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노트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역사를 왜곡했나
kirang
2021. 3. 28. 16:00
SBS가 제작한 판타지 사극 "조선구마사"가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에 따른 기업들의 투자 철회로 2회 만에 조기종영하였다. 이 드라마는 원래 16부작으로 기획되었고, 32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간 종편과 케이블 TV에 영향력이 잠식되고 있던 지상파 방송국으로서는 나름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였던 셈인데, 예상치 못한 사태에 맞닥뜨리며 허무하게 좌초되고 말았다.
이번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드라마에 대한 비판의 가장 큰 명분이 '역사왜곡'이라는 점이다. 둘째, 중국 및 중국 문화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 내지는 혐오감이 강렬하게 표출되었다는 점이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논란이 되었던 사안들을 살펴보며 나름의 생각을 제시할까 한다.
많은 이들이 “조선구마사”가 역사를 왜곡하였다고 분개하였다. 심지어 한국의 역사를 폄하하거나, 중국적 요소로 덧칠하여 빼앗아가려는 의도성이 의심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드라마에서 지적된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충녕대군이 의주의 기생집에서 외국인 사제와 통역사에게 중국 음식인 월병, 피단, 만두, 술 등을 대접하는 내용이 나왔다. 우리의 식문화에 대한 왜곡이다.
2. 태종이 환시를 보고 백성들을 도륙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태종은 그렇게 백성을 살육한 적이 없다. 태종에 대한 폄훼이다.
3. 충녕대군(후의 세종)이 일국의 왕자인데 시종처럼 구석에 서서 천주교 신부에게 술을 따랐는데, 이 역시 충녕대군을 폄훼하고 욕보이는 것이다.
4. 충녕대군이 기생집에 드나드는 호위무사에게 6대조인 목조가 기생 때문에 야반도주한 내용을 언급하며, 그 피가 어디 가겠냐고 스스로의 입으로 왕실과 조상을 비하하는 내용이 나왔다. 충녕대군을 패륜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5. 충녕대군이 왕이 될 수 없다는 좌절감 때문에 난봉꾼의 삶을 사는 것처럼 묘사되었으나, 역사 속 세종은 그런 적이 없으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스스로를 계발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드라마는 실제 세종의 인물됨을 왜곡하였다.
6. 극중 놀이패 중 한 명이 최영에 대해 "충신? 하이고, 충신이 다 얼어죽어 자빠졌다니? 그 고려 개갈라 새끼들이 부처님 읊어대면서 우리한테 소, 돼지 잡게해놓고서리 개, 백정 새끼라고 했지비아니"라는 대사를 했는데, 이는 당대에 큰 존경을 받았던 역사적 위인인 최영을 모독한 것이다.
7. 연변 사투리를 쓰는 놀이패가 농악무를 추는 장면이 나왔는데, 중국이 '중국 조선족 농악무'를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시킨 것을 감안하면 제작진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8. 무녀의 옷을 보면 한복이 아니라 중국 스타일의 옷이다. 양녕대군이 휘두르는 칼도 중국식 칼이다. 기생집 뿐 아니라 조선 궁궐도 중국식이다.
9. 조선 초에 서양의 가톨릭 교단이 어떻게 조선에 들어오나. 중국에 처음 선교를 한건 예수회의 마테오리치이고, 이 사람은 16세기 말~17세기 초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안 맞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위의 ‘역사왜곡’ 지적들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저 정도를 ‘역사왜곡’이라고 따지고 들면, 우리나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역사 드라마는 하나도 없다. “조선구마사”에 들이댄 잣대를 사용하면 과거 큰 인기를 끌었던 “주몽”, “선덕여왕”, “대장금”, “허준” 등 모든 역사 드라마가 다 역사왜곡물이며 퇴출대상이다. 한국의 역사 드라마에서 당대의 시대성과 고증을 무시해온 것은 그간 수없이 지적되어 왔다. 따라서 이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요소일 수 있지만, “조선구마사”만 차원이 다른 뭇매를 맞는 현상은 기이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조선구마사”는 그냥 하던 대로 했다. 심지어 이 드라마는 '생시(살아 있는 시체)'라고 불리는 좀비 괴물이 날뛰고, 주인공이 이를 때려잡는 오컬트물이다. 장르의 선택에서부터 스스로 ‘역사’ 내지 ‘사실’이라는 주장을 포기한 셈이다. 스스로가 역사임을 주장한 바 없는데, ‘역사왜곡’을 문제삼는 게 맞을까.
