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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책 "커피의 역사"

by kirang 2012. 1. 23.
 

하인리히 E. 야콥 (지은이) | 박은영 (옮긴이) | 우물이있는집 | 2005


요즘 서점에 많이 보이는 ○○의 역사류의 책들은 미시사, 생활사에 대한 관심과 인기를 반영하고 있다. 거시사에서 소외된 주제를 다루는 데다 과거 사람들의 일상적인 표정과 행위들을 구체적으로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미시사의 측면을 갖추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 책에 미시사라는 표찰을 달아주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그보다는 주제사라는 표찰이 보다 적절해 보인다.


거시사와 미시사는 흔히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비유된다
. 거시사가 정치와 경제를 중심으로 한 주류적 흐름의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데 주력한다면, 미시사는 거대 권력의 충돌에서 비껴서 있는 아래와 틈새의 인간 군상에서 보이는 미세한 역사 흐름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미시사 연구의 효시이자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는 이단재판의 희생물이 된 한 방앗간 주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소위 근대적 사고라는 것이 당대 엘리트 계층의 일방적인 각성과 계몽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층민의 민속문화 전통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추적하고 있다. 치즈와 구더기에서 볼 수 있듯이 미시사 연구의 특징이자 장점은 거시사에서 만들어 놓은 거대한 틀의 사각지대를 파고 들어 그 틀 속에서 삶을 영위했던 이들의 실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 미시사 연구자들의 목적은 치밀한 자료 조사 작업을 통해 거시사가들이 만들어 놓은 기존의 역사상과 사회상을 보완하거나, 수정하거나, 전복시키는 데 있다.


그러한 점에서
커피의 역사는 목적 의식 자체가 치즈와 구더기로 대표되는 미시사의 흐름과 다르다. 커피와 역사에서도 인간의 얼굴이 드러나기는 한다. 그러나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역사서술이라기보다는 커피와 관련된 이러저러한 에피소드의 소개라는 성격이 짙다. 엄밀히 말해 커피의 역사는 주제가 커피라는 사소한 것에 한정되었을 뿐, 실제 서술 방식은 거시사의 방식과 미시사 방식을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옛날에 커피와 관련해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더라라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데 있다.


이 책을 본격적인 역사서로 보기는 어렵지만
, 다루고 있는 내용은 친근하면서도 흥미롭다. 작가가 중간 중간 과시하는 유머감각 덕분에 유쾌한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독자로 하여금 커피 한 잔을 생각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자신의 이름값을 충분히 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