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대한 리뷰
책 "일식"
kirang
2016. 1. 2. 12:01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가 "일식"이라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짐직하다. 서양 중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젊은이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학적이라는 평 때문이다. 실제로 "일식"의 도입부 몇 장을 읽다보면 낯선 용어들이 지면을 어지럽히며 지적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히라노는 움베르트 에코와 비슷한 유형의 작가인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두 소설은 나란히 비교하기엔 곤란한, 전혀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형식부터 살펴보자. "일식"을 소개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은 '장중한 의고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글판에서는 '장중한 의고체'의 분위기는 전혀 살지 못했다. 낯선 용어가 꽤 등장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맥상 그 의미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고 출판사의 주장처럼 '놀랍다'는 수식어를 쓸 정도는 아니다. 아마도 번역물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일 것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뒷받침해주는 지명, 인물명, 학회명 등의 사용은 "장미의 이름"에 비견될 만큼 자주 등장하지만, 그 사용이 소설의 초중반으로 한정되어 있는데다 책 말미에 사전식의 미주로 간단하게 처리되어 있어 장미의 이름이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는 '학문적 진지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물론 이 '진지함'이라는 게 소설이라는 장르에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에코의 작품에서는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독특한 매력으로 작용하였던 터이다. 하지만 "일식"은 "장미의 이름"처럼 지식과 정보를 쏟아 부은 무거운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용 상으로는 오히려 "장미의 이름"보다 더한 난해함을 보여 주고 있다. "장미의 이름"은 방대한 주석과 장황한 설명이 넘쳐나는 책이지만 독서를 마칠 무렵이면 에코가 고발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비교적 명료하게 정리가 된다. 하지만 "일식"은 아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에도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는 게 만만치 않다. 그것은 "장미의 이름"이 비록 갖가지 상징적 기호들로 뒤범벅이 되어있을망정 스토리 전개 자체는 '있을 법한 일'을 다루고 있는데 비해, 일식은 '안드로규노스'와 태양의 성적 결합 등 황당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장미의 이름"이 근대 합리주의자의 시선에서 중세를 관찰한 것이라면, "일식"은 신비주의자나 관념론자의 시각에서 중세를 묘사하고 있다. "장미의 이름"이 역사물이라면, "일식"은 환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두 책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며, 전적으로 출판사의 마케팅이라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