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단상과 잡담

'동해', '일본해' 문제에 대해서

by kirang 2009. 5. 23.

  예전에 다큐멘터리 채널을 보다가 '동해' 문제가 언급되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에 논지는 '동해'가 당연히 맞는 표현이고, '일본해'는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그 근거로 서양의 고지도들이 등장했고 그 고지도들에는 '동해'를 넘어서 심지어 '한국해'라고 표기된 것들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국해'나 '동해'가 역사적인 정당성을 가진 옳은 표기이고 '일본해'는 잘못된 표기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이러한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동해'라는 표기가 '일본해'로 표기되면 우리 영역을 빼앗기는 것이라는 인식이 잘못되었다. '동해'가 모두 한국의 소유는 아니다. '동해'가 지칭하는 것은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둘러싸인 바다 전체를 의미한다. 동해에서 한국의 영해는 일부에 불과하다. 단순히 면적만으로 비교하면 오히려 일본의 영해가 더 넓다. 과거 '한국해'라는 표기도 이 바다가 전부 한국의 소유라는 뜻이 아니라 '한국에 인접한 바다'라는 지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일본해'도 같은 의미이다. 일본의 영역이라는 뜻이 아니라 '일본 열도에 접해 있는 바다'라는 뜻이다. '인도양'은 그 명칭 속에 '인도'라는 국가명이 들어가 있지만 이 바다 전부가 인도의 소유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또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해협의 국제 명칭이 대한해협인데, 그렇다고 이 해협 전체가 한국의 영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며, 해협 중간에 위치한 쓰시마 섬을 한국의 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의 '동해' '일본해' 인식은 과도한 영토적 의미가 부여된 상태에서 관성적인 반일감정과 부합해 왜곡되어 있다. 

 

  국내 모 신문사에서 중국정부가 동해를 일본해라고 단독 표기했다고 지적하며 실은 중국 지도. 그러나 이 지도에는 분명 동해가 등장한다. 붉은 화살표를 친 부분. 이 바다의 정식 국제 명칭은 '동중국해'이지만, 중국에서는 이를 '동해'라고 표기한다. 즉, 중국인들에게 동해란 한반도 동쪽에 있는 바다가 아니라 한반도 서남쪽에 위치한  바다를 의미한다는 이야기다. 아마 중국인들이 이 바다를 동해라고 부르기 시작한 시점을 따지면 춘추전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동해라는 용어의 소유권은 우리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장하는 동해 표기 주장이 얼마나 취약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말해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서양 고지도에 등장하는 '동해', 혹은 '한국해'라는 표기가 시간이 지날 수록 '일본해'로 대체되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본해라고 표기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본측의 농간? 그보다는 세계적으로 한국보다 일본이 더 주목할만한 존재로 여겨지면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보는 게 옳다. 과거에 사용했던 지명이 현재에도 고수되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지명이란 당대인들의 인식의 변화와 편리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고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를 지칭함에 있어 국제적으로 보다 높은 지명도를 가진 일본의 국명이 들어가는 것이 이상하거나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바다가 엄연히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주권국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니만큼, 일방적으로 한 국가만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다른 국가에게 불편할 수 있고, 이 점에서 문제제기가 이루어질 수는 있다. 그렇다면 다른 이름으로 대체를 해야 할텐데, 여기에서 다시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이 주장하는 '동해'는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이다. 이는 '일본해'라는 이름이 거슬리니 '한국해'로 바꾸라는 주장만큼이나 불합리하다(실제로 이런 식의 대책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동해'라고 부르는 바다는 일본 입장에선 서쪽 내지는 서북쪽에 위치한 바다이다. 따라서 일본 입장에서 '동해'라는 명칭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입장을 바꿔서 중국측이 고대로부터 쌓여온 역사적 사례들을 근거로 우리나라 서쪽에 위치한 '황해'를 '동해'로 부르자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에서 만든 지도를 보면 그들은 우리가 동중국해라고 부르는 바다를 '동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일본해'를 부정하며 '동해'를 주장하는 것은 국제 용어 선정에 상대적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결여하고 있다.

  일각에서 대체 용어로 '청해(靑海)'를 제안한 적이 있는데, 이는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서쪽에 있는 바다는 그 색이 뿌옇다고 해서 '황해(黃海)'라 부르는데, 동쪽인 바다는 그 물빛이 푸르니 '청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조선에서는 동해를 푸른 바다라고 하여 '창해(蒼海)'라고도 불렀다는데 이는 의미상 '청해'라는 용어와 상통한다. 고로 '청해'라는 용어에는 나름대로 역사성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반도 서쪽 바다를  Yellow Sea로 부르고 동쪽 바다를 Blue Sea라고 부른다면 색을 이용한 바다 이름이라는 점에서도 좋은 대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편리성만을 고려한다면 지금 널리 쓰이고 있는 일본해라는 국제적 명칭을 바꾸고자 날카롭게 대립할 필요가 없고, 정 마음에 안 들어 바꾼다 하더라도 동해나 한국해보다는 청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