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내가 이 시대의 대표적인 '몰지성'으로 지목한 바 있는 이지성은 '다음 뉴스 펀딩' 제3화에서 역사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그가 한 강연의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다음 뉴스 펀딩(이지성의 생각하는 인문학)
3화. 우리는 교육받은 대로, 나라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815)
1. 일제는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말살할 목적으로 조선사 편수회를 만들었다.
2. 이들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만리장성의 길이를 평양까지 늘려놓았다. 또 고대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내놓았다.
3.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던 이병도와 신석호가 해방 이후 한국 역사학계를 장악하였고,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은 진실을 철저하게 왜곡하고 있다.
4. 동북아역사재단이 만든 '동북아 역사지도'의 내용도 우리 고대사를 왜곡하고 있다.
5. 이게 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이 아닌, 교육받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우리 교육의 종착지다.
6. 생각하는 인문학 교육의 핵심은 역사 교육이다.
7. 나(이지성)는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고대 중국의 역사 강의는 넘쳐나지만 정작 중요한 우리 고대사 강의는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 열풍을 이해하기 힘들다.
언제나 그렇듯 이지성의 이번 강연도 한숨이 나오는 내용의 연속이다. 특히 그가 목 놓아 주창하는 '스스로 생각하라'는 슬로건에 대놓고 먹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연상케 한다.
이지성의 강연 내용은 사실 그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유명한 대중 역사 저술가인 이덕일이 하는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옮겨온 것이다. 아마 이덕일이 팟캐스트 강연에서 한 이야기나 그가 발간한 책 내용을 적당히 짜집기해 강연 준비를 했을 것이다. 결국 이덕일의 주장에다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를 한 사발 붓고, '생각하는 인문학 교육의 핵심은 역사 교육이다' 따위의 발언을 양념으로 곁들인 것에 불과하다.
이번 포스팅의 주요 타켓은 이지성이 아니다. 이지성이야 아무 생각 없이(그러니까 자기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이덕일의 말을 옮겨 떠든 죄밖에 없고, 모든 사단은 이덕일에게 있는 만큼 여기서는 이덕일이 어떤 괴이한 소리를 하고 있는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내 블로그에서 이미 한 차례 언급한 바 있듯 이덕일은 역사학계에서 제대로 된 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는 이덕일이 주장하는 것처럼 '식민 사관에 물들어 있는 강단 사학계의 강고한 카르텔' 같은 어마무시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냥 이덕일의 수준이 너무 저급하기 때문이다.
이덕일의 핵심 주장은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었다'는 것이다. 왜? 이덕일이 사랑하는 고조선은 크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하니까. 그러니 그에게 있어서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애초에 검증의 대상이 아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크고 아름다운 고조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낙랑군은 무조건, 무슨 일이 있어도 평양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결론을 정해 놓고 있으니 진지한 학문적 접근 같은 게 가능할 리 없다.
이덕일은 낙랑군이 평양에 없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태강지리지"라는 책의 내용을 들이민다. 여기에 "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의 기점이다(樂浪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는 이야기다. 이덕일이 하는 말의 요지는 이렇다. 낙랑군에 갈석산이 있었다고 하니까, 그 갈석산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만 확인하면 낙랑군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덕일이 '바로 여기다' 하면서 제시하는 곳이 지금의 중국 하북성 노룡현이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학계에서 낙랑군이 있던 곳으로 지목하고 있는 평양과는 무척 떨어져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낙랑군은 한무제가 고조선을 정벌한 후에 그 땅에 세운 것이다. 그러니 하북성 노룡현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저 지역이 원래 다 고조선 영역이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실제로 하북성 노룡현에는 바닷가 근처에 갈석산이 있다. 바닷가에 있다는 점을 잘 기억해 두기 바란다.
하북성 노룡현의 갈석산 모습
문제는 "태강지리지"의 내용이 과연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태강지리지"는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는 정보와 함께 이곳이 장성의 기점이라는 정보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까지의 고고학 발굴 성과에 따르면 연나라나 진나라가 세운 장성 유적은 노룡현의 갈석산은 커녕 그보다 훨씬 동쪽인 요동 일대까지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고고학 성과는 각종 문헌 기록들과도 합치된다. 고조선이 존속하고 있던 시절의 기록인 "사기"에서도 장성의 끝이 요동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이후에 저술된 수많은 역사서에서도 모두 진 장성이 요동 지역에 이른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니 혼자서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태강지리지"의 내용은 오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게다가 당나라 때 지어진 "통전(通典)"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기도 하다.
"노룡은 한나라 때의 비여현이다. 갈석산이 있는데, 비석(碣)과 같은 모습으로 바닷가에 서 있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진나라 태강지지에서 말하기를 '진나라가 장성을 쌓았는데 갈석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였으니 지금 고구려의 옛 강계에 있으며, 이 갈석이 아니다.(盧龍漢肥如縣 有碣石山 碣然而立在海旁 故名之 晉太康地志云 秦築長城 所起自碣石 在今高麗舊界 非此碣石也)"
"通典" 권178, 州郡 8, 平州.
