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하였다. 역사 서술을 전문 학자들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통제하겠다는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발상이 참으로 안타깝다. 대한민국 정부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3년에 이미 원조가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대통령도 '박씨'였다.
"국사교과서 국정으로-검정제 폐지 국적있는 교육 강화-", 경향신문, 1973년 6월 23일 7면 기사.
우리나라의 국사 교과서는 원래 검인정 체제였고 1973년 당시 11종의 교과서가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박정희는 1972년 유신 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형식상의 민주주의 체제마저 붕괴시킨 다음해에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하였다. 명분은 '주체의식과 올바른 국가관 확립'과 함께 기존 검인정 체제에서 학생들이 입시에 혼란을 겪는 폐단을 고친다는 것이었다. 정파적 편향성과 목적성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2015년의 국정화 명분보다 오히려 소박하고 조심스러워 보이는 면이 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유신체제에 대한 선전과 정당화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고 여겨진다.
“......새 교과서 내용에는 ‘주체적 민족사관 정립’ ‘새 한국인 형성’ ‘한국 민주주의 토착화’ 등 문교부의 국사 교육 방침을 반영시킬 방침이다.”(경향신문, 1973년 6월 23일 7면 기사)
물론 이처럼 갑작스러운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은 편이었다. 이는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다음과 같은 인터뷰 내용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국사교과서 국정에 대한 각계의견', 동아일보, 1973년 6월 25일, 5면.
"동아일보"에 실린 이 특집 인터뷰에서는 4명의 의견을 실었는데, 이중 찬성하는 입장은 1명뿐이었고, 나머지 3명은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찬성을 밝힌 신세호는 정부 출연 기관인 한국 교육 개발원 소속의 사람이었으므로 사실상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는데, 그가 찬성을 표한 이유가 이채롭다.
“나는 국사뿐만 아니라 다른 교과서도 국정으로 하면 좋겠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로 국정으로 해야만 제작비가 싸질 수 있다. 검인정의 경우는 오히려 값이 올라갈 뿐이다. 이같은 현상은 제작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다. 둘째 내용에 있어서도 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들 경우 다양한 견해가 소개되지 못하고 한 가지 견해만이 밝혀져 학생들에게 자칫 편견을 넣어준다는 우려가 있지만 이런 사실은 오히려 검인정의 경우에 해당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검인정 교과서를 쓴 학자들은 자기들의 견해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학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융통성이 적기 때문이다.”
신세호 한국 교육 개발원 개발지도 국장
찬성의 근거로 첫번째로 댄 것이 고작 제작비 절감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국책 연구 기관 소속인 분이 교육적 가치에 대한 고민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은 답변을 하였다는 점이 참 흥미롭다. 어쩌면 이분도 내심 국정화에 반대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찬성 쪽 입장에서 인터뷰를 해야 했던 안타까운 뒷사정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국정화 반대 입장을 표명한 3명 중 2명은 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였고, 1명은 현장에서 역사 교육을 담당하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이들은 모두 역사 교육의 획일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였다. 이중에서도 고려대학교 교수인 김정배의 의견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기왕의 국검정인정 교과서에 틀린 내용이 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자가 책임질 일로 수정될 가능성과 융통성이 컸다. 그러나 교과서에 있어서 오류의 책임과 수정의 의무가 국가에 귀속된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나는 국사가 획일적으로 되는 것에 반대한다. 획일적인 역사란 있을 수 없다. 역사연구의 중요성이 사건의 단순한 기술보다는 올바른 이해와 해석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달에 따라 사료의 개발에 따라 역사 내용 자체도 달라질 수 있는 마당에 다양성을 말살하고 획일성만을 찾으려는 것은 위험하다.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할 경우 교과서마다 한쪽에 치우쳤던 모순은 시정될 수 있을는지 모르나 그것도 그리 큰 기대는 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사학자들 누구나가 약점이 있다고 할 경우 소수저자만에 의한 교과서는 독단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으며 자유경쟁에 의한 오류의 보완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김정배 고려대 교수
딱히 반박하기 어려운 정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얄궂은 점은 당시 "동아일보"에서 이처럼 분명하게 국정화 반대 인터뷰를 한 김정배 고려대 교수가 바로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점이다.
나는 김정배 국편위원장의 소신이 바뀌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사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역사학자치고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자리가 자리인만큼 대놓고 '내 소신은 국정화 반대'라고 말하지는 못하는 입장이라고 짐작이 간다.
대통령 및 정부 여당이 무리하게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들은 새누리당이 젊은 층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가 '좌파' 역사학자들과 교사들에게 장악된 국사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 세대 중 가장 좌파적 성향을 띠고 있다고 하는 486세대를 보라. 이들이 국정 교과서로 공부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인가. 반대다. 이들이야말로 철저하게 국정 교과서로 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국정 교과서 따위로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어찌 해보려는 시도가 무망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명백한 반례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대학에 들어와 고등학교 때의 역사 교육이 은폐하고 있던 것들을 갑작스레 접하며 정반대 방향으로 의식화 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야당 쪽에서 저렇게 강력하게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마당에 정권이 바뀌면 바로 뒤집어질 것이 뻔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몇 년 뒤에 다시 뒤집히건 말건 지금은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면 그만이라는 것인가. 사적 기호와 자기만족에 불과한 근시안적 정책을 밀어 붙이는 대통령이나, 그 엉터리 정책을 옹호하는 데 동원되어 서지도 않는 논리를 짜내어 가며 행동대장 노릇하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딸의 마음은 시간의 바늘을 돌리고 돌려 마침내 1973년에 이르렀다. 역주행한 42년. 이런 것을 역사의 반동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