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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노트

한반도는 옛날부터 호랑이의 형상으로 인식되었는가

by kirang 2015. 8. 15.

  한반도는 옛날부터 호랑이의 형상으로 인식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조선 시대 기록에서 한반도를 호랑이 모습으로 묘사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중국에 인사하는 형상 

  이중환(李重煥)[1690∼1756]이 영조 27년(1751)에 저술한 『택리지(擇里志)』「복거총론(卜居總論)」산수(山水)조를 보면 “대저 옛 사람들이 이르길 우리나라는 노인의 모습으로, 해향(亥向)을 등지고 사향(巳向)을 하여 서쪽으로 얼굴을 열어 중국에 읍하는 형상이다. 그러므로 예부터 중국과 친하였다(大抵古人謂我國爲老人形而坐亥向巳向西開面有拱揖中國之狀故自昔親昵於中國)”는 서술이 있다.

규장각의 大東總圖

  또 영조 때 제작된 「대동총도(大東總圖)」·「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地圖)」(규장각 서지 정보에 따르면 숙종 38년 이후 간행) 발문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우리나라 지형은 북쪽이 높고 서쪽이 낮으며, 중앙이 좁고 아래(남쪽)가 넉넉하다. 백산(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대령(大嶺, 백두대간)이 척추다. 사람이 머리를 옆으로 하고 등을 구부리고 서 있는 모습으로, 영남의 대마도와 호남의 탐라도(제주도)는 마치 두 다리와 같다. 해(亥, 서북방)에 앉아서 사(巳, 동남방)를 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감여가(堪與家, 풍수가)의 정론이다. 경도(京都)를 기준으로 사방의 위치를 알아보면……"

한영우, 1999 《우리 옛 지도와 그 아름다움》, 효형출판사, 7쪽.

  이를 통해 보면 적어도 조선 후기에는 한반도의 형상을 사람에 비유하면서, 중국에 인사하는 모습이라 파악하는 인식이 꽤 퍼져 있었던 것 같다. 


한반도가 토끼의 형상이다?

  일본의 저명한 지리학자인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는 한반도 지형을 조사한 후 1903년 《동경제국대학기요(東京帝國大學紀要)》에  <조선산악론(朝鮮山岳論(An Orographic Sketch of Korea))>을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한반도를 토끼의 모습에 비유했다.

  "이태리는 외형이 장화(長靴)와 같고 조선은 토끼가 서 있는 것과 같다. 전라도는 뒷다리에, 충청도는 앞다리에, 황해도에서 평안도는 머리에, 함경도는 어울리지 않게 큰 귀에, 강원도에서 경상도는 어깨와 등에 각각 해당된다.

   조선인 사이에는 자신의 나라 외형(外形)에 대해 가상(假想)의 모습이 있다. 그들은 '형태는 노인의 모습이며, 나이가 많아서 허리는 굽고 양손은 팔짱을 끼고 지나(支那)에 인사하는 모습과 같다. 조선은 당연히 지나에 의존하는 게 마땅하다.' 라고 여기고 있는데, 이 같은 생각은 지식계급에 깊이 뿌리 박혀 있으며 일청전쟁(日淸戰爭) 후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월간 산』(1994년 1월호) 박용수의 글에서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교육회(朝鮮敎育會)에서 발간한 伊藤文治,「文敎の朝鮮)」1931년 3월의 글을 인용해 소개하고 있는데, 이 인용문은 고토의 글을 이토가 그대로 인용하거나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고토 분지로가 여기에서 제기한 한반도=토끼형상설이 이후 한반도 지리교육 등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고 여겨진다.


한반도가 호랑이의 형상이다?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묘사한 것은 최남선이 1908년 11월 『소년(少年)』창간호의 '봉길이 지리공부(鳳吉伊地理工夫)'에서 일본 지리학자 고토가 제기한 한반도=토끼형상설에 반발하여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지도를 그려 넣은 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최남선은 한반도의 형상을 “맹호가 발을 들고 허우적거리면서 동아 대륙을 향하야 나르난 듯 뛰난 듯 생기 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이라고 설명하였다. 


  "최남선이 한반도를 호랑이의 모습으로 묘사했던 것은 당시 큰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최남선의 그림을 본 독자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황성신문 "20세기 신천지에 우리 대한 지도의 전체가 돌연히 신 광채를 발현하니 장하고 웅(雄)하다, 동양반도에 대한(大韓) 지도여, 천지간 동물 중에 가장 사납고 날쌔며 강하고 용맹한 호랑이의 형체로다, 국민의 지기(志氣)를 배양하고 국가의 지위를 존중케 하는 자료가 될지로다"라고 격찬했다. 신문은 또 "우리 대한의 지세가 맹호의 모습과 같은즉 어찌 천연적 웅국(雄國)이 아닌가. 전국 소년계는 이 지도를 생각하야 우리 소년대한으로 하여금 호랑이 눈으로 천하를 보고 위풍을 진동케 할지어다. 을지문덕 같은 영웅이 하필 구시대에만 나올 것인가 전국의 소년 제군이여"라고 소년의 분발을 촉구했다(1908.12.11.)."

조선일보 2010년 1월 13일

  이러한 호응에 최남선도 기뻐하여 『소년』2호의 '봉길이 지리공부'에서 “전차(前次)에 출(出)한 ‘대한(大韓)의 외위형체(外圍形體)’에 관(關)한 논설(論說)은 크게 강호(江湖)의 찬미(讚美)를 엇어 읏더케 조흔디 모르겟소.”라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후 한반도를 호랑이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널리 퍼지게 된 것 같다.

고려대학교 소장의 한반도 형세도

  한편 인터넷 상에 조선 명종 때 인물인 남사고(南師古)가 자신의 책인 『산수비경(山水秘境)』혹은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호미곶은 꼬리에 해당한다”고 했다는 자료가 다수 뜨는데, 해당 책을 규장각, 한국고전연구원 등에서 검색해 보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남사고가 참언 혹은 풍수와 관련해 역술인들 사이에서 언급되는 인물임을 감안했을 때 과연 신빙성이 있는 내용인지 의문이다.

  또 김정호도 호미곶 지명과 관련해 장기산맥의 끝을 장기갑호미등이라 적었다는 자료들이 검색되어, 김정호의 대표작인『대동여지도』와 『동여도』를 확인해 보았는데, 호미곶에 해당되는 곳의 지명은 동을배곶(冬乙背串)이라고 표기되어 있을 뿐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은 확인할 수 없었다.


대동여지도 동을배곶(지금의 호미곶)


동여도의 동을배곶(지금의 호미곶)

  애초에 최남선이 『소년』지에 호랑이 형상을 제시했을 때 여론이 매우 놀라고 기뻐하며 찬사를 보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 이전 시기에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보는 견해는 아예 없었거나, 있어도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지는 않았다고 여겨진다. 그보다 조선 시대에는 한반도를 중국에 인사를 올리는 사람의 형상으로 보는 시각이 더 일반적이었음이 주목된다.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그린 그림을 보면 호랑이의 자세가 참 불편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한반도 형상 자체는 직관적으로 호랑이의 형상이라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그림은 한반도 지형에 어떻게든 호랑이를 그려 넣겠다는 적극적인 의도를 가지고 열심히 자세를 틀어 가며 구겨 넣은 것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요가하는 호랑이'라고 해야 할까.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보는 시각은 전통적 관념에 근거했다기 보다는, 근대 민족주의적 감성이 발명해낸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