"통전"의 저자는 진나라 장성이 시작되는 갈석은 고구려 영역이었던 요동 지역에 있다고 판단하고, 문제의 노룡현에 있는 갈석산은 "태강지리지"에서 설명하고 있는 갈석산이 아니라고 콕 짚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마치 천 수백년 뒤에 이덕일이라는 어리석은 자가 나타나 이상한 소리를 하리라고 미리 내다보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다.
->이상의 내용은 수정한다. "통전"에 대한 사료분석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쓴 글이었다. 대신 최근 공석구가 명쾌한 분석을 제시하였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필자는 "태강지리지"에 대한 공석구의 견해를 접하고 여기에 완전히 수긍하였다.(http://kirang.tistory.com/740)
그런데 사실 이 문제, 이름도 낯선 "태강지리지"를 뒤적거리고 "통전"을 뒤적거리고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냥 가장 널리 알려진 "삼국지"와 "후한서"의 동이전 내용만 가볍게 보아도 답이 나온다. "삼국지"와 "후한서"는 동이의 각 종족이나 나라들에 대한 인문 지리적 지식을 소상하게 싣고 있다. 또한 낙랑군이 존속하던 당시에 저술된 것이라 사료적 가치도 높다. 이중 낙랑군 주변에 있던 나라와 종족들의 지리적 설명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1. "삼국지" 고구려전, "후한서" 고구려전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 밖에 있다. 남쪽은 조선과 예맥,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高句麗 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 北與夫餘接).
2. "삼국지" 예전
예는 남쪽으로는 진한, 북쪽으로는 고구려, 옥저와 접하였고, 동쪽으로는 큰바다(대해)에 닿는다. 오늘날 조선의 동쪽이 모두 그 지역이다(濊南與辰韓 北與高句麗沃沮接 東窮大海 今朝鮮之東 皆其地也).
3. "후한서" 예전
예는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옥저, 남쪽으로는 진한과 접해 있고, 동쪽은 큰바다(대해)에 닿으며, 서쪽은 낙랑에 이른다. 예 및 옥저, 고구려는 본래 모두가 옛 조선의 땅이다(濊北與高句驪沃沮 南與辰韓接 東窮大海 西至樂浪 濊及沃沮句驪 本皆朝鮮之地也).
4. "후한서" 한전
한에는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 둘째는 진한, 세째는 변진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54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낙랑, 남쪽은 왜와 접하여 있다.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예맥과 접하고 있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 있으며 그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韓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辰 馬韓在西 有五十四國 其北與樂浪 南與倭接 辰韓在東 十有二國 其北與濊貊接 弁辰在辰韓之南 亦十有二國 其南亦與倭接).
5. "삼국지" 한전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와 접경하여 면적이 사방 4천리 쯤 된다. 세 종족이 있으니 첫번째는 마한, 두번째는 진한, 세번째는 변한이다.(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학계에서 설명하는 낙랑군과 그 주변 세력의 배치("후한서", "삼국지"의 내용과 모순 없이 깔끔하게 대응한다)
자, 이들 기록을 보면 각 나라와 종족의 상대적 방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낙랑군은 요동 동쪽 천리 밖에 있는 고구려의 남쪽에 있어야 하며, 예(동예)의 서쪽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한의 북쪽에 있어야 한다.
이덕일의 주장에 따를 경우 낙랑군과 그 주변 세력의 배치(응?)
이게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라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덕일 말대로 낙랑군이 하북성 노룡현에 있었다면, 낙랑 남쪽에 위치한 마한은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디 그뿐인가, 그 마한의 동쪽에는 다시 진한이 있어야 하며, 마한 남쪽에는 왜까지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바다 전체가 마한, 진한, 변한과 왜의 영역으로 꽉 차게 될 판이다.
이것이 이덕일이 한 '대단하신 연구'의 실체이다. 어떻게든 고조선의 영역을 넓혀 보겠다는 망상에 빠져 엉뚱한 하북성 노령현에 덜컥 낙랑군을 박아 놓기는 했는데, 낙랑군 주위에 있던 다른 나라나 종족들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심지어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해 놓고도 자신만이 옳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성실하게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학자들에 대해 '식민 사관'이 어쩌니 '매국 사학'이 어쩌니 운운하며 인격 살인을 일삼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이덕일은 쇼비니즘으로 뒤범벅이 된 씨알도 안 먹힐 망상을 이곳저곳에 떠들어 대며 책을 팔아치웠고, 이지성은 그 망상을 간파할 지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지라 남이 한 망상을 베껴서 같이 떠들며 책을 팔았다. 시대를 대표하는 두 책팔이의 화려한 콜라보레이션이라 해야 할까. 이지성은 여기에 덧붙여 역시 사람은 '스스로 생각을 해야 한다'며 짐짓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 현실을 걱정해 주는 참교육자의 모습마저 보이며 이 바보짓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