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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과 잡담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소동과 관한 짧은 생각

by kirang 2008. 5. 2.

  일단 이명박 정부가 어처구니 없는 협상을 했다는 것은 틀림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못 먹어 안달이 난 것도 아니고, 싼 외국 쇠고기라면 호주산 쇠고기도 이미 팔리고 있는 마당에(미국산이 더 싸다곤 하는데 호주산 쇠고기 가격은 돼지고기보다 약간 비싼 수준으로, 이미 '비싸서 쇠고기 못먹겠다'는 소리 나올 수준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졸속 협상을 할 명분이 없다. 한미 FTA와 관련한 협상 카드로 사용했다고 보아 주려 해도 쇠고기를 내주고 무얼 얻어 온 것인지, 혹은 차후에라도 뭔가를 확실히 얻어 올 수나 있을지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알려진 바도 없다. 결국 활짝 웃는 부시와 악수하는 사진 한 방 찍는 게 이명박의 궁극적인 목표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지울 길이 없다. 

  그러하니 광우병 문제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크게 이슈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먹는 것에는 상당히 예민한 편이다. 그동안 있었던 중국산 농수산물 관련한 이러저러한 파동들을 상기해 보면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틀림없다. 다만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나 이명박 정부의 멍청한 협상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별도로 최근 인터넷에서의 여론 형성에는 우려할 부분이 없지 않다.

  우선 과장된 공포감 조성이다. 광우병이라는 치명적인 병이 실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미국에서의 쇠고기 유통이 광우병을 충분히 걸러낼 수 있는 수준인지 의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광우병이 무슨 유행성 독감처럼 우르르 전염되어 죽어 나가는 병은 아니다. 실제 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극히 소수이다. 일단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광우병 환자로 지목된 사람은 3명에 불과하다고 하다. 최근 미국의 치매 환자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였다든지 하는 지적은 미국에 드러나 있지 않은 실제 광우병 환자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추측을 가능케 하지만, 이는 아직까지 '팩트'가 아니고 '주목할 가치가 있는 가설'일 뿐이다.

  또 인터넷에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사람들과 유전자 유형이 달라서 광우병 걸릴 확률이 95%"라는 식의 주장이 돌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거의 100% 광우병에 걸리고 죽을 거라는 식이다. 하지만 유전자형 이야기는 광우병 걸린 사람들이 주로 가지고 있는 유전자형이 한국인 95%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형과 같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미국인에 비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 추측의 근거는 될 수 있지만, 95%라는 숫자를 교묘히 이용해 무슨 흑사병처럼 전국민이 몰살당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한국에서 차후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예로 보면 아마 소수의 사람들에게 발생할 것이다. 또, "미국에선 30개월 이상된 쇠고기는 개 사료로도 안 쓰게 되어 있다"는 주장도 많이 떠돌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사료 가공이 금지된 것은 30개월 이상된 쇠고기의 '위험부위'이므로, 이 역시 다소 과장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과장되고 잘못된 정보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글들에 적지 않게 섞여 있다. 과장과 공포는 당장 세를 불리는 데는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차후 역풍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자신이 느꼈던 공포와 분노가 사실은 과장된 데이터나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이탈해나가고, 이로 인해 결집도가 떨어질 수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탄핵'운동이 펼쳐지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복잡하다. 어차피 탄핵은 안 된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잘못된 정책에 대한 분노를 전달하기 위한 상징으로 탄핵을 운운하는 것이다. 이해는 할 수 있다. 실제 과거에도 이러저러한 규탄 대회 때 '대통령 물러나라, 모모 장관 물러나라'라는 식의 구호를 많이 외쳤다. 그랬던 구호가 이제 구체적으로 '탄핵'이란 단어로 표현되는 것인데,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탄핵'이라는 게 있다는 걸 국민들에게 학습시켜 준 구 민주당+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공이라 하겠다.    

  다만 정치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탄핵'이라는 단어가 차후 미국산 쇠고기 협상 규탄의 여론 확산에 오히려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당장 이명박이 '광우병 운운하는 건 정치적 공세'라는 주장을 하였다. 실제 그런 경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 미국산 쇠고기 협상 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쪽은 이명박과 정치적으로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들일 테니까. 따라서 반대 운동의 외연을 보다 넓히고,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가 정치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건강권 문제라는 것을 더 강하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 "광우병은 싫지만, 이명박 탄핵하자는 소리가 싫어서 차라리 이명박 편을 들겠다"는 소리가 나올 여지를 주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과연 한우는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하는 의문이다. 과연 우리나라 법에선 축산 농가에서 어떤 사료를 사용하게 되어 있나? 또 광우병 발생을 막기 위한 어떤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나? 쇠고기의 유통 경로는 제대로 관리되고 있을까? 광우병이 우려되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운동과 별도로 한국 내에서의 광우병 발생 방지책 내지는 관리책에 대해서도 정밀한 점검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