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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드라마 "트릭"

by kirang 2009.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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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릭"은 일종의 추리물로, 두 주인공이 갖가지 미스테리한 사건들의 이면에 숨겨진 속임수와 사기행각을 찾아내 폭로하는 내용의 TV 드라마이다. 수 년에 걸쳐 시즌 3까지 나왔고, 스페셜판이나 극장판까지 나온 것으로 보아 일본에서의 인기도 상당히 좋은 듯 싶다. 10~11회로 이루어진 한 시즌당 다섯개 정도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보통 2회 분량으로 하나의 사건이 해결된다.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순서를 틀리게 보거나 띄엄띄엄 보아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다. 

  "트릭"은 장점과 단점이 매우 분명하게 보이는 드라마이다. 일단 장점부터 살펴보면, 강력한 캐릭터의 존재를 들 수 있다. 남자 주인공인 일본 과학기술대 물리학 교수 우에다와 여자 주인공인 가난한 마술사 야마다의 콤비 플레이는 이 드라마의 핵심 요소이다. 우에다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 상당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고 대외적인 명성도 가지고 있는 엘리트이지만, 실제로는 센스도 둔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기절을 밥 먹듯 하는 '엉성한' 인물이다. 사건 해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명탐정 코난"에 나오는 '잠자는 명탐정 유명한'을 연상하면 되겠다. 반면 야마다는 학력도 별볼 일 없고 평소 생활은 철저한 루저의 그것이지만, 수수께끼와 사건 해결에 있어서는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유명 물리학자인 우에다에게 미스테리 현상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고, 밀린 집세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야마다가 이러저러한 핑계로 현장에 끌려가 사건을 해결하면 이를 통해 다시 우에다의 명성이 올라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시종일관 뻔뻔스러운 우에다와 맹함과 영리함 사이를 오가는 야마다의 티격태격하는 콤비 플레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들 외에 사건보다는 자신이 쓰고 있는 가발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형사 야베 같은 조연 캐릭터 역시 개성이 강하고 보는 재미가 있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장점은 시치미 뚝 뗀 B급 연출이다. 대놓고 가짜 티 내는 소품들, 싸구려 특수효과, 과장된 연기,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유치한 농담 따먹기 등은 주성치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꽤 먹히는 요소다. 신기해 보이는 초자연 현상들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논박하는 서사 구조도 흥미를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단점은 앞서 나열한 장점과도 연결되어 있는데, 이야기가 너무 장난스럽게 진행되고 싸구려 B급 정서를 강조하다 보니 논리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즉, 초자연적인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속임수들을 폭로하고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는 취지에 걸맞지 않게 개연성이 떨어지는 비논리적인 이야기 전개, 사건을 위한 사건, 속임수를 위한 속임수 등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억지로 사건을 만들려다 보니 범인들의 행동에 대한 동기부여가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설정도 남발된다. 때문에 드라마 상에서는 주인공이 치밀한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하여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음에도, 지적 자극을 받는다든지 논리적 쾌감을 느낀다든지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일본이 나름대로 추리소설 장르가 크게 발달한 곳이라는 걸 감안할 때 아쉬운 점이다. 추리 장르에서 일정한 수준의 훈련을 받은 이들이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면 훨씬 나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또 다른 단점은 작품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언어적인 문제인데, 이 드라마에는 동음이의어 등을 이용한 말장난 개그가 너무 많이 나온다. 과장을 좀 보내면 대사의 3분의 1은 말장난 개그다. 이 개그의 진가는 일본인들만이 느낄 수 있다. 외국인인 우리로서는 극히 일부 외에는 말장난인지 눈치채기도 힘들고, 과연 어느 정도 재치 있는 말장난인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알아먹을 수 없는 개그가 계속 나오니 일본인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외려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시리즈가 길다보니 각각의 사건들의 패턴도 빤히 읽혀져 그 사건이 그 사건 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악당 캐릭터의 한계도 있다. 짧으면 1회, 길어야 3회 정도 출연하고 사라지는 존재들이다 보니 긴장감을 주지 못한다. 주인공이나 고정 조연급 캐릭터들에 들이는 정성에 비해 악당 캐릭터에 대한 투자가 크게 부족하다. 그냥 딱 봐도 한 두회 나왔다 사라질 것 같은 일회용 마스크의 배우들이 악당으로 등장하곤 한다.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탓에 취향을 탈 여지가 많은 드라마이다. 논리성과 전통적 추리 장르에 대한 기대를 어느 정도 낮추고 우에다와 야마다의 캐릭터에 집중해 본다면 나름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