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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과 잡담

대선토론에서 문재인의 동성애 발언에 대하여

by kirang 2017. 4. 27.

  문재인이 몇 년 전에 하였던 인터뷰 내용을 기억한다. 당시 문재인은 동성결혼의 합법화까지도 허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이 인터뷰를 통해 문재인이 꽤 열려 있고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어제 JTBC에서 진행된 대선 토론을 보며 크게 배신당하였다. 홍준표는 군대에서 동성애 문제가 심각하여 전력 약화의 중요한 요인이라 주장하였고, 문재인에게 동성애를 찬성하느냐고 물었다. 또 동성애를 좋아하느냐고도 물었다. 이에 대해 문재인은 '싫어한다'고 대답하였고,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발언까지 하였다.

  정치는 현실이니만큼 유력 대선 후보가 TV 토론에서 보수적이고 조심스러운 답변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아닌 말로 전체 유권자 중 동성애자의 숫자가 얼마나 되겠나. 반면 동성애에 적대적인 보수 기독교인들의 표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애초에 홍준표가 이 주제를 들고 나와 문재인에게 던진 이유도 그때문이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이 조금이라도 동성애에 우호적인 발언을 한다면 그걸 기회로 기독교인들의 표를 깎아내겠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일종의 부비트랩인 셈이다.

  문재인도 그점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순간 말꼬리를 흐리며 머릿속으로 표를 계산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동성애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싫어한다', '반대한다'는 수위의 발언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문재인은 명색이 인권변호사 출신이 아닌가. 그런 사람이 입에 올렸다고는 믿기 힘든 너무도 폭력적인 발언들이었다.

  게다가 '동성애를 싫어하지만 차별은 반대한다'는 추가발언은 무엇인가. 차라리 '나는 동성애를 혐오한다'고 대놓고 저열한 소리를 떠들어 대는 홍준표 쪽이 솔직해 보일 지경이었다. 문재인이 내뱉은 위의 문장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인지는 같은 문장에 다른 사례들을 적용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나는 흑인을 싫어하지만, 차별은 반대해', '나는 전라도 사람을 싫어하지만, 차별은 반대해.', '나는 한국인을 싫어하지만, 차별은 반대해'. 애초에 공적 장소에서 '나는 동성애를 싫어한다'고 발화하는 것 자체가 지극히 차별적 행위이다. 차별적 행동을 해놓고 곧이어 차별을 반대한다는 무의미한 단서를 덧붙인 셈이니, 앞뒤가 맞지 않아도 한참을 안 맞는 발언이다.

  어쩌면 문재인은 홍준표가 상상 이상으로 저질스러운 질문을 다그치듯이 던진 것에 대하여 당황한 나머지 실언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이다. 대통령 선거에 나온 사람이 저 정도 공세도 예상 못하여 준비를 안 하였다는 말인가. 문재인에게 심상정 정도의 선명한 대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당선권에 있는 유력 후보와 자신이 속한 당의 주의주장을 널리 설파하는 데 목적을 두고 출마한 군소 후보의 발언이 같은 자유도를 가질 수는 없다. 다만 '인권 변호사'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발언 수위는 지켰어야 했다. 

  문재인이 동성애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공격을 받자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은 그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옹호를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정치인의 말 한 마디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지지자들에게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토론에서 문재인의 발언은 우리나라의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하여 무척 퇴행적인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아마 본인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홍준표에 대해서도 한 마디. 발언 수위를 보면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 보기 어렵다. 정신줄을 놓은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이런 인물이 유력 정당의 대선후보이고, 10%가 넘는 지지율을 받는 자라는 것이 경악스럽다. 이런 오물급 인사들을 하루라도 빨리 치워버려야 한국 정치가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