종 배우의 연기가 돋보였다고 생각한다.
"손 the guest"는 역대급 스타트를 끊었지만 뒷심이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 아쉬운 드라마이다. 어느 정도 성공은 거두었으니, 앞으로도 이런 장르의 드라마를 더 만들 수 있는 발판은 만든 셈이다. 소재 면에서 한국 드라마의 외연을 넓히는 데 일정한 기여를 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