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퍼진 '47억 짜리 지도'의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다루었다.
47억 짜리 지도? 독도가 없긴 왜 없나-이덕일의 사기가 먹혀들다 (http://kirang.tistory.com/732)
이번에는 나머지 문제들을 살펴보자. 동북아역사재단이 만든 동북아역사지도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에 대한 이야기다. 해당 글에서 이 부분은 그나마 이덕일의 주장도 충실히 옮겨 오지 못해 부실하다. 그래서 사실 반박이라고 할 것도 별로 없기는 하다.
그래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북아역사지도에 그런 내용이 있으면 일단 눈 앞에 내놓고 이야기해라'이다.
동북아역사지도가 '동북공정을 그대로 따왔다'는 내용은 이게 전부이다. 그런데 별 근거가 없다. "고조선부터 이어온 우리 역사가 중국의 식민지로 묘사됐습니다"라고 하지만 괴상한 이야기이다. 고조선의 중심지가 어디였던 간에 한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곳에 낙랑군을 설치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덕일조차도 이것만큼은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 위치가 한반도의 평양이 아니라 하북성 노룡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지.
근대의 식민지 개념을 고대에 적용하는 게 타당한지도 의문이지만 굳이 낙랑군을 중국의 식민지라고 정의한다면, 한반도에 있든 중국 하북성에 있든 '고조선이 망하고 식민지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백번 양보해 이덕일 말대로 낙랑군이 하북성 노룡현에 있었다고 쳐도 '고조선이 망하고 우리 역사가 중국의 식민지'가 된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낙랑군 재평양설'만 고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황당한 오명을 뒤집어 써야 하나. 납득도 안 되고 영양가도 없는 논쟁이다.
이 건에 있어서는 독도 건과 달리 실제 동북아역사지도 도엽이 제시되지도 않았다. 위 중간 컷에 있는 지도는 동북아역사지도가 아니라 중국의 담기량(譚其骧)이라는 사람이 만든 "중국역사지도집"의 지도일 뿐이다. 그런데 이덕일의 책을 보면 동북아역사지도가 담기량의 지도를 표절한 것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이덕일,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만권당, 2015, 36-37쪽.
왼쪽이 담기량의 중국역사지도이고, 오른쪽이 동북아역사지도이다. 이덕일은 책에서 왼쪽 지도가 '중국 동북공정 차원에서 그린 한사군-낙랑군의 위치'라고 설명하였는데, 담기량이 이 지도집을 만든 게 1980년대이니, 당연히 동북공정 같은 건 없던 시절이다. 잘 알다시피 동북공정은 2000년대에 들어서 중국 정부가 시행했던 국가 프로젝트니까 말이다. 제발 이덕일은 이렇게 대충 뭉뚱그려서 뒤집어 씌우는 짓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 두 지도, 보면 알겠지만 표절이라고 하기엔 별로 닮은 구석이 없다. 특히 해안선을 보면 동북아역사지도는 약 2000년 전의 지형을 충실히 구현하기 위해 해수면을 현재보다 높게 설정하였다. 그 결과 현재와는 사뭇 다른 해안선이 지도상에 구현되었다(특히 대동강 하구 일대 주목). 아직 완성된 형태는 아니지만 발전된 정보 처리 기술과 최근의 지리학 지식을 반영해 왼쪽 담기량의 지도보다 우월한 지도를 제작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왼쪽 담기량 지도에서는 만리장성이 청천강까지 내려와 연결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 학계의 일방적인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한국 학계에서는 부정되는 낭설이다. 한국 학계에서는 만리장성의 끝을 대략 요동 일대로 보고 있다. 당연히 동북아역사지도에도 만리장성이 한반도 내로 들어오는 일 따위는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인접한 중국의 군현인 낙랑군과 서안평현 사이에 육지 연결로가 끊겨 있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동북아역사지도에서도 그러한 판단에 입각해 해당 지역을 낙랑군 관할로 처리한 듯하다. 물론 이 부분은 추론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 삼을 여지는 있다. 하지만 개연성 자체는 성립하는 안이다.
