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5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재판부는 이덕일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이덕일이 자신의 책에서 김현구 전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를 식민사학자로 규정한 데 대해 김현구 교수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 결과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주장하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전제로 피해자를 식민사학자로 규정했다"고 하였고, "피고인의 학력과 경력 등을 보면 피해자가 임나일본부설을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하지 않았음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역사학자인 피고인의 영향력을 볼 때 명예훼손 정도도 매우 크다"며 "그럼에도 자신을 식민사학 카르텔의 피해자로 포장하고 이 사건의 논점을 역사 논쟁으로 흐리려 하는 등 범행 후 정황도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2016년 11월 3일의 항소심에서는 원심을 깨고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재판부는 이덕일이 자신의 책에서 “김 교수가 책에 ‘백제는 야마토 정권의 속국·식민지이고, 야마토 정권이 백제를 통해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고 주장했다”고 한 부분에 대하여 “사실 적시라기보다 의견 표명이라고 봐야 한다”며 무죄 선고의 이유를 밝혔다. 이덕일 주장의 타당성 여부와 무관하게 학문의 세계에서 있을 수 있는 의사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여기에서 법리적인 부분을 논할 여유는 없다. 그보다 역사 해석의 문제가 어째서 법정으로까지 가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이덕일은 《우리 안의 식민사관》(2014)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김현구를 임나일본부설 지지자라 주장하였다. 그 근거는 김현구가 저술한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2010)라는 책의 내용이었다. 이덕일에 따르면 김현구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고 한다.
① 한반도 남부에는 실제로 임나일본부가 있었다.
② 그런데 임나일본부는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아니라 백제가 지배하였다.
③ 백제를 지배하는 것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터무니없고 해괴한 모함이다. 김현구는 임나일본부설을 깨뜨리기 위하여 평생을 연구해 온 학자이다. 김현구가 수행한 연구의 핵심은 임나일본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일본서기》의 내용을 우리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가야 지방에 군사적으로 영향을 행사하였던 ‘임나일본부’라는 기구가 사실은 일본과 무관한 백제의 군사령부였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백제 근초고왕이 가야 지방에 대한 군사 정벌을 하였는데 이때 일정한 대가를 받고 용병 역할을 하였던 왜 세력이 자신들이 가야 정벌의 주체인 양 왜곡하여 《일본서기》에 기록하였다는 것이 김현구설의 요지인 것이다. 김현구는 애초에 ‘임나일본부’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최근 학계에서는 '임나 일본부'의 실체를 군사 기구가 아니라 당시 가야 세력이 백제, 신라, 왜 사이를 능동적으로 오가며 펼쳤던 외교 정책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김현구의 견해에 대하여 지나치게 백제 중심적 접근법이어서 가야의 역할과 주체성을 과소평가하였다는 비판이 제시된 바 있다. 다만 김현구 설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그의 학설이 기존의 임나일본부설을 깨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제시되었다는 것만큼은 학계의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덕일은 놀랍게도 이러한 김현구의 학설을 ‘임나일본부설 추종’으로 규정하고, 김현구를 식민사학자라 비난하였다.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이덕일은 김현구의 저서 내용을 이리저리 짜깁고, 악의적으로 오독하여 임나일본부설의 지지자로 몰아가는 한편 국내 고대사학계 전체가 이처럼 식민사관으로 오염되어 있다고 설파하였다.
학문의 세계에서 비판이 제시되는 것은 당연하고, 또 권장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학문적 비판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의도와 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인용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상대의 본 의도를 비틀고, 텍스트의 짜깁기를 통하여 왜곡하여 몰아가는 것은 정상적인 학문 행위라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덕일이 이처럼 몰상식한 행위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역사학계 전체에 식민사학이라는 이미지를 뒤집어 씌우고, 거기에 대항하는 정의로운 역사학자의 이미지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기 위해서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한마디로 망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책을 팔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황당한 것은 이덕일 본인이야말로 과거 임나일본부설과 매우 흡사한 주장을 펼친 바 있다는 것이다.
……왜의 위치는 마한과 진한, 변진의 남쪽, 즉 한반도 남부이다. 따라서 왜는 중국의 삼국시대인 3세기까지는 한반도 남부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한반도에 있었던 왜는 백제와 신라를 영향력 아래 두고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맞서 싸웠던 강력한 정치집단이었다. 그간 일본인들이 왜를 일본열도 내로 비정하면서 생겼던 모든 모순은 왜를 한반도 내의 정치집단으로 이해할 때 풀리게 된다. ……전남 나주 반남고분군은 고대 한반도 남부지역을 지배했던 왜라는 정치세력이 남긴 민족사적 유산이다"
이덕일․이희근, 1999,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1, 김영사, 21~27쪽.
이 이상의 여러 기록들은 전남 나주 일대에 있던 왜 세력이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한반도의 패권을 다투다가 패배해 일본열도로 이주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덕일, 2005 《교양 한국사》1, 휴머니스트, 231~232쪽.
이덕일은 1999년 이희근과 공저한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라는 책에서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였다는 놀라운 주장을 하였다.
장담할 수 있다. 만약 일반 역사학자가 이런 말을 입에 올리거나 논문으로 발표했다면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욕을 먹었을 것이다. 이건 임나일본부설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복사해 놓은 수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이덕일은 이제 막 대중 역사학 분야에 진입한 풋내기였기 때문에 잘 모르고 저런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 정도 지명도를 쌓은 이후 저술한 단독 저서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였다. 다만 이덕일은 학계에서 너무도 미미하고 돌아볼 가치도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헛소리를 신경 쓰지 않았고, 비판의 대상도 되지 않았을 뿐이다.
정작 임나일본부설과 똑같은 이야기를 떠들어대며 밥벌이를 하던 사람이 평생 동안 학문의 최전선에서 임나일본부설과 싸워 왔던 노학자를 식민사학자요, 임나일본부설의 추종자라고 모함하였다. 더구나 해당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여 대중들에게 팔아치우며 금전적 이득을 취하였다. 도대체 이러한 행태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나로서는 '후안무치'라는 말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학문 영역에서 고소라는 행위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김현구가 충분히 명예훼손으로 느끼고 분개할 만한 일이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할 수 있으리라.
최종심에서 어떤 판결이 나오게 될지는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함의는 둘 중 하나이다.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면 이덕일은 돈에 눈이 멀어 멀쩡한 학자를 모함을 한 것이 인정된다. 따라서 그 사악함과 비도덕성을 공인받게 되는 것이다. 반면 무죄 판결이 내려진다면 김현구가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였다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진심으로 믿었다는 것이 되므로, 멍청함을 공인받는 셈이다.
결국 이덕일이라는 인물에 대한 판단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사악하거나, 멍청하거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평생 동안 성실하게 연구를 수행해온 한 역사학자에 대해 비열한 날조와 모함이 이루어지고, 이로 인하여 법적 다툼까지 벌어진 이 사건은 우리나라 대중 역사 분야가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