드라마 제작진은 의주의 기생집에서 중국 음식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의주가 명나라와 가까운 곳이므로, 중국인의 왕래가 잦았던 장소성을 보여 주기 위한 연출이었다고 해명을 하였다. 비판하는 쪽에서는 이에 대해 의주는 고려 때부터 우리나라 땅이었고, 압록강 건너편은 여진족의 영역인데, 의주 음식점에 무슨 중국적 요소가 있을 수 있겠냐고 반박하는 내용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제작진의 해명이 이해가 간다. 의주는 한반도와 요동 지방을 이어주는 교통의 중심지였고, 무역 거점이었다. 외국인들의 왕래가 많은 접경 지역에 외국 음식이 나오는 주점이 있는 게 논리적으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짜장면만 해도 근대에 중국인 부두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왔던 인천에서 생겨나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일본의 가라오케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부산이었다. 원래 문화라는 게 그렇게 접경지대를 통해 오가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는 법이다. 반대로 의주의 압록강 건너편 단동 지방에 조선 음식이 나오는 주점이 있다고 해서 중국 측이 펄펄 뛸 일은 아니지 않은가. ‘조선 초’라는 드라마 설정의 핍진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안 쓰는 것으로 보이는 제작진이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의주의 장소성에는 그런 디테일을 부여했다는 점이 다소 우스운 면은 있다. 하지만 이는 연출자의 판단에 따라 선택이 가능한 영역이며,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며 문제 삼을 요소는 당연히 아니다.
태종의 백성 살육 장면, 충녕대군의 행동과 발언, 놀이패의 최영 비난을 가지고 역사왜곡을 운운하는 것도 넌센스이다. 이 드라마는 실제 인물이 이랬다고 주장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는 그냥 창작물에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캐릭터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횡행하는 비판 중 우리의 위대한 세종은 저럴 리 없어 같은 반응은 놀랍기까지 하다. 주인공이 신분과 현실의 한계 때문에 좌절하여 엇나가는 행동을 하다가 나중에 각성해서 위대한 인물로 거듭난다는 설정은 창작물에서 흔해 빠진 클리셰이다. 캐릭터의 성장과 발전을 보여 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드라마 “허준”을 보면 젊은 시절 허준은 밀무역을 하던 동네 건달로 나오다가 나중에 각성해서 훌륭한 인격을 가진 의원이 된다. 영화 “천군”을 보면 무과에 낙방한 이순신이 방탕하게 살다가 나중에 각성해서 영웅적 품성을 지닌 인물이 된다.
“조선구마사”의 충녕대군 역시 이러한 설정의 캐릭터이다. 창작물에서 이 정도 캐릭터 설정도 허용 못하면 그게 더 문제이다. 최영이 당대에 존경받았던 충신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조선구마사”에서도 놀이패의 대사를 통해 이건 기본 전제로 깔고 있다. 다만 당시의 백정 중에서는 신분적 차별에 대한 분노 때문에 최영이고 뭐고 떠나서 고려 지배층 전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없으리라는 법이 없다. 이 역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캐릭터 설정일 뿐인데, 여기에 ‘최영 모독’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미국에서 세종과 비슷한 위상을 점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링컨 정도 될 텐데, 미국에선 링컨이 사실은 뱀파이어 헌터이고, 도끼로 뱀파이어 때려잡고 다니다가 심지어 나중에는 자기도 뱀파이어가 된다는 설정의 소설과 영화도 만들어진 바 있다. 이걸 가지고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나는 창작물에서 역사적 실존 인물을 활용할 때 가급적이면 검증된 자료와 역사적 평가를 존중해 주었으면 한다. 이것이야말로 역사물의 진짜 재미 요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연성만 충분히 갖춘다면, 그동안 ‘A’가 이러이러한 사람인 줄 알려져 있었는데, 알고 보면 정반대로 저러저러한 사람이었다는 식의 전복된 설정도 좋아한다. 창작물은 본질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이므로, 캐릭터 설정에는 작가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는 게 옳다. 그렇게 창조된 캐릭터가 설득력과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사후에 판단하고 평가할 문제이다. 근현대사의 인물이라면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나 관계자가 생존해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태도를 갖는 게 맞다. 하지만 태종이나 세종은 무려 600년 전의 인물이다. 종친회가 나서서 비난을 하였다고 하는데, 쓴웃음이 나온다. 차후 김유신을 안 좋게 묘사하는 드라마가 나오면 전국의 김해 김씨가 다 들고 일어서야 할까.
‘연변 사투리를 쓰는 놀이패가 농악무를 추는 장면’을 문제 삼아 동북공정을 운운하는 것은 근거가 빈약한 음모론이다. 콕 짚어 ‘연변 사투리’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모르겠다. 연변 사투리는 함경도 사투리와도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한말이나 일제 시기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함경도 사람이 많이 이주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냥 농악무를 춘 놀이패가 함경도 출신 캐릭터인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게 상식적인 반응이다.
