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 저, 김석희 역, 2009, "해저 2만리", 작가정신.
"해저 2만리" 완역본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하였다. 워낙 유명한 책이다 보니 번역서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 대개는 아동용 혹은 청소년용이다. 완역본 중에서는 열림원에서 나온 빨간 표지의 쥘 베른 걸작선과 작가정신에서 나온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번역자는 같다. 이중 아름다운 칼라 도판이 있다는 점이 소장욕을 자극하여 결국 작가정신에서 출판된 책으로 최종 결정을 하였다. 막상 읽어 보면 칼라 도판은 책 내용과는 큰 상관이 없는 백과사전 식의 정보들이기는 하다.
"해저 2만리"는 어렸을 적에 수차례 읽었던 책이다. 완역본을 읽었지만 기억에 없는 새로운 에피소드는 없었다. 과거 읽었던 것이 제법 충실한 요약판이었나 보다. 그나마 새로운 느낌을 받은 점은 네모 선장의 캐릭터이다. 신비스럽고 과묵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완역본을 보니 굉장히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한번 입을 열면 참으로 장황하게 떠들어댄다. 네모 선장이 아로낙스 박사 일행을 노틸러스호에 탑승시킨 게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이 외로운 남자는 자기 수다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아로낙스 박사는 그야말로 적격의 인물이다. 리액션이 참 좋다.
네모 선장은 천재적인 모험가이자 연구자로 묘사된다. 전기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노틸러스호만 하더라도 19세기 중반의 과학 기술력을 훨씬 뛰어넘은 하이테크놀로지다. 네모 선장은 작중 노틸러스호의 동력원을 비롯하여 이것 저것 과학 지식을 열심히 나열하지만 지금 관점에서 보면 미심쩍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내용이 많다. 이건 시대적 한계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할 것이다. 소설 뒷부분에 등장하는 대왕 오징어의 다리가 8개로 묘사된 점은 지금도 의문이다. 오징어 중 다리가 8개인 종이 실제로 있는 것인지, 아니면 쥘 베른이 오징어와 문어를 착각했던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SF 모험 소설치고는 흥미진진한 사건의 전개보다는 심해의 신비를 상상하여 열심히 나열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네모 선장의 매력은 빛을 발한다. 결국 소설이 끝날 때까지 그의 정체와 국적, 세상을 등진 이유 등에 대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으며 수수께끼로 남는다. 캐릭터 구축 면에서 이는 성공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를 통해 네모 선장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 되었고, 이야기의 여운도 길게 남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