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1940년에 발생한 오성취루 현상
http://blog.naver.com/skepticmgz/221362057521
2018년 9월 "Korea Skeptic"이라는 잡지에 실린 글이다. 당시 이문영 선생, 안정준 선생과 함께 3편의 기획 글을 실었는데, 여기서는 편의상 내가 주로 사용하는 '사이비 역사학' 대신 '유사 역사학'이라는 용어로 통일하였다. 어차피 '슈도 히스토리(pseudo-history)의 번역어이므로, 어떤 용어를 사용해도 상관없다. 나는 '사이비 역사학'이라는 용어가 본질을 더 잘 드러낸다고 생각하여 이 용어를 선호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유사 역사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도 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이 일반적 이미지와 달리 사실은 무척 고상하고 품격 있는 표현이라는 점이다. '사이비'는 무려 사서삼경의 하나인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이며, 공자님께서 사용한 말이다. '비슷하지만 아닌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용어의 어원을 모르는 사람들은 '사이비'를 읽을 때 '싸이비'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것이다. '싸'가 아니라 '비슷할 '사(似)'이다. 유의해 주기 바란다!
"스켑틱"에 실린 글에서 핵심이 되는 내용은 "단기고사"와 "환단고기"에 실려 있는 '오성취루(五星聚婁)' 현상이다.
50년에 오성(五星)이 누성(屢星)에 모였다.
『단기고사』 전 단군조선 13대 단군 홀달 50년
무진 50년 오성이 루성에 모이고 누런 학이 뜰의 소나무에 와 쉬었다(戊辰五十年 五星聚婁 黃鶴來捿苑松).
『환단고기』 단군세기 13대 단군 홀달 50년
사이비 역사학 신봉자들은 해당 기사가 실려 있는 홀달 단군 50년(기원전 1733)과 1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기원전 1734년에 실제로 오성취루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을 들어 이들 '위서'의 내용이 진실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원전 1734년에 실제로 발생한 천문 현상은 오성이 '루성(婁星, 양 자리)' 부근에 모이는 '오성취루'가 아니었다. 오성이 실제 모인 장소는 그보다 130도나 떨어진 '장성(張星, 바다뱀 자리)' 부근이었다. 그야말로 하늘 반대편이다.
사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모이는 '오성취' 현상은 약 20년에 한번 꼴로 비교적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기원전 1733년과 1년의 오차를 두고 오성취 현상이 나타난 것은 확률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그냥 아무 연대나 무작위로 찍어도 오성취 현상과 1년의 오차 범위 안에 포함될 확률은 1/6~1/7 정도는 된다.
재미있는 점은 "단기고사"의 위작 연대로 지목받는 1940년에도 오성이 모이는 천문 현상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그게 마침 또 루성 부근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물론 그냥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행기니, 잠수함이니, 자명종이니 하는 근현대의 온갖 문물이 기원전 수천 년 전에 우리 조상에 의해 이미 발명되었다는 우스꽝스러운 서술이 가득한 "단기고사"의 성격을 감안하면 그냥 넘길 수 없는 지점이다. "단기고사"는 기원전 수천 년 전 우리 조상이 이미 항성과 행성의 개념을 알고, 지동설을 알고, 태양계의 9개 행성 이름들[명왕성이 퇴출되기 전이다!]까지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괴서라는 점을 상기하자.
1979년에야 출현한 "환단고기"의 오성취루 기록은 1949년 무렵 만들어진 "단기고사"의 내용을 그대로 베낀 것에 불과한 만큼 더 논할 가치도 없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역사비평사, 2017)에 실린 ''단군조선 시기 천문관측기록'은 사실인가'라는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 결론: 사이비 역사학 신봉자들은 이것만 대답하면 된다. 1940년에 일어난 이 천문 현상과 기원전 1734년에 일어난 천문 현상 중 어느 쪽이 '오성취루[오성이 루성 부근에 모였다]'라는 내용과 부합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