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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과 잡담

이제 우리는 87년 체제의 마무리를 준비해야 한다

by kirang 2012. 12. 22.

지금의 정치체제는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이다.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말이다. 87년 이후 여섯 명의 대통령이 투표로 뽑혔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저쪽에서 4명, 2쪽에서 2명. 공교롭게도 10년씩은 채우고 정권 교체가 되는 패턴이다.


박근혜가 4년 중임제로 개헌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논의가 실제로 시작된다면, 새누리당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과거 노무현도 이 안을 내놓은 바 있으니 민주당에서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박근혜를 마지막으로 제6공화국, 87년 체제가 종식이 되겠다. 박근혜 정부는 구체제의 막내가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구체제의 막내 역할을 과거 회귀의 상징과도 같은 박근혜가 맡았다는 게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나 역시 이번 선거 결과에 '멘붕'이 되어 아직까지도 TV를 못 켜는 입장입지만, 이번 선거의 퇴행이 사망 직전인 구체제의 희광반조 같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려고 한다.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가시화한 지금 우리의 목표도 하나하나 구체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단 대통령 선출에 있어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 이번 단일화 과정을 보면서 게임 룰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단일화가 얼마나 에너지 낭비이고 상처가 큰 것인지 경험했다. 이런 시행착오는 더 이상 겪고 싶지 않다. 원래대로라면 새누리당이 결선투표제를 끝까지 거부할 공산이 크나, 마침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가 50프로 이상의 지지율을 확보한 대통령이 되었다. 자기들 입으로도 50% 이상 지지율의 확보가 가지는 명분과 정당성을 선전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결선투표제가 제기될 수 있는 논리적 토대가 만들어졌다.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사망 직전에 이른 진보 정당들에 숨통이 트일 것이고, 국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최종 단계까지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야당에서 원하는 투표시간 연장 역시 도입하기 좋은 조건이 마련되었다. 이번 대선에서는 기묘하게도 투표율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정략적으로 야당에 유리하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반증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참에 강력히 밀어붙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회의원 구성에 있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도입인데, 이건 성공할 수 있을 지 미지수이다. 국민들이 지금의 국회의원 선출 방식에 딱히 불만을 느끼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되려 안철수가 내놓은 안처럼 국회의원수를 줄이는 걸 더 선호하는 측면이 있고,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이걸 덜컥 받기도 했다. 새누리당이 워낙 선거 때면 무슨 말을 못하냐는 식의 마인드를 가진 집단이라 차후 나몰라라 할 수도 있겠지만, '약속한 건 꼭 지키는 박근혜'의 이미지도 있으니 정말 국회의원수 감소를 추진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는 비례대표를 중심으로 국회의원수를 더 늘려야 한다고 보고 있는데, 어떤 것이 가장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인지 앞으로 많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할 부분이다.


결선투표제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나 평소 같으면 정치권에서 콧방귀도 뀌지 않을 사안들이다. 하지만 박근혜가 개헌을 추진하는 이상 현 정치 체제의 대규모 수정은 불가피한 상황이 될 것이다. 이사 하는 김에 가구 산다고, 개헌 하는 김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자는 식으로 일을 추진해 볼만 하다.


나는 다음 대통령 선거를 비교적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20~30대는 여전히 야권에 우호적인 집단이고, 5년간 새로 투표권을 얻게 될 이들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자인 50대는 5년 뒤 지금과 같은 표 결집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이번 50대의 표 결집은 이념에 기반한 '보수의 대결집' 때문이라기보다 '박근혜 효과' 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가 1:1로 격돌을 벌인 선거에서 간발의 차이로 석패했다. 비록 패했지만, 내용은 김대중 때, 노무현 때보다 훨씬 좋다. 김대중 때는 IMF외환위기와 이인제의 여권 표가름, 여기에 김종필과의 연대까지 동원한 결과 이길 수 없는 선거를 이긴 말도 안 되는 기적이었다. 노무현 때는 2002년 월드컵 4강 덕분에 덩달아 인기가 치솟은 재벌 세력 정몽준과의 억지 단일화를 통해 바람을 타고 어떨결에 이긴 드라마같은 승리였다. 이번에는 여권의 표가름도 없고, 바람도 없이 온전한 역량만으로 끝까지 경합을 벌인 끝에 아슬아슬하게 졌다. 


결국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앞으로의 5년이 새로운 새대와 정치의 힘이 구 세대와 낡은 정치를 넘어서는 소위 골든 크로스의 기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박근혜가 '새 시대'를 연다고 한다. 좋다. 열라고 하라. 하지만 열린 문으로 들어가는 건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