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노트

설민석의 사과문에서 짚어야 할 점

kirang 2020. 12. 30. 17:33

 

"저는 2010년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과 석사 논문으로 제출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서술에 나타난 이념 논쟁연구>를 작성함에 있어 연구를 게을리하고, 다른 논문들을 참고 하는 과정에서 인용과 각주 표기를 소홀히 하였음을 인정합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저의 과오입니다. 교육자로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안일한 태도로 임한 점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설민석이 자신의 석사 논문 표절을 인정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사과문이다. 어떤 언론 기사에서는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물러났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런데 확실히 짚어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설민석은 사과문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저의 과오"라는 표현을 하였지만, 사실 이 사과문의 행간에는 자기 변명이 엄청나게 많이 묻어 있다.

설민석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연구를 게을리하고", "인용과 각주 표기를 소홀히"하고, "교육자로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이런 워딩은 자신의 표절 문제가 '실수'이고, 꼼꼼하지 못해서 생긴 '아쉬운 사건'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설민석의 표절 기사들에 달린 덧글을 보면 '각주와 인용 표시만 제대로 했으면 되었을 텐데' 같은 류의 반응들이 달려 있다. 설민석은 사과문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성격과 무게를 호도하고 있는 셈이다.

보도에 다르면 설민석의 표절률은 52%에 달하며, 다른 논문들의 문장을 그대로 복사해 와 짜집기한 수준이다. 학술적인 글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각주와 인용 표시만 달면 표절이 안 되는 걸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결코 그렇지가 않다. 각주와 인용 표시를 아무리 꼼꼼하게 달았어도 문장들을 단락째로 복사해 와 붙이는 건 그냥 표절이다.

논문에서의 인용은 자기 주장의 독창성을 드러내기 위해 선행 연구를 도구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타인의 논문을 소개하려면 해당 논문의 내용을 소화해야 하며, 그 내용을 자신만의 문장으로 다시 재구성해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출처로 각주를 다는 것이다. 이 논문 저 논문의 문장들을 그대로 복사해 와 모자이크처럼 오려붙이는 건 인용이 아니다.

따라서 설민석의 논문 표절은 연구를 게을리한 잘못이 아니다. 인용과 각주 표기를 소홀히 한 잘못이 아니고, 안일한 태도도 잘못이 아니다. 자기가 하지도 않은 연구를 자기가 한 것처럼 속인 것, 남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인 척 속인 것, 자기가 쓰지 않은 글을 자기가 쓴 것처럼 속인 것이 잘못이다. 게으름과 안일함의 문제가 아니라, 사기와 절도의 문제이다.

입시 학원 강사였던 그가 '연세대학교 석사'라는 명문대 타이틀로 직접적으로 큰 이득을 보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이 종사하는 직역에서 비윤리적인 기만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죄질이 아주 나쁘다.

그럼에도 설민석의 사과문에는 여운이 많이 남아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든 일에 더 신중히 임하겠습니다."라든지,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더 배우고 공부하겠습니다"라든지 하면서 복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 큰 사고를 치고도 아무렇지 않게 방송에 복귀한 최진기의 사례를 보면 팬덤의 규모가 더 큰 설민석의 복귀는 시간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면 설민석은 정말 연예인이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