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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징어 게임"

kirang 2021. 9. 29. 18:46

  "오징어 게임"은 2021년 9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이다.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을 연출한 황동혁이 각본을 쓰고 연출하였다. 

  일본 영화 "배틀로얄"을 비롯하여 "역경무뢰 카이지"[도박묵시록 카이지], "라이어 게임" 등이 연상되는 서바이벌 게임 장르이다. 일각에서는 표절 이야기도 나왔지만, 이런 류의 설정은 기존에 많이 시도된 것이기 때문에 일단 장르적 특성으로 이해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다만 허공에서 진행되는 어떤 게임 같은 경우는 "역경무뢰 카이지"에서의 그것과 굉장히 흡사하기는 했다.

  주인공이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하는 과정과 게임의 진행 자체는 상당히 흡입력이 있다.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과 했던 추억의 놀이를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의 종목으로 삼는다는 설정도 강한 대비 효과와 함께 극에 개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에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다. 가장 문제는 위하준이 연기한 형사 캐릭터이다. 형사와 관계된 모든 이야기는 그냥 다 들어내버리는 게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위해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소식이 끊어진 형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수상한 자들을 미행하다가 오징어 게임이 벌어지는 섬으로 잠입하는 상황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형사는 잠입 과정에서 일꾼 한 명을 살해하여 바다로 던져 버린 다음 가면을 뒤집어 써 그 사람으로 위장한다. 당시 형사의 시점에서 괴상한 가면을 쓴 이 집단은 아직 '수상쩍은 짓을 하는 이상한 자들'에 불과하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을 학살하는 잔인무도한 악당들인 게 분명하지만, 형사 시점에는 아직 별다른 범죄 사실이 확인된 바 없다. 그럼에도 형사는 단지 잠입수사를 하려고 망설임없이 사람을 죽였다. 정상적인 경찰이 할 법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고, 행동의 당위가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

  형사가 제거한 일꾼이 하필이면 조직 몰래 장기 밀매 행위를 하는 그룹의 일원이었다는 것도 공교롭다. 형사가 특별한 취향을 가진 모 VIP가 좋아하는 '예쁜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도 우연이 지나치며, 형사가 섬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잠수 장비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너무 편의적인 설정이다. 우주의 기운이 죄다 모이기라도 한 것인지. 그의 목적을 이루어 주기 위한 상황들이 너무도 친절하게 줄을 잇는 터라, 작위성을 참고 지켜보는 게 괴롭다.

  이 드라마의 또다른 문제는 각본의 대사가 많이 안 좋다는 점이다. 특히 의사를 비롯한 장기 밀매 그룹 멤버들의 대사는 최악이다. 다들 지나치게 감정 과잉인 데다, 형사에게 정보 전달을 해 주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것처럼 장황하게 떠들어댄다. 심지어 형사조차도 굳이 말할 필요 없는 형의 신장 행방을 악당에게 알려 주는 등 투 머치 토커 대열에 당당히 끼어 있다.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대사를 내뱉는 캐릭터들은 그 외에도 많다. 한미녀 같은 경우는 게임 참여자들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주도적인 캐릭터임에도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것 같다. 무엇보다 대사가 이상하게도 캐릭터와 짝 달라붙지 않고 붕 떠 있어서 '척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게 배우의 연기력 때문이라기보다 그냥 각본이 별로여서인 것 같다. 서바이벌 데스 게임을 개최한 목적은 너무 뻔하고, 게임을 즐기는 VIP들의 행동과 대사는 유치할 정도로 스테레오 타입에 갖혀 있어 민망할 정도이다. 드라마 전반에 걸쳐 대사들이 별로인지라, 정호연이 연기한 새벽은 말수가 많지 않아 이득을 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필요하게 잔인하고 선정적이라고 느껴지는 장면들도 있었다. 화면 가득 피칠갑을 하며 장기 적출을 하는 장면이나, 덕수와 미녀가 화장실에서 나누는 육체의 대화 같은 것도 굳이 그렇게 묘사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극의 완성도와 별개로 넷플릭스가 부여한 연출의 자유도를 어떤 식으로든 누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한국의 영상 콘텐츠를 볼 때마다 폭력을 최대한 잔인하고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데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심의 규제 등으로 오랜 세월 '하고 싶은대로 못해본 게 한이 된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징어 게임"이 미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하는 등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좋았던 점보다는 거슬리는 점이 더 많았던 터라 '아니 대체 왜?' 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어쩌면 서양인들은 과거 일본에서 많이 만들어진 이런 류의 장르에 익숙하지 않아 신선함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다면 이건 국제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들어낸 넷플릭스의 승리라 보는 게 맞겠다.

*추신 1: 오징어 게임을 실무적으로 관리하는 일꾼들의 업무 환경과 복지가 너무 열악해 보였다. 방도 좁고 음식도 별로. 얼굴에는 하루 종일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어야 하고, 말도 함부로 못한다. 툭하면 살인을 해야 하고, 야근도 있다. 나중에 일당은 제대로 챙겨 주려나? 이 사람들은 무슨 사연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추신 2: 화장실 천정의 환기구 통로를 이용해 적정을 관찰하는 장면은 최근에 나온 "파이널 판타지7 리메이크"에도 나온다. 혹시 감독을 게임을 하고 나서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동그라미, 세모, 네모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의 조종 패드의 기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