가톨릭 교단에서 파견한 서양인 구마사가 조선 초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고증을 문제 삼기도 한다. 조선에 가톨릭이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기 때문에, 확실히 이상해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불가능한 설정까지는 아니다. 중국 원나라 때 이미 유럽인들이 동아시아까지 왕래하였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이탈리아 사람 마르코 폴로가 대표적 인물이다. 마르코 폴로도 만난 바 있는 원의 쿠빌라이 칸은 교황과 사절을 교환하였고, 나중에는 교황이 보낸 사절이 원의 수도인 대도(북경)을 방문한 적이 있다. 13세기 중후반에 이미 이 같은 교류가 있었으니, 15세기 초인 조선 태종 재위기에 서양인 구마사가 조선을 방문했다는 설정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상황까지는 아니다. 물론 어색하고 무리한 건 맞지만, 어차피 좀비가 등장하는 드라마이다. 제작진도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서양인 구마사 캐릭터의 존재는 이 드라마의 제작진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징표 같다. “킹덤”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로컬 역사물인데도 서양에서 큰 반향을 얻은 것을 보고, 자기들은 아예 서양인을 주요 캐릭터로 넣어 세일즈 포인트로 삼고자 한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일반적인 시대상과 어긋나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조선구마사”에 대해 비판할 점을 찾는다면, 이 드라마의 미장센이 자신이 타겟으로 삼은 서양인들이 바라본 ‘동양의 이미지나 느낌’처럼, 맥락이나 근본 없이 뒤섞여 표현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기왕 드라마의 시간 및 공간 배경을 조선 초로 잡았다면, 이를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소품과 시각 장치의 디테일에 고민하는 게 옳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진은 판타지 장르라는 핑계 뒤에 숨어 대충 느낌만 나게 얼버무린 감이 있다. 대신 부족한 디테일과 해상도는 실존 역사와 인물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때우려 하였다. 애초에 이 드라마의 배경이 어째서 꼭 조선 초여야 하고, 주요 캐릭터가 양녕 대군, 충녕 대군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드는 생각은 PD가 전작에서 다루었던 시대(“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의 PD)가 본인에게 익숙하니 이를 적당히 재활용하고자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조선구마사”에 대한 역사왜곡 부분은 그다지 설득력이 있지는 않다. 그냥 한국 역사 드라마들이 그간 해오던 행위를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영 1주만에 퇴출이라는 엄청난 결과가 나와 버렸다. 그러니 이 사건의 핵심은 드라마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외부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요 몇 년간 한국은 중국과 꽤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들어 오고 있었다. 2016년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 정부가 취한 한한령(限韓令, 한류제한명령)은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최근에는 인터넷 상에서 중국이 한복과 김치를 자신의 것으로 주장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분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알몸으로 배추를 절이는 중국인 사진이 인터넷에서 회자된 사건은 식당 등에서 중국산 김치를 접할 수 있는 한국 사람들의 불쾌감을 자아냈다(해당 사진은 김치용 배추를 절이는 장면이 아니었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 여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음). 전세계를 고통받게 한 코로나 역시 중국에서 발생하였으니 이 역시 중국 이미지에 부정적인 요소이다. 여기에 중국 자본이 한국 문화 콘텐츠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이 PPL 등을 통해 가시화되며, 이에 대한 경계심 또한 강해졌다. 현재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이 동반자나 이웃이라기보다, 고압적이고, 뻔뻔하며, 한국을 위협하는 악당 같은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한국의 콘텐츠 산업 분야에 중국 자본의 영향이 커지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나 역시 부정적이다. 중국 정부가 문화 분야에 대해 취하는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있으며, 폭력적이기까지 한 태도는 자칫 우리 콘텐츠 산업을 망칠 수 있는 독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돈도 좋지만 소재의 자유와 상상력의 보장이야말로 문화의 본질이다. 중국 자본의 침투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꾸준히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여하튼 중국에 대한 악감정과 적개심이 올라간 상황에서 ‘“조선구마사”가 중국 자본으로 제작되었고, 작가는 조선족 같으며, 우리 역사를 왜곡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자극적인 소문이 돌았다. ‘역사왜곡’을 지적하는 내용의 타당성이나 사실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중국이라면 충분히 그랬을 법하다’라는 인식이 중요했다. 휘발유를 뿌린 장작 위에 성냥을 던진 것처럼, 그간 쌓여 있던 악감정을 한번에 폭발시킬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나타난 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는 바 대로이다. 그런 면에서 “조선구마사”는 정말 운이 안 좋았다.
이번 사건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큰 상처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창작 활동의 위축이 걱정이다. “조선구마사”의 사례가 방송 제작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을까? 앞으로는 고증을 잘해서 좋은 역사 드라마를 만들어야겠다? 그보다는 ‘역사 드라마는 위험하다’가 아닐까. 수백 억의 자본을 들여 만든 드라마가 이런 식으로 허망하게 날아가는 것을 보고 돈을 투자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드라마에 참여한 점에 대해 줄줄이 반성문을 쓰고, 심지어 작가의 전작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한테까지 불똥이 튀어 광고가 취소되는 사태를 보고, ‘역사 드라마는 리스크가 있으니 어지간하면 하지 않는 게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실존 인물의 이름이 등장하는 역사 드라마를 아예 못 보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콘텐츠의 활용 면에서 엄청난 제약이고 손실이다.
자신이 지닌 윤리적 당위와 기호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콘텐츠에 대해 ‘애국주의’에 기반해 비난을 하고, 제작자와 배우들을 위협하고, 돈줄을 끊고, 숨통을 조이는 행위들이 있었다. 이는 우리가 비판하는 중국 정부의 태도에서 멀리 있지 않다. 그들도 스스로는 애국한다고 그런 행동을 한다. 역사 연구자로서, ‘역사’가 타자에 대한 악감정을 증폭시키고, 창작 활동을 질식시키는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