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받는 '세계 상위 1%의 연구자' 서사와 현대판 '아기장수 설화'
얼마 전에 화제가 되었던 '상위 1%'의 연구실적을 가지고도 10번이나 교수 임용 심사에서 떨어진 분 기사에 대한 분석 글을 페이스북을 통해 보았다(해당 글은 팩트 체크 전문 매체인 "뉴스톱"에 재차 실렸다. 처음 기사가 실린 중앙일보 기사와 뉴스톱 기사를 참고해 볼 것). 나는 이공계쪽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여기에 말을 덧붙이기 조심스럽다. 다만 해당 기사를 보며 느꼈던 점을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중앙일보”, 2018. 11.28, 女과학자 조선영, 세계 1% 오르고도 교수 10번 떨어진 사연
https://news.joins.com/article/23161389
“뉴스톱”, 2018. 11. 30, 논문인용 세계 1% 과학자? '학계 퇴출' 저널에 실렸다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6
해당 기사는 연구실적이 '상위 1%'인 세계적인 수학 연구자가 여성이자, 경력단절자이자, 지방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임용에 실패하며 차별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이러한 차별적 요소들이 사회 전반에 작동한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그렇기에 기사를 읽은 많은 이들이 탄식을 하고, 공감을 표했던 것이리라.
다만 해당 기사를 읽으며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수십 편에 달하는 SCI 논문을 보유하고 있고, 심지어 피인용지수가 세계 상위 1%인 사람이라면 한국의 모든 대학에서 탐낼 만한 인재가 아닌가. 아무리 한국 사회가 차별이 만연하다고 해도, 요즘 대학교들이 연구실적에 얼마나 목을 메는데 이런 대단한 인재를 마다할까. 이 의문은 공유한 글의 내용을 통해 해소되었다.
애시당초 '세계 상위 1%의 연구자'라는 표현부터가 문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인용 지수가 상위 1%인 연구자'인데, 문제는 높은 피인용 지수가 그가 정말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자인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대개의 경우는 양자가 상관성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그가 주로 논문을 실은 학술지가 비상식적인 편법을 동원해 피인용지수를 부풀리다가 급기야 SCI에서 퇴출되어 버린 문제 학술지라는 정보가 더해지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결국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단한 학자'라는 것은 다분히 허상이었던 셈이다. 오히려 이는 실질적 내용보다 겉으로 보여지는 성과적 수치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의 맹점이 드러난 사례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 나는 이게 일종의 현대판 '아기 장수 설화'로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천재 연구자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시스템의 후진성이 그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장시키고 있다. 개탄할 일이 아닌가!' 이러한 서사는 과거 황우석 사건 때, 심형래 사건 때, 송유근 사건 때도 노정된 바 있다. 여기에 사람들이 피부로 실감하는 여성 차별, 경력 단절, 학벌 차별이라는 사회적 소스까지 더해지니 엄청나게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서사가 만들어진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세계관과 조응하는 정보를 선호한다. 자신의 평소 관점을 강화시켜 줄 수 있는 사례 정보를 사실로 믿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굴절된 정보가 수없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중심 잡기가 참 쉽지 않다.
* 덧붙임: 검색을 해보면 해당 연구자가 속해 있는 대학에 '세계 상위 1% 연구자'가 4명이 있다는 보도들이 확인된다. 모두 수학과와 수학교육과에 속한 수학 전공자들이며, 3명은 교수이고 1명은 시간강사이다. 이 시간강사가 바로 문제의 보도된 인물이다. 검증을 해 보지는 못했지만,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은 논문 편수와, 피인용지수를 가진 이들이 한 학교, 한 전공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다른 3명의 학자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중앙일보”, 2016. 9. 23, ‘세계 상위 1% 연구자’ SKY 1·2명, 경상대는 4명
https://news.joins.com/article/206250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