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유승준은 입국 금지된 것이 아니다. 단지 취업비자만 허가되지 않을 뿐 관광비자는 허가가 된다. 유승준은 국내에 들어와 돈벌이를 할 수 없어서 저 난리를 치는 것 뿐이다" 하는 주장에 대해서이다.
나는 이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이는 일전에 장인 장례식으로 일시 귀국했던 그와 관련한 기사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포토뉴스/가수 유승준 입국
2003-06-26 12:40:23
미국시민권 취득에 따른병역기피 시비로 내려졌던 입국 금지조치가 일시 해제된 가수 유승준씨가 26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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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의이번 방문은 지난해 2월 병역기피를 위해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이유로 입국이 거부된 이후 16개월 만이다. 유씨는 약혼녀(27)의 부친인 충북 음성성모병원 吳모(53) 원장이 병원을 운영하다 경영난을 비관해 최근 자살하자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측은 "유씨의 약혼녀가 부친상을 당해 인도적 차원에서 입국 금지를 일시 해제했다"며 "체류 허용기간은 유씨와 협의해 장례절차 등에 필요한 만큼으로 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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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씨는 이번 방문에 앞서 청와대와 병무청ㆍ국가인권위원회 등 관계기관에 입국 허가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입국으로 유승준의 연예활동 여부는 또 한번 논란을 맞게 됐으나 국내 활동 재개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중앙일보/장정훈 기자
2003.06.25 18:30 입력 / 2003.06.26 07:58 수정
이에 따르면 당시 유승준의 입국은 인도적 차원에 따른 '입국금지 일시해제 조치'의 덕분이다. 그가 취업비자를 받겠다고 쇼를 하고 있는 것이지 관광비자 이용하면 지금도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다는 항간의 소문대로라면 법무부가 나서 특별 해제 조치 같은 것을 할 이유가 없다. 그냥 관광비자로 들어 와 장례식에 참석했으면 되었을 것이니까. 즉, 유승준은 취업비자든 관광비자든 상관없이 입국 자체가 원천 봉쇄되어 있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위와 같은 잘못된 소문이 퍼진 것은, 추측컨대, 유승준을 더욱 치졸한 사람으로 몰고 싶어했던 어떤 이의 검증되지 않은 발언이 계속 사람들 입을 통해 돌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유승준의 입국 금지가 왜 부당한가.
그는 범법 행위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병역 기피범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미국 국적을 취득한 순간 한국 국민이 아니라 미국 국민이 되었다. 미국 국민에게 한국에서의 병역을 이행할 의무는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 의무를 기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유승준에게 병역기피범이라는 개념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그가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제3국에 머물며 "군대 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열심히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내겠다"며 주변에 떠들고 다니던 사람이 미국으로 건너가 국적을 변경해 더 이상 대한민국에 세금을 내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은 세금내기 싫어 국적을 변경한 세금탈루범이 되고, 입국 금지 조치를 당해야 하는걸까. 국적 변경을 하면 해당국가와 기 소속인 간의 권리 의무 관계는 완전히 소멸, 재정립 된다. 그리고 국적 변경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행복을 위한 판단과 선택의 문제이지, 범죄 행위가 아니다. 국적 변경으로 인해 발생한 권리와 의무의 전환 역시 남이 시시콜콜 따질 사항이 되지 못한다.
그는 평소 군대를 가겠다는 식언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입국금지 조치를 당할 정도의 범죄행위가 될 수는 없다. 사람 마음은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를 수 있는 법이다. 가려고 했다가도 합법적으로 안 갈 수 있는 방법이 생기면 마음을 바꿀 수 있다. 평소 해병대 가겠다고 떠들고 다니다가 카투사를 갈 수도 있는 것이고, 죽을 때까지 대한민국 국민이 되겠다고 말하다가도 맘 바뀌면 다른 나라 국민이 될 수도 있다. 이건 '입이 가볍다'고 핀잔을 듣거나 비웃음을 당하면 될 일이지, 테러범에 준하는 입국금지령까지 당할 범죄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그가 국가를 속이고 기망했다는 말도 있다. 출국 당시 일본 공연을 목적으로 신고하였고, 보증인을 세우고 다시 들어오겠다고 각서까지 썼는데, 일본을 찍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국적을 취득해 버렸다는 것이다.
유승준이 각서를 쓴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본래 군역 미필자가 해외로 나갈 시 유승준이 한 것처럼 각서를 쓰고 보증인을 세운다(모든 군 미필 남성을 잠재적 군탈자로 간주하는 이런 규정도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는 병역 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해외로 나가 국내로 돌아오지 않을 것에 대비한 조치이다. 즉, 의무를 지닌 사람이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것을 막고자 만든 조치이다. 그러나 유승준은 병역 의무를 진 상태로 국내로 안 돌아오겠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라, 그냥 국적을 변경하였다. 이 경우는 의무 자체가 소멸된 케이스라 법적으로 국가의 소속원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의무를 수행치 않기 위해 정부를 속인 것이라 볼 수 없다.
게다가 국적 변경을 목적으로 한 해외출국의 경우 반드시 출국 목적란에 국적변경이라고 표기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행이라고 써 놓고 나가서 국적을 변경할 수 있는 것이고, 출장이라고 써 놓고 나가서 국적 변경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승준의 행위가 국가를 기망한 것이라는 해석은 과도하다. 만약 유승준이 국가를 기망했다고 보아야 한다면, 출국 목적란에 국적변경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출국한 모든 국적변경자들은 입국금지 조치를 당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 예컨대 국적을 미국으로 변경해 병역의 의무를 피한 야구 선수 백차승은 아무런 제지 없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고 있다. 연예계에는 유승준 외에도 한국에서 병역을 이행하지 않은 외국 국적자들이 많지만 그들 역시 입국 금지조치를 당하지는 않고 있다.
유승준은 국적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꾸었다. 그는 한국인로서의 무거운 의무를 내려놓게 되었지만 권리도 함께 내려놓게 되었다. 그는 한국의 선출직 공직에 출마할 수 없고, 투표권도 가지지 못한다. 아프간에서 테러범들에게 납치되었을 경우에 한국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그것은 이제 미국의 몫이다. 미국 국민이 된 유승준은 미국에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다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의 국방의 의무는 그 나라가 모병제 국가인만큼 세금으로 이행하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는 미국에서 미국식으로 병역을 이행하는 셈이니, 이 경우에도 역시 병역기피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유승준이 한국에 들어 오지 못하는 것은 괘씸죄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법전에 괘씸죄라는 항목은 없다. 유승준과 똑같은 행위를 한 다른 이들이 전혀 제재를 받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유승준에게만 이처럼 가혹한 대우를 하는 것은 법 적용의 보편성이 훼손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불행한 일이다. 한국이 법치국가를 지향한다면 마땅히 합리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