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이 터지는 게 아닌가 싶었던 오늘 기자회견의 내용은 결국 원론적인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안철수가 단일화 협상 자체를 깰 생각은 없어 보인다. 다자대결이 필패라는 것은 안철수도 인식하고 있다고 여겨지고.
기자회견의 핵심은 반복해서 민주당의 정치 혁신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협상 중지의 요인이 되었던 양보론 발설 사건은 그냥 구실인 것 같고, 그보다 민주당측에 단일화에 명분을 부여할 수 있는 화려한 정치적 쇼, 혹은 이벤트를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 혁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자신이 단순히 표의 합산을 위해 단일화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고, 그래서는 자신이 단일 후보가 되든, 문재인이 단일 후보가 되든 시너지 효과가 안 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자신과의 접촉을 통해 기성 정당인 민주당에 괄목할 만한 변화가 수반되는 이미지가 형성되어야 대선의 승리가 보장된다는 생각인 것 같은데, 이러한 생각 자체는 나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과연 민주당에서 어떤 쇄신이 일어나길 원하는 것인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안 한다는 것이다. 안철수에게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닐 텐데 그걸 딱 부러지게 말하지는 않고 있다. 자기 입으로 공개적으로 꺼내기에는 거북한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민주당의 시스템을 뜯어 고치는 일이라면 굳이 말을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이므로, 결국은 인적쇄신을 바란다고 밖에는 해석이 안 된다. 김한길 등 소위 민주당 내 쇄신파의 움직임도 이미 있었고, 이들이 안철수와 연동하여 당권을 장악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단일화를 매개로 안철수 및 캠프 인사들이 민주당에 들어가 쇄신위원회라도 만들어, 당을 장악하는 것을 원하는 걸 수도 있겠다.
안철수가 대통령 단일화 후보가 되든, 되지 못 하든 정치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자신의 권력 기반이 되어야 할 당이 필요하다. 과거 무소속 대통령 운운했던 것은 단일화를 전제로 대선에 나왔다는 인상을 주면 곤란했던 상황에 따른 발언이지 진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총선이 까마득하게 남아 있는 현 상황에서 안철수가 자기 당을 갖추는 방법은 결국 기존 야당인 민주당을 뜯어 고쳐서 쓰는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안철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민주당이라는 기성 정당에 입당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개혁적 이미지가 반감되게 만다. 자신의 개혁적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민주당이 집안 청소 깨끗이 하고, 이것 저것 고치고 수선한 다음 예포를 터트려가며 정중하게 새로운 집 주인으로 맞이해 달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설사 이번에 단일화 후보가 되지 못해도 5년간 당의 리더로서 정치를 하다가 다음 대권에 나올 수도 있을 테니까.
헌데 이것이 민주당 입장에서 받을 수 있는 요구일까 의문이 든다. 멀쩡히 선거를 통해 당선된 현재의 당대표 등이 외부인의 요구로 물러나야 할 파격적인 상황인데, 과연 당원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안철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이벤트로서의 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