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이 "편 들어 주다가 같이 다치면 또 어때"라고 일갈했는데,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진보 진영이 우위를 가지고 있는 정치 자본은 도덕성, 공정성,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것 정도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을 이길지 질지 모르는 도박에 걸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면이 있다. 단순히 개인이 책임지고, 개인이 망가지는 문제라면 의리도 지킬 수 있고, 어깨를 나란히 해 싸우며 ‘가오’도 살릴 수 있겠지만, 진영 전체의 일이 되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비겁하다, 소심하다라는 식으로 대충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김어준은 진보진영이 “그러다가 혹시 진짜로 뭐가 나올까봐, 쫄아서” 미리 도망간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맞다. 그런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런 쩨쩨함과 소심함, 결벽증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건강성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문제가 생겨도 뻔뻔하게 버티며 끝까지 자리에서 뭉개는 한국의 정치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게다가 김어준은 ‘같은 편’인 줄 알고 끝까지 믿고 밀어 주다가 사람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최악의 경우를 몸소 보여 주기도 하였다. 황우석 사태 때.
다만 이번 사건은 판단하기 애매한 구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명기 측이 곽노현에게서 받은 돈으로 개인 재산을 증식시키고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면 더 두고 볼 것도 없이 곽노현의 잘못이고, 컴컴한 뒷거래라고 판단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박명기는 단일화 과정에서 이미 7억 원 가량의 선거비용을 날리는 금전적 손실을 입은 상태였다. 심지어 선거자금으로 사채를 끌어다 쓴 것 때문에 선거가 끝난 이후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하고.
만약 교육감이 자신의 재산 증식을 위해 부당한 뇌물을 받았다던지, 각종 이권을 자격이 없는 친인척-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던지, 공금을 착복했다던지 했다면, 이건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명백하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단일화 과정에서의 선거비용 보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박명기 입장에서 봤을 때 단일화 요구에 응한다는 것은 일방적으로 자기 돈 7억 원을 포기하라는 이야기가 된다. 정몽준 정도의 갑부가 아닌 이상 이것은 개인에게 굉장히 가혹한 선택이다. 단일화 과정에서의 선거비용 보전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현행법상, 단일화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가장 깔끔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선거에서 후보 간 단일화 협상은 현실적으로 엄연히 인정되고 있는 정치공학적 행위이고, 유권자들의 정치적 요구를 마지막 순간까지 조정하고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나름의 대의를 획득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앞으로 단일화를 통해 혜택을 입는 쪽이 출마를 포기하는 측을 위해 선거비용의 전액, 혹은 일정액을 보전해 줄 수 있도록 당사자 간 딜을 허용해 주는 식으로 법을 개정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식으로의 법 개정에 대해 어떤 사람은 찬성을 할 수도, 어떤 사람은 반대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선거비용의 보전 문제는 규칙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른 선택의 문제이지, 그 자체가 도덕과 부도덕의 문제는 아니다. 다시 말해 뇌물수뢰나 공금횡령 등과 달리 그 자체로 부도덕성을 내재하고 있는 행위가 아니다. 고로 곽노현 교육감의 행위는 현행 법률상에서의 위법, 규칙 위반으로 판명될 개연성은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부도덕한 행위를 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위법성의 여부 문제와 윤리성의 여부는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곽노현은 약 20년 전 자신의 친구에게 1억 원 가량의 금액을 대가 없이 제공한 적이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2억 원이라는 큰 돈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선의로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에 따른 비판의 요지였는데, 앞의 사례를 보면 곽노현은 그러한 일반 상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품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명기라는 사람이 단일화 과정에서 사채로 끌어 쓴 돈을 포함한 7억 원 가량의 금전적 손실을 입은 것이 사실이고, 이후 이 사람이 그 돈 문제 때문에 큰 곤경에 빠져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식의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면, 곽노현 입장에서는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금전적 지원을 해 주었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지원에 대해 사전에 협의가 있었느냐, 아니면 나중에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냐는 양측의 말이 다르므로 추후 따져 보아야겠지만, 어쨌든 법리적으로 다퉈 볼 여지는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