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개봉한 장훈 감독의 영화이다.
주인공 김만섭(송강호 분)은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못마땅하게 보는 서울의 택시 운전사이다. 툭하면 길을 막히게 해 택시 운전에 불편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데모하는 대학생들은 사우디에라도 가서 모래 바람을 맞아 봐야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걸 알게 될거라는 식의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태운 외국 손님과 함께 1980년 5월 광주를 경험하며 일종의 각성을 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이다.
이야기 설정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오히려 클리셰에 가까울 정도로 안전하고 모범생스러운 각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송강호의 전작인 '변호인"만 하더라도 이와 똑같은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5.18이라는 실제 사건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힘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뻔하다' 싶은 전개 중에도 관객을 울컥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있다.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에는 아쉬움이 있다. 주제의 무게감이 상업성에 대한 부담으로 느껴졌기 때문일까. 관객을 자극하려는 무리한 연출이 꽤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광주의 택시운전사들의 활약이다. 일종의 영웅담처럼 묘사가 되는데 이게 너무 노골적이고 촌스럽다. 그 정점을 찍었던 게 영화 막판의 카체이싱 장면이다. 맥락과 개연성이 전혀 없는 튀는 씬이라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전까지 영화가 힘겹게 유지해온 리얼리티와 관객의 감정선을 순식간에 날려 먹는다는 점에서 최악의 연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작팀 내부에서 영화에 카체이싱 장면을 집어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석고대죄해야 한다.
송강호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의 캐릭터가 얄팍하고 낭비된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문제이다. 예컨대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이 모 사건을 겪고 병원에서 넋놓고 앉아 있는 모습은 한심스러울 정도였다. 목숨을 걸고 광주까지 잠입해 들어온 그의 기자 정신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대학생인 구재식(류준열 분)은 어떠한가. 광주에서의 폭력적인 진압 장면을 목도하고 경악한 김만섭이 군인들이 왜들 저러냐고 묻자 자기도 모른다고 하고 넘어가 버린다. 구재식이 아무리 날라리 대학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다른 곳도 아니고 80년 5월 광주 한복판에서 당시 가장 날카로운 정치 의식을 가지고 있던 계층인 대학생 입에서 나온 대답치고는 너무하지 않은가. 송강호는 좋은 배우이고 실제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 주었지만, 주변 캐릭터가 다 이런 식이니 연기에 앙상블이라는 게 나오기 어렵고, 송강호의 좋은 연기마저 겉도는 느낌이다.
"택시 운전사"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크게 남는 영화이다. 내가 본 80년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여전히 "스카우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