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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과 잡담

'보수대결집' 때문에 진 것이 아니다

by kirang 2012. 12. 21.

내가 접한 데이터가 정확한 것인지는 차후에 신뢰할 수 있는 소스의 확인이 필요하지만, 인터넷 서핑 중 발견한 것은 다음과 같다.


            40대 남성  40대 여성  50대 남성   50대 여성

박근혜       40.5       47.8           59.4          65.7

문재인       59.2       52.0           40.4          34.7


이 데이터를 보면 40~50대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비율로 박근혜를 지지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50대 여성의 박근혜 지지는 그야말로 가공할 수준이다.  이 데이터가 사실이라면 '투표율이 오르면 야당에 유리하다'는 명제가 깨진 이유도 설명이 된다. 


'투표율이 오르면 야당이 유리하다'는 판단은 50~60대의 투표율이 항상 높은 수준, 즉 최대 결집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변수가 아니라 상수이고, 이들과 전체 투표율 상승은 큰 상관성이 없다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다. 투표율의 변화는 주로 변덕스러운 20~30대 유권자들에게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전체 투표율의 증가는 곧 20~30대 투표율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전체 투표율이 늘어난다는 것은 야당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는 20~30대 투표율도 상당히 상승했지만, 결정적으로 투표율 상승을 주도한 것은 예상치도 못했던 50대였다. 무려 90%에 육박하는 세대 투표율을 보였는데, 이건 정말이지 경악할만한 수치이다. 그런데 그간 어떤 선거 방송에서도, 어떤 정치 전문가도 50대의 선거율이 이렇게까지 급격히 상승할 것을 예상한 경우는 없었다. 그렇다고 50대가 유독 90%에 육박하는 투표율을 보일만큼 엄청난 세대 이슈-예를 들면 정동영의 노인 폄훼 발언 같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당최 이해가 안 가는 뜬금포인 셈이다. 


그런데 만약 50대의 투표율 상승의 실체가 사실은 '보수의 대결집'이 아니라 '50대 여성들의 대결집'에 기인한 것이었다면 어떨까. 평소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치 이슈에 소극적이고 비주도적인 그룹이어서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았던 50대 여성들이 이번 투표에 대거 참가한 것이라고 가정해 보면, 50대의 기이할 정도로 높은 투표율 상승이 이해가 된다. 원래 투표를 안 하던 사람들이 투표장으로 몰려온 것이니까. 20~30대 투표율처럼 50대 투표율이 상수가 아니라 변수가 된 것이다.


아무래도 40~50대 여성들에게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 '불쌍하고 딱한 박근혜'라는 이미지가 제대로 먹힌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나이대 여성들이 보여준 박근혜에 대한 각별한 지지율이 설명이 안 된다. 덧붙여 TV 토론에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가 박근혜를 강하게 몰아붙인 것도 일정 부분 작용한 듯 하다. 젊은 층들은 속시원하게 할 말을 하는 이정희에게 환호했지만, 정작 50대 여성들은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박근혜가 새파랗게 어린 이정희에게 속절 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며, 마치 본인이 모욕을 당한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이번 선거는 원래 야권의 시나리오대로 굴러간 선거이다. 부산에서 40% 득표에 성공했고, 전체 투표율도 기대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지역구도에 기반한 투표 성향를 어느 정도 완화시키고, 20~30대 투표율도 충분히 끌어올렸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할 법 하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구도도 아니고, 보수-개혁 문제도 아닌, 40~50대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최초의 여성 대통령', '불쌍하고 딱한 박근혜' 이미지가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작용할 줄은 몰랐던 것인데, 아마 민주당뿐 아니라 새누리당도 몰랐을 것이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불쌍하고 딱한 박근혜'라는 이미지에 홀랑 넘어간 이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간 정치판에서 소외되어 있던 40~50대 여성들의 욕망과 정서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대처하지도 못한 민주당 캠프의 실책이라고 봐야겠다. 예측 못한 것은 새누리당도 마찬가지인 것 같으니, 이쪽은 길 가다가 지갑을 주운 격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에 이름을 붙인다면 '50대 여성들의 반격' 정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의 내용은 아직 검증된 것이 아닌 가설에 불과하다. 정확한 분석은 더 구체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만 위 가설이 맞다면, 다음 대선을 대비함에 있어서 다소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보수의 대결집으로 보였던 이번 선거에서의 현상이 사실은 매우 특수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40~50대 여성들이 보여준 움직임은 '보수'라는 이념을 목표로 결집한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가 다른 사람 아닌 '여성' 박근혜였기 때문에 발생한 이벤트라는 것이고, 이는 다분히 일회적 측면이 있다. 다음 선거에서는 아마도 50대의 저러한 몰표 양상이 완화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다시 해볼만한 싸움이 될 수 있다. 한편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유권자를 공략하기 위한 전략의 사각 지대에 있던 40~50대 여성 유권자들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