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노트
역사 지식 소매상으로서의 설민석이 가진 한계
by kirang
2020. 12. 21.
나는 입시 사교육 강사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직업이라 생각한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공교육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사교육을 통해 효율적으로 채우고자 할 수 있다. 돈을 받고 남을 가르친다는 행위 자체가 윤리적으로 나쁜 일도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입시 사교육이 가지는 특수성이 있다. 과열된 입시 교육 체제가 사회에 부과하는 스트레스와 비용을 감안하면, 입시 사교육 분야는 사람들의 욕망과 공포감으로 펌프질되는 돈을 움켜쥐는 직종인 셈이다. 죄의식까지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아주 명예로운 일이라 하기도 좀 그렇다.
그런데 요즘 말 많은 설민석은 다소 묘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내 블로그를 방문한 어떤 사람은 무려 설민석을 '존경'한다는 말까지 한 적이 있다. 이건 아마도 그가 다루는 분야가 역사, 특히 한국사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사 교육은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비단 설민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제도 안에서의 교육 기조, 제도 밖에서의 한국사 지식의 소비 양태 자체가 그렇다. 그러다보니 '한국사의 대중화'를 위해 활동한다고 자처하는 설민석이 마치 지사(志士)처럼 이미지화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본인은 그냥 장사를 하고 있는 건데, 지켜보는 사람들이 공익을 위한 활동으로 치켜 올려 주는 격이다.
그동안 지켜 본 바에 따르면 설민석은 지식과 정보의 신뢰성을 판별하는 학문적 훈련이 거의 안 되어 있는 사람이다. 이게 입시 학원 강사로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입시에서 정답은 정해져 있고, 학원 강사는 학생들이 정답을 효율적으로 머릿속에 집어넣고 시험볼 때 뽑아낼 수 있도록 도와 주면 그만이다. 입시 강사로서 설민석의 장점은 이를 위해 내러티브를 능숙하게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섞여 들어가는 자잘한 오류야 어차피 시험 문제로만 안 나오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설민석이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얻으며 '입시 교육'이 아니라 교양 지식 소매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자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제대로 지식 소매상 일을 하려면 고급 지식에 접근하는 훈련이 어느 정도 되어 있어야 한다. 설민석이 가진 능력 밖의 일인데, 방송 미디어가 그의 이름값에 기대어 자꾸 그런 요구를 하는 것 같다. 설민석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지식을 대하는 방송 미디어의 얄팍함의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