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글을 뒤적이다가 10년전인 2007년 2월 어느 날 쓴 게임 리뷰를 발견하여 올려본다. 계산해 보니 석사 과정 수료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의 글이다. 내가 10년 전에 이러고 놀았군. 앞으로 논문 쓴다고 어떤 고생길이 열릴 줄도 모르고 참 천진난만했구만. 지금 시점에서야 "MVP 베이스볼 2005"의 그래픽이 조악하기 이를데 없지만, 게임성과 밸런스라는 측면에서 보면 저만한 야구 게임도 없었던 것 같다. 한창 게임에 열중했던 무렵에는 메이저 리그의 웬만한 선수들 이름과 소속을 다 외우고 있었건만 이제는 관심을 거둔지 오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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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박찬호가 2007년 뉴욕 메츠에서 뛰게 되었다는 뉴스보도가 있었다. 이에 필 받아 오랜만에 "MVP 베이스볼 2005"를 플레이 해 보았다.
오늘 경기의 라인업. 좌측은 오늘의 상대팀인 뉴욕 양키즈. 선수들 이름을 보면 이건 뭐, 쟈니 데이먼, 데릭 지터, 게리 셰필드, 알렉스 로드리게스, 마쓰이, 포사다......돈으로 야구를 한다는 세간의 평을 그대로 입증하는 사기 라인업.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플레이하는 우측의 뉴욕 메츠도 상당히 강력한 라인업을 갖추었다. 로두카, 벨트란, 델가도, 션 그린...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팀의 선발투수!
짜잔~
양키즈에서는 '괴물' 랜디 존슨 영감님, 메츠에서는 '외계인' 마르티네즈가 출전했다. 그야말로 양팀 에이스의 정면 충돌! 투구 능력 수치를 한번 보라~ 후덜덜~ 랜디 존슨이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능력치만 높은 것은 다른 구질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달랑 이 두 가지 구질로 메이저리그를 평정한 게 바로 랜디 존슨이다. 옛날에 어떤 기자가 다른 구질은 안 배울거냐는 질문을 했는데, "다른 구질을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한다. 그나마 저 수치는 2005~2006년 시즌의 다소 안 좋은 성적을 반영해서 다운시킨 것이니, 전성기 수치를 그대로 대입하면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모두 99를 찍었을 거다.
그에 비해 마르티네즈는 뭐, 말이 필요없다. 모든 구질의 수치가 90대... 말 그대로 외계인, 사람이 아닌 거다. 그런데 사실 이 빅매치는 내가 어거지로 만든 것이다. 현재 리그가 진행중이라, 제1선발인 마르티네즈는 이틀전에 이미 경기를 치른 상태. 그러므로 랜디 존슨과는 메츠의 제3선발이 나서서 상대해야 하는데, 빅매치를 성사시키고 싶은 욕심에 선발 로테이션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마르티네즈를 기용했다. 화면 상단을 보면 랜디 존슨은 스태미너가 90/90으로 풀파워 상태인데, 마르티네즈는 68/93으로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이다. 실제 상황이라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일이지만, 게임인데 어때! 감독인 내 맘이다.
자 그럼 경기 시작~
경기장은 뉴욕 메츠의 홈구장이다. 화면에 현재까지의 리그 성적이 뜨고 있다. 역시 양키즈의 성적이 독보적이다. 참고로 뉴욕은 도시가 커서 그런지 양키즈와 메츠라는 두 개의 메이저리그 구단이 있다. 서울에 LG 트윈스와 OB 베어즈가 같이 있는 것처럼. 양키즈는 아메리칸 리그, 메츠는 네셔널리그이다. 서로 다른 리그지만 현재 인터리그 기간인 관계로, 경기를 갖게 되었다. 뉴욕 메츠의 홈경기이므로, 경기 방식은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는 네셔널리그 방식을 따른다.
양키즈의 5번 타자 마쓰이. 내가 무척 싫어하는 녀석이다. 이상한 징크스인데, 이 녀석만 타석에 들어서면 우리팀 수비에서 어이없는 실책이 나온다. 마법이라도 쓰나? 알 수 없는 일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에는 요미우리 자인언츠의 4번이었다. 현재 이승엽의 자리가 원래는 마쓰이의 자리였다는 얘기.
삼진을 잡아내고 귀여운 미소를 짓고 계시는 우리팀의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즈. 무리한 선발 로테이션 때문에 경기 시작시의 체력은 이미 60%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슬슬 교체를 생각할 체력으로 경기를 시작했으니, 완투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 그래도 착한 마르티네즈는 감독(바로 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한구 한구 열심히 던졌다. 경기는 예상대로 양팀 에이스들의 대결답게 숨 막히는 투수전 양상이었다.
7회까지의 진행 상황. 보이는가! 보이는가! 마르티네즈는 바닥이 보이는 체력을 가지고도 7회까지 삼진 8개를 잡아내며, 무안타, 무볼넷, 무실점의 퍼펙트 게임을 펼쳤다. 마르티네즈! 이 정도까지 해줄 줄이야. 눈물나는 투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원래는 5이닝 정도 던지게 하고 교체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던져주는데 도저히 내릴 수가 없었다. 애가 지쳤다 싶으면 한번씩마운드에 올라 달래주면서 계속 던지게 했다. 그래 오늘이 그 날일지도 몰라. 그 어렵다는 퍼펙트 게임! 하는거야! 할 수 있어!
상대팀인 랜디 존슨도 이름에 걸맞게 선전하고 있다. 7회까지 4안타 1실점. 삐끗해서 홈런 한 방 맞은게 유일한 실점이다. 마르티네즈와 달리 체력도 아직 짱짱하게 남아 있다. 뭐, 아무튼 좋아! 퍼펙트 게임 가는거야~~
그러나 근성의 사나이 마르티네즈도 결국 8회에 안타를 얻어맞고 말았다. 상대는 양키즈의 4번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 퍼펙트게임은 7이닝에서 끝. 아, 21명의 타자를 완벽하게 막았는데. 이제 6명만 더 잡으면 퍼펙트게임인데.... 안타 하나 맞은 거지만 정신적 충격이 너무 크다. 힘들게 다음 타자인 마쓰이를 잡아냈지만 이미 공의 컨트롤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화면을 보면 마르티네즈가 7이닝 동안 65개의 공을 던졌고, 체력 게이지는 10~20% 수준으로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퍼펙트게임 대신 완봉승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도저히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주자까지 있어서 최악의 경우 역전패까지 가능한 위기상황.
눈물을 머금고 마르티네즈를 내려보낸 후 우리팀의 클로져 와그너를 내보냈다. 와그너는 메츠의 수호신답게 시속 160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뿌리며 무사히 위기를 넘겨주었다.
양키즈의 마지막 타자를 잡아내 경기를 끝내고 좋아하는 와그너.
승리를 축하하는 메츠 선수들.
최종 스코어. 승리투수는 마르티네즈(시즌 5승 3패), 패전 투수는 랜디 존슨(시즌 5승 3패), 와그너는 시즌 14번째 세이브를 성공시켰다. 마르티네즈의 스태미너가 정상이었다면 퍼펙트게임도 가능했으리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간만에 즐겨본 명승부였다. 플레이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게임 너무 사실적이라 게임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