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해결 문제가 심각하게 꼬여 있다. 단원고 유가족들의 요구는 유족 측 대리인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여 사건을 조사하고 싶다는 것이고, 청와대와 여당의 입장은 절대 불가하는 것이다. 유가족을 대변하는 포지션을 잡은 야당은 그 사이에 끼어서 오락가락한다. 유가족 중 한 명인 김영오씨는 수십 일간 단식을 하다가 병원에 실려 갔고, 야당의 유력 정치인 문재인이 단식에 동참한지도 이미 여러 날이 지났다. 동조 단식을 시작 정치인과 일반인들의 수도 적지 않으나 이 팽팽한 대치가 해결될 단초는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단연 박근혜이다. 유족 측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주장은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팽팽하고 비극적인 대치의 본질이 거기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본질은 유족 측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할 경우 박근혜와 청와대조차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청와대는 이게 싫은 것이다.
이 불행한 사건의 초기로 돌아가 보자. 다소 굼뜨기는 했지만 박근혜는 진도 팽목항에 찾아가 유가족들을 위로하였고,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박근혜의 지지율은 상승하였다. 국민들은 지지율을 통해 대통령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 주었다. 예상치 못했던 큰 사고가 터져 난감하기는 했겠으나 청와대 역시 오히려 대통령 박근혜의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 주고, 국민들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할 기회로 이 사건을 이용하자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 사건을 이용한 좋은 선례가 있는 터였다.
청와대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반영한 것이 TV 성명서 발표 시 연출된 대통령의 눈물이다. 청와대가 원하는 최고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대통령은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박근혜는 30여 초 동안 눈을 깜박거리지 않는 각고의 노력 끝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클로즈업 된 화면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연출을 기획한 청와대 관계자들은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은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의 구조 작업은 철저하게 실패하였고, 선박 운행 관리 감독의 부실과 부정, 재난 방지 시스템의 부실, 대응 시스템의 무능 등이 부각되었다. 결국 최상층 관리자이자 책임자인 청와대에게로 비난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세월호 사건은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긍정적 소스로서의 가치를 상실하였다. 오히려 대통령에게 부담이자 짐으로서 기능할 것이 명약관화해졌다. 동시에 이 문제를 다루는 청와대의 태도는 얼음처럼 싸늘해졌다.
세월호 문제에 대한 청와대의 지금 대응은 소극적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 TV 앞에 나와 눈물까지 흘렸던 일이었지만, 청와대는 마치 그런 일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거나 혹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인 것처럼 굴기 시작했다. 유가족들의 면담은 거부되었고, 그들의 요구는 터무니 없는 떼 정도로 치부되었다. 청와대는 조금의 미련도 보이지 않았다. 단물이 다 빠진 씹던 껌에 미련을 보이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청와대의 극단적인 태도 전환은 지지자층에게도 명확한 신호를 주었다. 사건 발생 시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치적 지향성과 무관하게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사고의 책임자들에게 분노하였다. 하지만 수 개월이 지난 지금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이 사건을 말 그대로 지겨워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더 이상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경멸과 짜증의 대상이 되었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가 팽팽한 대치 국면을 이루며 국회에서의 다른 법안 처리가 멈추고, 국정 운영에도 부담이 오기 시작하자 박근혜는 임기 초에 언급한 바 있는 적폐의 청산을 재언하며 민생을 살피는 것이 시급하다고 일갈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더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알아서 치워버리라는 이야기에 다름아니었다.
하지만 누가 치울 수 있다는 것인가. 야당은 어차피 힘이 없다. 야당 대표는 적당한 선에서 여당의 안과 타협하려 했으나 정작 당사자인 유족들이 수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당내에서의 반발과 지지층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여당이? 청와대가 버티는 이상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이 문제를 가장 간단하게, 즉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다. 대통령이 유가족들의 안을 수용하면 여당은 그에 따르게 되어 있다.
유가족들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사 대상이 곧 수사의 주체 역할까지 맡겠다는 것은 그럼 타당한 주장인가 따져볼 수 있다. 예컨대 군대에서 가혹 행위를 당하다 사망한 병사의 유가족들은 국방부에서 자체적으로 수사하겠다는 주장을 결코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유가족들은 국방부가 아니라 자신들이 고른 신뢰할 수 있는 외부 기관이나 인물에 수사권을 위탁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일단 은폐부터 하고 내부 구성원들을 보호하고 옹호하는 데 급급해 온 국방부의 행태를 감안하면 이는 매우 합리적인 반응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성역 없이 정부의 과실을 조사하기 원하며, 이는 수긍할 수 있는 요구이다. 이 사건의 해결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조사와 정의의 구현에 있다. 그렇다면 유가족들의 안을 수용하는 정치적 결단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박근혜는 적폐의 청산과 민생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의 해결은 민생이 아니란 말인가. 세월호 사건이라는 민생의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다른 민생 또한 처리되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면, 이처럼 비효율적인 국정 운영의 책임 또한 자기에게 정치적으로 이득되는 것이 없다고 마냥 외면하고만 있는 박근혜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
민생 문제 처리들이 막혀 있는 혈관처럼 정체되는 원인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적폐에 있다. 그 적폐는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에만 얼굴을 들이밀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씹던 껌처럼 뱉어 버리는 정치인의 행태.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가 한시라도 빨리 도려내야 할 적폐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