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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음식 "을지면옥 물냉면"(서울특별시 중구 입정동)

by kirang 2015. 12. 14.


  내가 냉면이라는 음식을 처음 먹어 본 것은 중학교 때였다. 동네 평범한 음식점에서 먹어 본 첫 냉면의 충격적인 새콤달콤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경험은 이후 오랫동안 나에게 '냉면 맛'의 기준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때인가 평양 냉면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맛이 너무 심심해서 보통 사람들은 한 번 먹어서는 제대로 맛을 알 수 없다는 이야기가 따라붙어 나를 궁금하게 하였다. 당시 읽었던 신문 기사 내용이 아직도 기억난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남북 교류가 물꼬를 튼 시기였다. 신문에는 평양에 간 한 남한의 인사가 그 유명하다는 평양 옥류관 냉면을 먹어본 소감이 소개되어 있었다. 결론은 실망스러웠다는 것이었다. 남한의 자극적인 칡냉면에 익숙한 본인 입맛에는 평양 냉면이 너무 싱거웠다나.

  이후 몇 차례 기회가 생겨 소위 평양식 냉면들을 맛볼 수 있었다. 먹어보니 세간의 소문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었다. 평양냉면은 고깃집에서 후식으로 먹던 냉면들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비로소 초와 설탕의 자극적인 맛이 아닌 은은한 육수의 맛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간 먹어 왔던 냉면 맛이 얼마나 경박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을지면옥은 서울에 있는 평양식 냉면을 하는 음식점 중 한 곳으로,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낡고 허름한 듯한 가게이지만 2층으로 되어 있고, 테이블 수도 꽤 많다. 냉면에는 고추가루와 생파가 뿌려져 있어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 신기하다는 인상을 준다. 마포구에 있는 또 다른 유명한 평양식 냉면집 을밀대와 비교하면 육수의 간은 약간 센 편이다. 잔치국수 국물을 차갑게 식힌 것같은 느낌이 난다. 육수가 짭쪼롬하기 때문에 평양 냉면 치고는 초심자의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라 생각된다.

  냉면 위에는 고명으로 돼지고기 편육이 올라가는데, 개인적으로 편육을 썩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딱히 장점이라 언급하기는 어렵다. 차가운 냉면과 돼지고기가 어울리는 조합인지 의문이기도 하다. 돼지고기 편육 자체가 이 집의 주력 음식 중 하나라고 하니, 여기서 비롯된 음식점의 개성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메뉴판을 보면 물냉면 외에 비빔냉면과 온면도 팔지만 먹어 보지 않아 평가를 할 수 없다. 돼지고기 편육과 소고기 수육, 불고기도 따로 파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 이 역시 먹어 보지 못했다. 냉면이 차가운 음식이다보니 일행과 함께 부담 없이 나눠 먹을 수 있는 전이나 부침 같은 따뜻한 음식을 함께 팔면 좋겠다 싶은데 그럴 생각은 없어 보여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