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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영화 "구타유발자들"

by kirang 2009. 6. 20.

  이문식, 오달수, 한석규, 차예련 등이 출연한 2006년 개봉 영화이다.

  구타유발자의 이야기는 매우 제한된 공간(강원도 시골 구석의 어떤 다리 밑 강가)에서 진행된다. 몇 년 전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전화박스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폰부스라는 영화가 개봉한 적이 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워낙 장소 이동이 없는 영화다 보니 연극으로 각색하더라도 크게 손댈 부분이 없어 보일 정도다. 그런 만큼 기발한 상황 설정과 아이디어, 배우들의 연기가 성공의 관건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구타유발자의 설정과 시나리오의 완성도는 매우 뛰어나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최고 수준이다. 영화는 비호감, 불쾌함, 역겨움, 폭력성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관객에게 그런 감정이 들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 영화이니까 칭찬이 되겠다. 개봉 당시 흥행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코믹잔혹극'이라는 컨셉을 내세웠던 모양인데, 실제로는 코믹적 요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웃음이 나더라도 결코 개운한 웃음이 아니다. 그냥 부조리하고 그로데스크한 잔혹 스릴러로 생각하고 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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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쉴새 없이 자행되는 폭력들과 배우들의 역겨운 비호감 연기를 연료 삼아 열심히 달린다. 그렇게 달리다 어느 순간 이야기가 늘어진다고 느껴지는 지점에 다다른다. 제한된 무대에서 아이디어와 설정만으로 밀어 붙이기엔 역시 힘이 부쳤던 것일까. 그리고 의심이 든다. 영화가, 미친 듯 막 나가는 것으로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놓고 그 이상을 넘지 않기 위해 통제되고 있다는 의심이다. 결국 후반부에서 흩어졌던 단서들이 짜맞추어지고 주제의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 이 '폭력적인 영화'는 사실 '폭력을 너무나 혐오하는 사람'이 만든 이야기라는 것이 드러난다.

  영화의 주제의식은 진지하고 모범생스러우며 친절하다. 때문에 철저히 양아치스러운 영화 초중반의 질주와 어울리지 않는 감이 있다. 영화의 형태와 주제의식의 만남이 터무니없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도 않다. 화자가 갑자기 '봤지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겠어요?' 하고 정색하며 개입하는 느낌이다. 분명 의미 있는 윤리적 주제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 초중반의 파괴력 있고 에너지 넘치는 질주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브레이크를 걸지 말고 초중반의 톤을 끝까지 유지했다면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괴작이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괴작을 내놓기엔 감독이 너무나 '정상적인' 범주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