이덕일은 국경선이 산과 하천과 같은 자연 지형을 경계로 그려져야지 어떻게 세로로 잘리냐고 펄펄 뛰지만 평안북도 해안선 쪽에 형성된 교통로의 존재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 게다가 이 시기의 국경선을 현대적 관점에서 칼같이 나누어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느슨한 형태의 통제 권역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덕일이 이 지도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경계선이 세로냐, 가로냐 같은 지엽적인 것이 아니다. 그냥 낙랑군이 평양 지역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싫은 것이다. 하지만 낙랑군을 한반도의 평양이 아닌 하북성 노룡현에서 찾는 이덕일 주장의 터무니없음은 이미 다른 게시물에서 다룬 바 있다.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었나? 이덕일의 아주 거대한 헛발질에 대해서(http://kirang.tistory.com/731)
다음 동북아역사지도가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였다는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서도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따왔다는 주장만 있을 뿐이지, 정작 그에 해당하는 동북아역사지도의 도엽은 제시하지도 않고 있다. 위에 보이는 두 개의 지도는 모두 동북아역사지도와 전혀 무관한 엉뚱한 지도이다. 아마 대충 구글링해서 복사해 붙인 지도인 모양이다. 동북아역사지도를 욕하려면 동북아역사지도를 앞에다 놓고 욕을 해야지 왜 엉뚱한 다른 지도를 가져다 놓고 동북아역사지도를 욕하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동북아역사지도에는 임나일본부 같은 건 일절 그려져 있지도 않다.
이덕일,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만권당, 2015, 260쪽.
실제로 이덕일이 문제 삼았던 지도는 바로 위의 것이다. 이덕일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위 지도를 보면 무엇을 욕해야 하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아 고민이 될 것이다. 맞다. 욕할 부분이 떠오르지 않는 게 정상이다.
이덕일은 2-3세기 한반도 남부 지역을 그린 위 지도에 신라와 백제가 없다고 트집을 잡고, 이것이야말로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뒤집어 씌운다. 그런데 백제는 '백제국'으로, 신라는 '사로국'으로 엄연히 표기되어 있다.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는 한반도 남부에 마한 54개국, 진한 12개국, 변한 12개국이 있음을 전하며 이들 소국의 이름을 하나하나 모두 나열하고 있다. 자료가 매우 희박한 고대사에서 더없이 소중한 자료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덕일은 "삼국사기"에는 이들 소국 이름이 안 나온다며 "삼국지"를 믿을 수 없다고 매도한다.
"삼국지"는 3세기 대에 편찬된 책이고, "삼국사기"는 1145년에 편찬된 책이다. 두 책 모두 우리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소중한 자료들이다. 다만 한반도의 3세기대 상황을 복원하는 데 있어서 3세기 당대에 저술된 책과 그로부터 900년 가량 뒤에 저술된 책 중 어느 쪽이 더 무게감이 있는 사료인지는 자명하다. 역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사건이 발생하였던 당대의 자료에 가중치를 부여한다. 문헌과 금석문의 내용이 상충될 때 후대 기록인 문헌보다 당대 기록인 금석문을 더 존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삼국지"가 외부자인 중국인의 시각에서 저술되었다는 점은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외부자의 시선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치가 있는 것들도 있다. 예컨대 한말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의 기록을 보면, 조선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얕아 피상적으로 서술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부자의 시선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참신한 시각에서 조선의 문화와 제도, 사람들을 묘사한 경우도 적지 않다. "삼국지"도 삼한 사람들의 풍습과 생활상을 굉장히 생동감 있고 상세하게 전달하고 있는데, 이것도 외부인의 시선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덕일 식대로 "삼국지"의 사료적 가치를 폄훼하면, 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는 소중한 고대사 자료들을 쓰레기 통에 버리는 꼴이 된다. 도대체 이런 단순무식하고 폭력적인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렇다고 이덕일이 "삼국지"가 전하는 삼한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덕일은 1999년 이희근과 공저한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에서 한반도 남부, 즉 마한 남쪽에 '왜'라는 정치체가 존재하였다는 괴설을 주장한 바 있다.
