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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노트

동북아역사지도 샘플과 독도 표기 확인

by kirang 2017. 6. 17.

  이덕일이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해 파상공세를 펼친 것은 2015년의 일이다. 그는 2015년 4월 17일 국회 동북아역사특위에 증인으로 참석하여 지도에 대해 공격을 퍼부었는데, 국회의원들은 하나 같이 이덕일의 주장에 경도된 언행을 보였다. 세뇌된 사람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균형감을 상실한 모습들이었다. 이덕일은 같은해 8월 15일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만권당)라는 책을 저술하여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한 공세를 이어나갔다.

  이덕일은 동북아역사지도를 축소 인쇄하는 형식으로 책 곳곳에 인용하며 이 지도가 동북공정과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고 있는 매국적인 지도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특히 강조하였던 것은 '낙랑군이 평양 지역에 그려져 있다'는 점과 '독도가 의도적으로 지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낙랑군을 평양 지역에 그림으로써 한반도 북부를 중국에 갖다 바치고, 독도를 지움으로써 독도는 일본에 갖다바쳤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이중 전자는 1970년대 이래 지속되어 온 사이비 역사학계의 엉터리 주장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후자는 동북아역사지도라는 특수한 대상을 공격하는 과정에 튀어나온 새로운 이야기였다.

  나는 이 블로그에서 수 차례에 걸쳐 동북아역사지도에 '독도는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덕일이 자기 책에 실은 조악한 품질의 축소 지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독도 위치에 희미한 점 같은 것이 일관되게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하는 직사각형 선의 존재 역시 지도에 독도가 존재하는 증거라고 지적하였다. 동북아역사지도에서는 울릉도의 소속이 강원도에서 경상도로 바뀌었을 때 경상도 지도 아래쪽에 울릉도와 독도를 박스 채로 함께 옮겨 표기하였다. 이는 동북아역사지도에서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다루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러나 이덕일의 말을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았다. 고해상도의 지도를 확보하여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나, 그 지도를 입수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도팀 구성원 중 한 명과 만나 울릉도와 독도 부분이 확대된 지도 샘플을 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으나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대외비 자료이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것이다.

  정작 이덕일은 그 '대외비 지도'를 입수해서 지도팀을 '매국의 역사학'이라 난도질하는 내용의 책을 찍어내 상업적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그의 책 전체에는 동북아역사지도가 축소 인쇄되어 역사학계를 매국적 식민사학으로 매도하는 데 활용되었다. 하지만 지도팀을 변호해 주려던 나는 규정에 막혀 해당 지도를 구할 수 없었다.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이었다(이덕일의 책은 지금도 아무런 제약 없이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내부의 누군가가 지도를 빼돌려 이덕일에게 넘겨 준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누구인지 밝혀내어 반드시 응당한 처분을 받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동북아역사지도의 샘플 하나가 2013년에 발표된 논문에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요근, 2013, 'GIS 기반 고려시대 역사지도의 제작'"한국중세사연구"37이 그 논문이다. 그동안 이 논문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 못한 나의 불찰이다. 이 지도는 학술지에 실려 학계에 정식으로 공개된 것이므로, 이를 이용하는 것은 법이나 규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지도를 통해 문제의 독도 표기가 실제로 어떠한가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지도의 전체 모습을 보자.

(PC로 볼 경우 클릭하면 커진다)

  이 지도는 1213년(강종 2)의 고려 지도이다. 한눈에 보아도 역사부도 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지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디지털 전자지도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축척을 바꾸어 더 상세하게 부분도를 볼 수도 있다.


(PC로 볼 경우 클릭하면 커진다)

  이것은 다른 축척의 경기도 일대 부분도이다. 노란색 글씨는 현재의 지명이고, 검은색 글씨는 고려 시대의 지명을 표시한 것이다. 고려 시대 각 군현의 치소 위치들을 하나하나 표시하였고, 군현간 경계선도 표시되고 있다. 보라색으로 표시된 것은 향, 소, 부곡 등의 특수 행정구역들의 위치이며, 녹색점으로 표시된 것은 고려시대 설치되어 이용되었던 역(驛)들의 위치이다. 

  역사학자들은 역사지리 정보를 담고 있는 과거의 문헌들을 다 뒤져가며 8년간 이 지루하고 힘든 작업을 훌륭하게 해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낙랑군을 평양에다 그린 것은 동북공정의 추종'이라는 한 사이비 역사학자의 선동에 넘어간 정치인들의 위압에 의해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자, 이제 문제의 독도 표기를 살펴보자. 위에 있는 고려시대 전체 지도를 보면 명백히 울릉도와 독도가 표기되어 있다. 이를 확대해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모바일로 보는 분들은 화면을 가로로 돌려서 보기를 바란다)

  이것이 확대된 지도이다. 보다시피 독도가 지워지지 않고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지도가 실린 논문은 2013년의 것이다. 이덕일이 지적질을 했기 때문에 뒤늦게 독도를 새로 그려넣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덕일은 어째서 이런 멀쩡한 지도를 보고도 독도가 지워졌다고 우기며 언론 플레이를 하였던 것일까. 혹시 노안이라도 왔던 것일까? 그 힌트는 이덕일의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2015년에 출간한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다"의 307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도 16~지도22에는 검은 상자를 만들어 울릉도를 표기해놓고는 독도는 누락시켰다. 독도는 우리의 강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독도 부근의 흐릿한 점은 GIS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 표기된 것에 불과하다. "동북아역사지도"의 모든 도엽에는 독도가 의도적으로 지워져 있다."

  보라! 이덕일도 지도에 독도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알면서도 저렇게 선동질을 해댄 것이다. 독도는 매우 작은 섬이기 때문에 저 정도 축척의 지도에서는 작은 점 형태로 표시될 수밖에 없다.

  (독도의 실제 크기는 다음 글 참조) 독도는 얼마나 작은 섬인가-동북아역사지도와 위성사진, 구글 지도 비교(http://kirang.tistory.com/735)

  이덕일이 비열함은 그의 책 어디에서도 동북아역사지도의 울릉도와 독도 부분을 확대하여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독도가 지워졌다는 그 중요한 내용을 떠들어대면서 어째서 책에서는 확대된 울릉도의 부분도를 제시하지 않았던 것일까. 간단하다. 지도를 확대하면 독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도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지도를 편집해 제시한 것이다.

  생각할수록 사악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짓으로 정치인들을 옆에 끼고 앉아 학문을 유린하고, 역사학계를 모욕하고, 책을 찍어서 금전적 이득을 취하고 있는 이덕일에게는 '사이비 역사학자'라는 호칭조차도 과분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