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에서 이번에 병사들에게 최저 임금을 보장하라는 소송을 건 모양이다. 진보신당의 문제제기를 환영하며,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본다.
군가산점에 대한 찬반 문제와 징병제-모병제 논쟁이 일어나면 항상 나오는 주장이 있다. 바로 “군가산점은 지금으로서는 유일하고 가장 현실적인 보상”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되는 논거는 “군가산점 외에 다른 보상이 가능했으면 지금까지 안 했겠느냐”는 정도가 고작이다. 나는 예전부터 이 주장이 얼마나 사실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관련 자료들을 한번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문제의식 : 징병제도 하에선 병사를 싸게 부려 먹는 게 옳은 건가?
징병제-모병제 논쟁의 양상은 보통 재원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진행되곤 한다. 그리고 그 전제는 징병제는 돈이 적게 들고, 모병제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나도 으레 그러려니 여겼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름 아닌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라는 측면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수행한 노동이 70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70에 해당 하는 대가를 받고, 100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노동을 했다면, 100에 해당하는 대가를 받는 것이 정의에 부합할 것이다. 혹 100의 가치를 지닌 노동을 제공하였는데, 5나 10의 대가밖에 지불받지 못 하였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흔히 ‘착취’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어떤 사회이건 간에 '인간의 노동에는 그에 합당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는 것은 좌파와 우파, 남녀와 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단순하고 기본적인 명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병역과 관련한 논의에서 누구나 모병제 하에서는 병사들의 노동력에 걸맞는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인식하지만, 징병제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부당하게 전제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징병제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우리나라 병사들도 아예 무상으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봉급을 받기는 받는다. 하지만 그 액수는 참담한 수준이다. 통계청 자료를 참조하면 10년 전인 2000년 당시 병장 월급은 1만 8,200원, 이등병의 월급은 1만 3,200원이었다. 일급도, 시급도 아닌 월급 액수가 이 정도였다는 이야기다.
다만 (그 자신이 일반병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병사 임금에 대한 나름 ‘획기적’인 개선조치가 취해졌다. 그의 임기 몇 년간에 걸쳐 연 30~40%의 임금상승이 이루어져서, 2010년 현재 병장의 월급은 9만 7,500원, 이등병의 월급은 7만 3,500원이 되었다. 퍼센티지로만 보면 수치가 수직 상승한 셈이나, 병사 '월급' 액수는 여전히 사회인들의 '일급' 수준과 비슷한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참고로 현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면서 예정된 현역병의 임금 상승을 모두 동결시켜 버리는 조치를 취하였다).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라는 앞에서의 기준을 상기했을 때, 모병제가 바람직한가 징병제가 바람직한가를 논하기에 앞서 과연 징병제 하에서 현역병들에게 지불되어야 할 합당한 임금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논의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또 그 금액의 부담이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검토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통령 한 사람의 인식에 따라 불과 몇 년 사이에 수 배에 이르는 임금 상승이 가능해지고, 또 간단하게 동결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을 보면, 현재 책정되어 있는 병사 임금의 액수가 치밀한 분석이나 합의에 의해 나온 필연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단지 관성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설정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가지게 되었다.
2. 현역 일반병의 노동가치는 얼마일까
그렇다면 우리나라 현역병의 노동 가치는 어느 정도이며 적절한 임금은 어느 정도가 맞는 것일까. 직업군인들의 봉급이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장교 중 가장 적은 금액을 받는 소위 1호봉의 월급은 96만 1,600원, 소위 2호봉의 월급은 102만 3,900원이다. 또 부사관 중 가장 적은 금액을 받는 하사1호봉의 월급은 82만 5,700원, 하사 2호봉의 월급은 85만 8,900원이다. 단, 이것은 기본 급여이고, 각종 수당과 보조비가 꽤 다양해서 이를 합치면 이보다는 많은 액수를 지급받는다.
수당과 보조비를 포함한 실질적인 봉급은 정확히 산정하기가 힘든데,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 것이라 신빙성은 좀 떨어지지만 하사가 준9급 공무원 정도의 대우를 받는다고 하니, 대강 100~120만 원 정도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관련 정보를 정확히 아시는 분은 알려 주시기 바란다). 여하튼 장교 중 가장 낮은 소위와 부사관 중 가장 낮은 하사의 봉급이 약 15% 정도 차이가 나는데, 그렇다면 부사관과 일반병 사이에도 비슷한 정도의 임금 차이를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병사들의 적정 임금 상정과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참고할 수 있는 것은 국방부가 책정한 ‘해외파견 근무수당의 계급별 지급기준 금액’이다. 이에 따르면 아프간이나 이라크 같이 해외로 파병된 병사들은 국내와는 다른 임금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해외 파병 시 소위는 월 1,661달러, 하사는 1,482달러, 병사는1,340달러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책정되어 있다. 이 금액을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2011년 1월 10일 현재 환율 기준으로 소위는 186만 9,455원, 하사는 166만 7,991원, 병사는 150만 8,170원이 된다.
즉, 해외파견 근무수당의 경우에는 병사에게도 예외적으로 ‘현실적인’ 봉급을 부여하고 있는데, 국방부가 책정한 그 금액은 보다시피 하사보다 약간 적은 수준이다. 따라서 나는 우리나라 병사들의 실제 노동가치는 하사보다 약간 낮은 정도의 수준이라고 판단한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의 일반 병사가 원래 받아야 할 월급은 본봉이 약 70여만 원 가량, 각종 수당을 포함하면 적어도 90~100만 원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바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현역병 월급은 적정 금액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3.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이 정도 병사 임금 지급을 감당할 수 있는가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 걸 계산하지 않더라도 병사들이 ‘착취’당하고 있는 거 누가 모르나? 하지만 우리나라는 병사들에게 그 정도 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 그렇게 지불하려면 천문학적인 예산 증액이 필요한데 이는 불가능하다. 현재의 낮은 병사 봉급은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이 문제를 한번 검토해보도록 하자.
