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의 장관 선임과 관련하여 우려의 의견을 낸 역사학자들을 증인석에 앉혀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자유한국당의 모습에 어이없음을 느낀다. 자유한국당이 역사 문제로 누구를 다그칠 수 있는 입장인가.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는 패악으로 온나라를 뒤집어 엎고, 역사학계에 그처럼 큰 상처를 입혔던 당사자인 자유한국당이? 이건 너무 뻔뻔한 것이 아닌가.
사이비 역사학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건 결코 도종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 며칠 보수쪽 언론 기사들을 보면 마치 도종환 한 사람이 온갖 나쁜짓을 다 한 것처럼 몰아 가는 경향이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2015년 4월 17일에 있었던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회의록 제32호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했던 발언들을 좀 살펴 보자.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의 책임자를 불러 놓고 한 이야기들이다.
========================================================================
최봉홍(새누리당): 중국학계는 고구려사의 중국사 귀속 주장을 바탕으로 고조선, 발해, 고구려 관련된 역사적 맥락에서 재구성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를 하고 있는데 우리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런 것을 안 하고 강변 연구하고 또 바잉턴이 쓴 그런 책이나 만들어 내고 여태까지 해 놓은 결과가 뭐 있습니까?(13쪽)
......북한이 지금 평양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하다 보니까 그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도 평양이 중심이 아니고 중심지가 다른 데 있었다 하는 것을 밝혀야 긍지가 살리라고 봅니다(14쪽).
이만큼 우리 역사를 왜곡되게 해 놓은 것은 역사학자들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동북아역사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십억을 들여서 해 놓고 결과를 남긴 게 뭐가 있습니까? 그다음에 지도 만들어 가지고 누구한테 그것을 가르친단 말입니까? 제 개인적인 견해는 당장 중지하고 팀을 전부 새로 짜야 된다고 봅니다. (29쪽)
이상일(새누리당): 그 학계가 어떤 학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위 우리가 말하는 주류 사학계 또 좀 더 광범위하게 하면 식민사관이 이어져 왔다는 그런 주류 사학계, 이런 지적이 나올 것 같은데......(15쪽)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불신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반영한 지도를 만드신 게 있습니까, 이 안에서?(16쪽)
이명수(새누리당): 지금 이덕일 교수뿐만이 아니라 이 부분에 대한 이의 제기하는 분이 다른 학자들도 많아요. 또 중국의 다른 역사서나 이런 데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내용과 다른 내용이 많단 말입니다. 그런 이설이나 이견을 8년 동안 해 오면서 제대로 한번 검토하고 논의해 본 적 있습니까?(22쪽)
김제식(새누리당): 우리 임기환 교수님께 여쭈어 봅니다. 우리 이덕일 소장님 같은 이런 분들을 동북아역사지도편찬위원회에 영입하거나 같이 의견을 나누고 할 생각 없으신가요?(23쪾)
......그리고 지금 우리 이덕일 소장님이 얘기하시는 여러 견해들 이런 것들을 좀 적극적으로 반영할 자신감이 없나요?(24쪽)
정문헌(새누리당): 낙랑을 한반도로 비정해 놓고 압록강에다가 선을 긋는 것은 이병도 주장과 비슷한 맥락에서 지도를 편찬하는 것이고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게 독도를 놓고 일본이 주장하는, 자꾸 실수라 그러시는데 일본이 주장하는 지도와 거의 비슷하게 그려내는 것과 압록강 낙랑을 여기다 비정하는 거랑 무엇이 다릅니까? 왜 스스로 우리 역사 영역을 축소하려 합니까? 그러면 우리 만주 역사, 요동의 역사 가르치지 말아야 됩니까?(27쪾)
......지금 이런 지도는 저희가 봤을 때는 그런 중국의 우리 역사의 침탈행위를 우리 스스로가 뒷받침해 주는, 나랏돈을 50억씩 써가면서 그런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28쪽)
김세연(새누리당): 지금 삼국의 건국시기를 보면 이 시기에 고구려 부여와 중국 군현, 기원전 108년부터 서기 199년 이 지도가 설정하고 있는 기간에 고구려 신라 백제가 건국이 되는 우리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여기에는 신라 백제 자체가 표시가 안 돼 있고, 아까 사로국이라든지 여러 가지 삼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무튼 총체적으로 사관 자체에 대해서 국민적인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허다하다 이런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32쪾)
=====================================================================
이날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회의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 가진 역사상을 역사학자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십 년간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의 전문성은 깡그리 무시되었다. 유감스럽게도 도종환은 바로 이들과 한덩어리가 되어 역사학계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이날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덕일은 의원들의 발언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자신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엄청나게 떠들어댔다. 이날 회의의 모습은 한마디로 '이덕일과 그 신봉자들'의 횡포였다.
도종환의 장관직 선임과 관련하여 새삼스럽게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애초에 이 건은 여야의 구분이 없는 동북아특위 전체의 문제였다. 정치 권력이 이런 식으로 학문의 영역에 간섭하고 횡포를 부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치인에게 역사에 간섭할 권리 같은 것은 없다. 정치인은 최선을 다해 국민에게 봉사하고 역사의 준엄한 평가를 겸허히 기다려야 할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