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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과 잡담

김어준에 대한 짧은 생각 2

by kirang 2012. 4. 29.

요즘 시간이 없어서 블로그에 새 글을 통 쓰지 못했다. 너무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짬을 내어 몇 자 적어본다.


얼마 전 19대 총선이 있었고,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의 승리가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나꼼수의 멤버 김용민이 있었다. 김용민은 역시 나꼼수의 멤버인 정봉주의 지역구였던 노원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8년 전 인터넷 방송에서의 막말이 꼬투리를 잡혀 낙선하고 말았다. 그리고 김용민의 과거 막말에 대한 보수 언론의 융단폭격이 가해지는 와중에 민주당에게는 적지 않은 손해가, 새누리당에는 적지 않은 이득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구체적인 수치나 통계가 제시되기는 어려운 일이겠으나, 김용민 막말 건이 선거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여겨진다. 


미리 밝혀 두자면, 나는 김용민 막말 건이 8년이나 된 이야기이고, 막말을 컨셉으로 하는 성인 대상 인터넷 방송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본인이 잘못했다고 사과까지 한 일에 그렇게까지 문제로 삼는 건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전쟁과 다를 게 없는 선거판에서 상대편이 이 건을 물고늘어지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라고 본다. 아닌 말로 새누리당 후보에게 김용민과 같은 막말 전적이 있다면 이쪽에서는 물고늘어지지 않았겠는가. 또 비록 8년 전 발언이라고 해도 김용민이 구사한 욕설 수위와 폭력성이 너무 저열해서 도저히 그에게 표를 줄 수 없다고 하는 유권자가 있다면 이 역시 타당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엊그제 김어준이 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는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김어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그가 사실은 굉장히 권위적인 사람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김어준은 쿨하게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거나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사람인 이상 누구나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김어준은 본인이 실수를 하거나 오판을 할 수 있다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다. 비키니 건으로 시끌벅적할 때에도 그랬다. 당시 주진우와 김용민은 문제가 불거지자 당혹해 하고 안절부절 못했던 모양인데, 김어준이 중간에 딱 버티고 서서 동료들의 사과를 막은 모양새다. 대신 그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의 마이크인 나꼼수를 통해 일갈했다. 자기가 죽 지켜봤는데, 성희롱의 담론이 참 낡고 후지다고. 


뭐랄까. '내가 위에서 너희들 노는 꼴을 싱긋싱긋 보면서 지켜봤다, '피해자 중심주의' 그런 거 모를 것 같냐, 다 안다, 너희들은 다 내 계산 범주 안에서 놀고 있다, 어떻게 하나 지켜봤더니, 예상을 벗어나는 게 하나도 없네, 지루하다' 이런 뉘앙스였다. 김어준은 나꼼수가 잡놈들이긴 하지만 무식하진 않다, 피해자 중심주의 다 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그가 말하는 내용은 '가해자'인 김용민과 주진우에 대한 일방적인 변호였다. 


나는 그들이 대놓고 여성들을 비하하며 노는 막되먹은 인간들은 아니라 생각한다(김용민의 옛날 발언들을 보면 이런 문제에 대한 학습은 거의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실수를 할 수는 있다. 나꼼수 멤버뿐 아니라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젠더에 대한 문제나 성 담론 등에 대해 일정한 학습이나 훈련을 받지 않으면 그게 잘못인지도 모르고, 그리고 어느 정도 지식이 있더라도 분위기에 취해 긴장을 놓았다가 아차하는 사이에 삐끗할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김어준은 자신들이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실수를 하고 사과를 한다는 것은 '가오'가 살지 않는 일이니까. 그는 가카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에 대해서도 절대 '쫄'지 않았던 것이다.


김어준은 탁월한 직관력을 가진 이 시대의 기인이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모습은 자의식 과잉의 존재라는 것. 넘치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자기객관화와 반성이 없는 자신감은 독선으로 흐를 여지가 많고, 본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매력에 이끌려 몰려든 주위 사람들까지 함께 망하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