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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영화 "거미숲"

by kirang 2014. 8. 18.

 

2004년에 개봉한 송일곤 감독, 감우성 주연의 영화이다.

"거미숲"은 파편화된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살인 사건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기본 배경이 되지만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물은 아니다. 관객들은 범인이 누군인지 쉽게 눈치챌 수 있으며, 감독도 굳이 꽁꽁 감추려하지 않는다. "거미숲"의 매력은 범인을 색출하는 두뇌게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왜곡되고 조각나 논리성을 상실한 한 인간의 의식, 무의식의 영역을 거니는 데 있다.

영화는 잔잔한 리듬을 타고 진행된다. 영상은 화려하지 않지만 충분히 아름다우며 시적이다. 스토리의 복잡성, 신뢰성이 가지 않는 기억의 조각들은 "메멘토"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메멘토"처럼 흐트러진 기억들을 하나로 꿰어맞춰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미숲"의 아름다움은 어지럽게 흐트러진 파편들이 피워내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있기 때문이다. 

"메멘토"의 기억은 비록 조각나 있을지언정 그 원형은 단단한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기에 퍼즐을 맞춰가며 드러나는 본 그림의 모습을 찾아내는 데 의미가 있었다.  "거미숲"의 기억은 이미 크고 작은 왜곡으로 이지러지고 변색된 것들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맞추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흐트러진 퍼즐 조각들이 그려내는 비정형적인 무늬를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몽환적이며, 담담하고, 슬픈, 아름다운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