표 1) 2010년 대한민국 예산
2010년 국가 전체예산 |
292조 8,000억 원 |
국방부 예산 |
29조 6,000억 원 |
국방비 중 급여비 |
10조 5,362억 원 |
2010년 기준 우리나라의 1년 국가 예산은 292조 8,000억 원이다. 국방부 예산은 국가 예산의의 10%인 29조6,000억 원이고, 그중 급여비가 10조 5,362억 원이다. 급여비의 대부분은 장교와 부사관에게 지급되는 액수이고, 병사에게 지급되는 금액은 이중에서도 약 7%에 불과하다.
만약 앞에서 산출해낸 병사 적정월급인 100만 원을 각각의 병사에게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병사 1인당 연봉은1,200만 원이 된다. 우리나라 병사의 수를 대강 55만 명이라고 잡았을 때, 1년에 병사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인건비는 6조 6,000억 원이다. 자, 국가 1년 예산이 292조 정도 되고, 국방비만 약 30조 가량 기본적으로 편성되는 나라에서 1년에 6조 가량을 더 증액해 예산에 편성하는 것이 ‘불가능’한 액수일까. 물론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절대로 불가능한 천문학적 액수’도 아니다. 다만 조 단위는 일반인들이 가늠하기에는 너무 큰 숫자라서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어떤지 감이 잘 안 오는 측면이 있다. 그러니 우리 같은 소시민들에게 현실감이 느껴지도록 수치를 변화시켜 보기로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11월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인구는 2,484만 7,000명이고, 이중 취업자 수는 2,410만 9,000명이다. 일단 이 취업자군을 세금을 부담할 수 있는 무리로 상정해 보자. 6조 6,000억 원을 취업자 수로 나누면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을 갖춘 국민들이 1인당 얼마씩 더 부담해야 하는지 대강 감이 잡힐 것이다. 나누었더니 27만 3,756원이 나왔다. 이게 1년치고, 12달로 다시 나누어 보면 2만 2,813원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론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한 달에 2만 2,813원씩만 세금으로 더 내면, 군대에 있는55만 병사들에게 100만 원씩의 월급 지급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3분기 현재 우리나라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66만 6,000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부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월 2만 3,000원이라면 각 가정에서 부담하는 월 인터넷 요금, 핸드폰 비용보다도 적은 금액이다. 하물며 우리들이다리 뻗고 잘 수 있도록 해 주는 국방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이 아닌가. 내가 봤을 때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으로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이다.
게다가 이것은 지극히 단순하게 계산해 산출한 평균값에 불과하다. ‘국방비’는 국민들의 소득에 따라서 차등 있게 부여할 수 있다. 저소득층이나 서민들에게는 국방비를 아예 안 거두거나 몇 백원 내지 몇 천 원 정도만 명목상의 세금으로 거두고, 대신 고소득층이나 기업에 더 많은 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다. 이러한 세금 부여는 명분도 가지고 있는데, 국가의 안전 보장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은 누가 보아도 고소득층이나 기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조세 부담률은 2009년 기준 19.7% 정도로, OECD 평균(2008년 기준)인 26.7%보다 크게 낮은 편이라 세금을 늘린다고 해서 조세부담이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오르는 것도 아니다. 6조 6.000억 원을더 걷는 것은 조세 부담이 2%가량 늘어나는 수준이다.
참여정부 시절 만들어진 "국방개혁 2020"에 따르면 국군은 의무병의 수를 30만 명까지 줄이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까지는 안 가더라도 국방비의 급여비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교의 숫자를 절반 정도로 줄이고 그 예산을 병사 급여비로 돌린다면 6조 원의 증액까지도 필요 없고 기존에 책정되어 있는 급여비에 약간의 예산을 추가하는 것만으로 병사 임금 현실화를 실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군복무가 가치 있는 일인가라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가치 있는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의 지불, 이것이 세상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입으로만 고맙다느니 안보가 소중하다느니 하면서 떠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날로 먹으려 드는 국방부의 군가산점 언론플레이는 기만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정말로 군 복무자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면 립서비스 따위 다 집어치우고, 적정한 임금부터 지불하는 것이 우선이다.
적정한 임금이 주어진다면 한창 나이에 군대에 끌려가 나라를 위해 복무한 젊은이들이 제대할 때 퇴직금 포함 2,500만 원 정도는 쥐고 사회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 돈이면 학비로 사용할 수도 있고, 작은 장사의 밑천으로 삼을 수도 있고, 결혼 자금으로도 쓸 수 있다. 군 복무자들이 사회생활을 재개하는 데 종자돈으로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병사 임금 체계로는 매년 국가 차원에서 50여만 명의 경제적 잉여들을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에게 합당한 수준의 월급을 지급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50여만 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조한 효과가 발생한다. 외형상으로는 국방예산의 증가가 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복지 예산으로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민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세금이 늘어나게 되지만, 이는 다시 임금이라는 형태로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되돌려 주는 돈이다. 자연스럽게 재분배 효과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국가를 위해 더 많은 의무를 수행한 이들에게 혜택이 가는 방식으로, 정의에 부합하도록 말이다. 병사 임금의 현실화는 청년실업 문제, 사회적 만혼 문제, 저출산 문제 등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