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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드라마 "나인: 아홉번의 시간여행"

by kirang 2014. 8. 13.


"나인"은 2013년 초에 케이블 채널인 TVN에서 방영된 20부작 드라마이다. 본방을 할 당시에는 존재를 몰랐고, 1년이 지난 후에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드라마이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는 상당히 까다로운 편인데, "나인"의 경우는 어려운 소재를 깔끔하게 다루는 데 성공했다. 특히 시간 여행의 패러독스, 과거의 수정을 통해 현재가 바뀐다는 인과관계의 뒤엉킴을 시간 여행을 알고 있는 등장 인물들의 기억 중첩이라는 형태로 풀어낸 것은 재미있는 부분이다. 과거의 시간 흐름과 현재의 시간 흐름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병행 연출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모두 '진행'으로 만들어낸 점 또한 좋은 선택이었다. 

물론 정색하고 따지고 들면 이게 과연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인가 의심스럽지만,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연출이라고 용납해 줄 수 있는 범위 안에는 있다고 본다.전반적으로 이야기의 템포가 빠를 뿐더러 이걸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하나 싶은 순간들마다 적절한 반전을 배치하며 날렵하게 빠져 나오는 작가의 솜씨를 칭찬하고 싶다. 

이진욱은 "나인"에서 주인공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한다. 이건 네이버의 인물 정보 프로필에도 나오지 않는 내용인데, 이진욱은 신인 시절 "부활"에서 대사 한 마디 하고 사라지는 단역으로 몇 초 동안 등장한 바 있다. 그럼에도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이진욱이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역을 맡았던 드라마인 "연애시대"를 보고 난 직후에 "부활"을 보았던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나인"을 보면서 여러 차례 "부활"을 연상하였다. 냉혹한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 숨겨진 잔인한 진실,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하는 연인 등 비슷한 면이 적지 않다. 예컨대 "부활"에서는 복수를 위해 다른 인물인 척하는 남자 주인공의 정체를 여자 주인공이 못 알아보는 설정이라면, "나인"에서는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가 바뀌는 바람에 여자 주인공의 기억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 사라져 알아 보지 못한다는 식이다. 작가가 "부활"을 보았고 은연중 그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이야기의 마무리는 다소 의구심이 남는다. 하지만 "나인"은 요 몇 년간 나온 한국의 드라마 중에서 전체적인 완성도가 수위에 오를만한 좋은 작품이다. 이 정도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케이블 TV의 역량이 공중파에 결코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추월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