"......왜의 위치는 마한과 진한, 변진의 남쪽, 즉 한반도 남부이다. 따라서 왜는 중국의 삼국시대인 3세기까지는 한반도 남부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한반도에 있었던 왜는 백제와 신라를 영향력 아래 두고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맞서 싸웟던 강력한 정치집단이었다. 그간 일본인들이 왜를 일본열도 내로 비정하면서 생겼던 모든 모순은 왜를 한반도 내의 정치집단으로 이해할 때 풀리게 된다......전남 나주 반남고분군은 고대 한반도 남부지역을 지배했던 왜라는 정치세력이 남긴 민족사적 유산이다"
이덕일, 이희근, 1999,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김영사, 21~27쪽.
이덕일이라는 '대학자'의 입에서 나왔기에 망정이지, 한국이나 일본의 평범한 학자가 입에 올렸다가는 당장 임나일본부설을 떠벌리는 식민사학자라고 귀싸대기를 맞을 소리를 저렇게 했었다. 참으로 기묘한 것은 이덕일은 자기 입으로 '3세기'에 마한, 진한, 변진의 남쪽인 한반도 남부에 '왜'가 '강력한 정치집단'으로 존재했다는 어마무시한 주장을 했던 주제에, 그냥 '3세기 한반도 남부에는 삼한이 있었다'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견해에 대해 '이게 바로 임나일본부설'이며 '매국사학'이라고 거품을 물며 덤벼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덕일이 대중 역사학계에 처음 발을 디딘 풋풋하던 시절이라, 잘 모르고 저렇게 이야기했을 수도 있겠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덕일은 2005년 단독 저술한 "교양 한국사"(휴머니스트)에서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이상의 여러 기록들은 전남 나주 일대에 있던 왜 세력이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한반도의 패권을 다투다가 패배해 일본열도로 이주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덕일, 2005 "교양 한국사 1", 휴머니스트, 231~232쪽.
이 정도면 그냥 확신범이라고 봐야 하겠다. 그런데 같은 책에서 마한에 대해서는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현재 마한의 위치가 경기, 충청, 전라도 지역이라는 학설은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삼국사기' 마한 조는 최치원의 말을 인용해 '마한은 고구려고, 진한은 신라다.'라고 기록했고...... 준왕이 평양에서 한강 이남으로 퇴각한 것이 아니라 요동이나 요서 지역에서 해로를 통해 훗날의 고구려 영역으로 퇴각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
이덕일, 2005 "교양 한국사 1", 휴머니스트, 112~113쪽.
그러니까 이덕일 말에 따르면 마한은 한강 이남이 아니라 고구려 쪽에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잠깐만! 앞에서는 왜가 마한 남쪽에 있는 존재니까 한반도 남부 전라남도 지역에 있었던 정치체가 되는 거라고 논증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마한은 고구려쪽에 있었다니! 도대체 이덕일 머릿속의 지리공간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모르겠다. 범인은 이해할 수 없는 5차원 공간을 지각하는 천재인 것일까.
내 생각에는 그냥 학계의 일반 통념과 달라 보이는 자료만 보이면 앞뒤 생각 안 하고 조건 반사적으로 긍정부터 하고 보는 버릇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면 이건 일종의 강박증일 수도 있다.
이야기가 길어지고 말았는데, 아무튼 동북아역사지도와 임나일본부설의 연관성 역시 이처럼 터무니 없는 소리이다. 오히려 그런 주장을 펼치는 이덕일이야말로 임나일본부설의 재판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괴상한 주장을 하는 장본인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