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기하다. 안철수 바람 말이다. 정치 데뷔 이후 태풍 수준의 바람을 한 번씩 몰아 오고, 바닥까지 가라앉았다가 다시 태풍 수준의 바람을 몰아 오는 행보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 바람이 '진보와 개혁'의 이미지에 편승한 것이라면 최근의 바람은 '보수' 이미지에 편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종 여론 조사를 통해 확인되듯이 현재 안철수 지지도의 핵심은 과거 박근혜를 찍었던 노년층과 보수층이다. 이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일이 조갑제마저 안철수를 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저쪽도 급하기는 엄청 급하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안철수를 지지하지 않는다. 문재인에 대한 나의 시선이 '저 사람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걱정이라면, 안철수에 대한 나의 시선은 '저 사람은 분명 우리나라 정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 것이다'라는 확신이다. 처음 등장한 안철수는 새정치를 이야기하였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요즘 밀고 있는 건 '4차 산업혁명 시대'라나. 그럴듯한 아젠다라고는 생각하지만, 정치인들이 미는 비전이나 미사여구야 어차피 적당히 걸러 들어야 할 터.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그런 것보다 현재의 정치 지형이다.
안철수가 몸 담고 있는 국민의 당은 40석 짜리 정당이다. 4년 전 그가 시도하였던 '무소속 대통령'의 무모함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상황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300석 중 40석만을 확보하고 있는 당의 대통령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법안 하나 처리하기도 벅찰 것이다. 그러니 안철수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정개 개편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그 첫 대상은 아마도 민주당의 비문 계열 의원들과 바른 정당 의원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바른 정당의 의석수는 고작 33석. 비문 계열 민주당 의원들을 열심히 끌어온다고 쳐도 의석수 100석 확보도 어렵다.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과반인 150석이 필요하며, 최소한 그 근처까지는 가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자유한국당의 골수 극우파들이나 기회주의자들의 힘을 빌리는 것 뿐이다. 결국 안철수의 정계 개편은 한국 정당사에 둘도 없을 잡탕 정당의 탄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보수층이 안철수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명성을 가지고 있는 문재인이 당선되면 호되게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보수층이 안철수라는 방패막이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안철수에게 그 잡탕 당의 국회의원들이 과연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일까. 국민의 당은 지난 총선에서 대놓고 호남 지역주의를 자극하여 성공한 당이다. 구성원 대다수가 호남 의원들이며, 이들이 민주당을 탈당한 계기는 문재인과의 지분 딜이 안 통했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이들은 당연히 안철수에게 지분의 요구를 할 것이고, 이는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바른정당이나 자유한국당 출신들은 떡고물을 얻어 먹으러 잠깐 붙을 수 있어도 애초에 안철수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 역시 절대로 고분고분하게 안철수에게 협조할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회에 대한 영향력이 전무한 식물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엄청난 국정의 혼란과 공회전이 발생할 것이다.
촛불 집회를 통하여 박근혜 탄핵이 성공하면서 우니나라 보수의 무지막지한 생명력을 깜박 잊고 말았다. 이미 다 끝난 싸움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들은 안철수라는 패를 이용해 막판 비기기를 노리고 있다. 어차피 극우 보수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아무 힘도 쓰지 못할 '바지 대통령'을 뽑아 타격을 최소화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자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4.19 때도, 87년 6월 항쟁 때도 그랬다. 저들은 승리감에 취해 있는 우리의 뒤통수를 치며 자기 몫을 고스란히 지켜 왔다. 이번 대선에서 조갑제 같은 극우 보수주의자가 '결국 비겼다'며 활짝 웃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지난 9년 간 나라를 망쳐 놓은 패악질에 대하여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철수를 배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