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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노트76

보부상-부보상 논란, '부지런함'과 몰지성이 만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몇 년 전부터 인터넷상에서 보부상(褓負商)은 일제에 의해 왜곡된 용어이고, 부보상(負褓商)이 옳은 용어라는 주장이 떠돌고 있다. 역사 관련 사이트의 게시판들은 물론 포털의 백과사전에서 네이버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글들이 앵무새처럼 도배되곤 하는데, 이게 주로 경기대학교에서 이훈섭 교수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조직적인 행동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 논리가 참으로 해괴하다. 다음은 인터넷에 떠도는 예의 그 부보상 관련 글이다. 부보상(負褓商)의 용어가 보부상(褓負商)으로 왜곡 둔갑된 연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사농공상의 일본식 서열개념으로 조선왕조의 중상정책을 폄하(貶下)하기 위한 역사왜곡과 식민정책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일제에 최후까지 반항한 부보상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술책에 기인된 것.. 2009. 6. 15.
한국인의 형질 인류학적 특징 메모 그다지 잘 정리되어 있는 자료가 없다. 1960~70년대에 씌어진 논문이 몇 편 있지만 그것도 일제 시대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쓴 것이고, 최근엔 형질인류학을 통해 한국인의 특징을 찾으려는 시도에 시큰둥한 분위기이다. 어쨌건 좀 오래된 자료에 근거한 것이지만 한국인의 신체구조상 특징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머리는 앞뒤가 짧은 단두형(短頭形), 위아래가 긴 고두형(高頭形)이며 목은 가늘고 긴 편이다. 단두형 머리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데, 이는 갓난아이를 키울 때 딱딱한 방바닥에 바로 뉘어 키우는 문화 때문이라고 한다. 외국인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앞뒤가 긴 머리형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짱구'라고 불렀다. 하지만 최근 침대 문화가 보편화되며 한국인 중에도 단두형 머리가 줄어들고 있.. 2009. 6. 15.
역사학자 이병도에 대한 단상 두계(斗溪) 이병도. 한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름을 들어 봤을 역사학자이다. 한국사학계의 대부라고까지 불리우는 이병도는 1896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는데, 어렸을 적부터 영민함 때문에 유명했다고 한다. 1912년 보성전문학교 법률학과를 나와 일본으로 유학을 간 후 1919년 와세다 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그는 우리나라에서 근대 학제의 정규과정을 밟은 첫번째 역사학자가 되었다. 한국에 돌아온 이병도는 일제가 조직한 조선사편수회에 촉탁으로 참가하기도 하였고, 진단학회를 구성해 역사연구를 진행하였다. 해방 후에는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되었으며, 1960년대에는 문교부 장관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그는 노년까지 왕성한 학문적 활동을 하다 1989년에 타계하였다. 일제.. 2009. 6. 12.
당으로 끌려간 고구려인 이야기 668년 평양성이 함락되며 고구려는 멸망했다. 당은 고구려가 국세를 회복하는 것을 경계하여 적극적인 사민정책을 펼쳤는데, 고구려왕 보장을 비롯해 많은 귀족들과 백성들이 당의 내지로 끌려갔다. 이중 귀족 계급은 정치적 고려에 따라 당으로부터 벼슬을 받거나, 전장터에서 활약을 하여 자리를 잡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연개소문의 자손들은 당나라에서 몇 대에 걸쳐 무관직을 역임하였고, 고선지 같은 경우는 당나라 장군으로서 서역 원정에 나서 명성을 떨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평범한 백성들은 나름 기회도 얻고 출세도 한 지배층보다 훨씬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지금 소개하는 이야기는 중국의 "조야첨재(朝野僉載)"(7세기 말에서 8세기초에 저술)라는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중서사인(中書舍人) 곽정일(郭正一)이 평양.. 2009.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