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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노트

무지와 피해의식에서 나온 그릇된 '연호 논란'

by kirang 2019. 5. 3.

“헤이세이 끝나 쓸쓸”…트와이스 사나의 인스타, 그렇게 문제였을까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2435.html

--> "일부 한국 누리꾼들은 “전범 국가 국민이 군국주의를 연상시키는 연호를 언급한 것은 경솔한 행동”이라며 사나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해당 게시글에는 “우리는 일본에 당한 뼈아픈 과거가 있기 때문에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면 반일감정이 생긴다. 글을 안 지우면 한국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것”, “역사를 모르면 사과를 해야 하는데 역사도 모르고 사과도 모른다”와 같은 댓글이 달렸다. 자신을 강제징용 피해자 최장섭씨의 외손녀라고 밝힌 오혜수씨는 트와이스 소속사인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 대표인 박진영씨의 인스타그램에 “(사나의 글이) 참담하다”는 댓글을 남겼다. 오씨는 댓글에서 “군국주의의 상징이자 일본 우익세력의 근간인 연호에 대한 사나씨의 글은 전범국 국민으로서 일말의 죄의식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낯부끄러운 글이었다”고 했다." 

  참담하고 부끄럽다. 정확한 개념이나 지식 없이 피해 의식만으로 구성된 '올바른 역사의식'이라는 건 이런 터무니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연호는 동아시아에서 오랜 기간 통용되던 제도이다. 위 주장을 펼친 사람들이 표출한 '연호=군국주의의 상징'이라는 인식은 전혀 옳지 않다. 연호는 군주의 재위를 기준(한 명의 군주가 여러 연호를 바꾸어 사용하기도 했다)으로 연도를 세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개념을 확장하면 지금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서력도 연호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문명권에서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연도를 세기 시작한 것을 비기독교 문명권에서도 받아 쓰는 것이다. 어찌보면 조선 시대에 당시 기준으로 글로벌 스탠다드였던 중국 연호를 받아 썼던 것과도 비슷하다. 

  근대 국가에서 전근대의 유산인 연호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애초에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명목상이지만 군주가 실재하는 이상 연호가 존재하는 것도 딱히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 근대 국가인데 군주가 왜 있느냐고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일본 뿐 아니라 영국을 비롯해 유럽 다수 나라에는 여전히 군주가 존재한다. 입헌군주제는 엄연히 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인정받는 정치체제이다. 연호제의 존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지, '연호=군국주의의 상징'이라는 식의 무지막지한 형태는 곤란하다. 

  이번 사건은 예전에 걸그룹 SES가 일본에서 촬영을 위해 신사를 방문했다가 온갖 비난을 받았던 것에 비유할 만하다. 아는 신사가 야스쿠니 신사밖에 없으니 '신사 방문=야스쿠니 신사 방문'으로 생각하여 비난을 가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정작 SES가 방문했던 것은 일본에 널리고 널린 일반 신사였다. 무분별한 피해자 의식과 무지로 발생한 집단 폭력이라 할 수 있다. 해당 글을 올렸을 당시 상상도 못했을 이 논란에 사나가 받았을 충격이 안쓰럽다. 

  추신: 문득 사람들의 이런 반응이 히로히토 천황과 이번에 퇴위한 아키히토 천황을 구분 못하고 동일 인물로 착각한 데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