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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과 잡담

총선을 앞두고 우울한 전망이 감도는 정의당을 바라보며

by kirang 2020. 3. 28.

  2020년 3월 26일자 "연합뉴스" 기사에 이번 총선의 정당별 예상 비례의석 수 시뮬레이션 결과가 실렸다(리얼미터 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00326112800001?input=1195m

 

"시민당 16·미래한국 16·열린민주 7"…총선 비례의석 추산 | 연합뉴스

"시민당 16·미래한국 16·열린민주 7"…총선 비례의석 추산, 김동현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20-03-26 14:19)

www.yna.co.kr

  양대 정당의 위성 정당은 각각 16석으로,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비례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정봉주와 손혜원이 만든 열린우리당은 7석, 그리고 정의당과 국민의당이 각각 3석씩 확보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이 전망이 현실화할 경우 이번 총선의 가장 큰 패배자는 정의당이 된다. 정의당이 선거법 개정에 들인 정성을 생각해 보면 허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두 거대 정당이 위성 정당을 만드는 선택을 함으로 인해, 새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는 파탄이 났다. 선거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난잡해졌다는 점에서 선거 제도 개혁은 커녕 기존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보다 오히려 퇴보해 버렸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판이 이 지경이 된 데는 미래 통합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이들은 수권 정당이었다는 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후안무치한 선택을 하였다. 하지만 미래 통합당 입장에서는 자기들은 애초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룰 개정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항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합의도 없이 룰의 개정을 밀어 붙였고 그 결과 내 목숨줄이 끊어지게 된 판인데, 도의는 무슨 놈의 도의냐고 되물을 법 하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법 개정을 주도하였던 정의당과 민주당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양당은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상대방이 어떤 극단적인 수법을 들고 나올지를 충분히 예상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특히 정의당은 가장 큰 수혜의 대상자였으므로, 누구보다도 꼼꼼하게 제도의 빈틈을 찾아 대비했어야 할 동기와 의무가 있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았음에도 디테일에 소홀하여 이 지경에 이른 셈이다.

  새 선거법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경우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정당은 명백하게 정의당이다. 양대 정당인 민주당과 통합당은 모두 의석수가 크게 감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에 동참하였다. 자기 당의 의석수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정치적 라이벌인 통합당의 의석수를 줄이는 게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통합당이 페이퍼 위성 정당을 만들기로 결정한 순간 민주당의 위성 정당 창당 역시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애초 선거법 개정의 의도와 달리 통합당에게 비례 의석수를 퍼 주고, 민주당만 독박 쓰게 된 상황인데 이걸 가만히 앉아 당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명분의 문제가 있다보니 차마 대놓고 독자적인 위성 정당을 만들지는 못하고 '진보세력 간의 연합 비례 정당'이라는 형태의 카드를 제시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의당이 이 카드를 받기를 바랐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민주당과 정의당이 함께 '진보 연합 비례 정당'에 참여할 경우, 통합당의 비례 의석수는 10석 줄어들고, 반대로 '진보 연합 비례 정당'은 10석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민주당과의 지분 협상에 있어서도 명분상 정의당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정의당은 이 제안을 거부하였다. 정의당이 페이퍼 비례 정당에 참여한다는 건 곧 선거법 개정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니 심리적 저항이 있었던 것 같다. 단독으로 20석을 확보해 원내교섭단체를 결성하고자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던 터라, 민주당과 새삼 의석수 지분을 가지고 실갱이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도 싫었을 법 하다. 위성 정당의 부도덕성과 비윤리성을 맹렬하게 공격하여, 위성 정당을 만들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민주당을 주저앉힐 수만 있다면, 어차피 갈데 없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비례표는 정의당으로 올 수밖에 없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계산은 틀렸다. 정의당은 민주당의 권력욕을 너무 얕보았다. 또 자신의 정당 지지 의사 표출 방법을 강제적으로 제한받게 된 민주당 지지자들의 불쾌감을 지나치게 경시하였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정의당의 거부가 오히려 반가웠을 수도 있다. '진보 연합 비례 정당'에 정의당이 참여할 경우, 애초 선거법 개정이 정의당에게 혜택을 주는 취지의 것이었던 만큼, 의석수를 딜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정의당에 상당한 지분을 보장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정의당이 참여를 거부한 이상 '진보 연합 비례 정당'은 사실상 민주당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녹색당 등 일부 소수 정당들이 원내 진입이라는 실리를 위해 민주당이 마련한 플랫폼에 참여하였지만, 거의 농락되다시피 하며 솎아져 나갔다. 현재의 더불어 시민당은 연합 세력으로서 최소한의 형식적 시늉만 하고 있을 뿐 철저하게 민주당의 통제 하에 있는 말 그대로 '위성 정당'이다.

  민주당 입장에서 애매한 부분은 손혜원과 정봉주 등이 만든 '열린 민주당'의 존재다. 이들은 민주당 내에서도 강성, 골수 세력의 지지를 받아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스스로는 민주당의 진정한 위성 정당이라 자임하고, 정작 민주당은 이를 부정하는 희한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여론조사로 보면 원내 진입은 확실시된다. 일단 세력을 형성하여 원내로 진입한다면 권력의 속성상 민주당이 이들을 계속 부정하고 밀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과연 민주당에 도움이 되는 존재일까. 글쎄, 내가 보기엔 앞으로 통제 불능의 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나이브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비례대표의 면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당에 헌신하며 역량을 검증받았던 사람들은 줄줄이 떨어지거나 후순위로 밀리고, 당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상징성을 부여해 할당된 사람들이 앞순위에 포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문제는 원래 기대와 달리 당선권의 영역이 크게 축소된 현 상황에서는 본말이 전도된 기이한 상태로 보인다는 점이다. 게다가 정작 그렇게 뽑힌 앞순위 비례 후보자들이 당의 득표율을 견인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특히 말 많은 20대 나이의 비례 1번 후보. 정의당 입장에서는 20대 젊은 층의 표심을 노렸던 것 같지만, 해당 후보의 대리 게임 경력 논란이 불거지며 정작 20대의 반응이 더 싸늘해 보인다. 무려 정당의 비례 1번 순위의 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대체 저 사람의 뭘 보고 국회의원을 만들어 줘야 하나'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면, 실패한 인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의 간판인 심상정조차도 지역구에서 살아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면, 앞으로 이 당의 중심이 어떻게 잡힐지도 걱정이다.

  최근 정의당이 보여준 행보는 여러 모로 실망스럽고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 지형에서 정의당의 포지션이 사라지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다. 제3 세력으로서의 존재 가치와 최소한의 정치 역량을 함께 증명해 낸 진보 세력은 현재로서는 정의당 뿐이다. 두 거대 정당 외에 다른 정치적 선택지를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는 명제 또한 유효하다. 따라서 나는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이 좀더 선전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