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논란에서 '뭐뭐 몰라도 사는 데 지장없다'라는 주장을 펼치는 측은 대개 그 '뭐뭐'를 익힌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당연하다. 능력이 결핍된 무능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한자 혼용에는 반대하지만, 부분적 병기에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혼용에 반대하는 이유는 가독성과 효율성 면에서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자 혼용을 할 경우 글을 쓰는 시간과 글을 읽는 시간 모두 증가하게 된다. 한자를 익히지 않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도 문제이다. 누군가는 글을 아예 발음조차 못하게 만들어 버릴 테고, 이건 읽는 이에게 굉장한 좌절감을 줄 것이다. 이에 반해 괄호를 사용한 한자 병기는 적어도 한자 모르는 사람이 해당 단어를 소리내어 읽고 짐작은 할 수 있게 해 준다.
문제는 그럼 어디까지 병기하느냐인데, 당연히 모든 한자어를 다 병기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글의 의미 전달이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되느냐에 있다. 한자 없어도 문맥상 의미 전달에 문제가 없는 경우는 당연히 병기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학술적인 글을 많이 다루는 사람들은 고급 지식을 다룰 때 한자 표기가 필요한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공감할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글에 순우리말을 쓰는 게 바람직하고, 또 권장해야 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순우리말의 사용이 한자어 사용보다 비효율을 초래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고고학 용어의 경우 과거에는 주로 한자어를 썼지만 최근에는 이걸 순화시켜 보자고 우리말 식으로 바꾸고 있다. 예를 들어 광구호(廣口壺)는 '입큰단지', 혹은 '아가리큰항아리'가 되고, 대부장경호(臺附長頸壺)는 '굽다리목긴항아리'가 되는 것이다. 타날승석문단경호편(打捺繩蓆文短頸壺片)은 '삿무늬두드림목짧은항아리조각' 정도가 되겠다. 직관적이고 이해하기도 쉽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그런데 순우리말로 바꾼 단어는 한자어에 비해 확실히 길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광구호'는 3글자에서 4글자 내지 7글자로, '대부장경호'는 5글자에서 8글자로, '타날승석문단경호편'은 9글자에서 14글자로 글자수가 늘어났다. 단어가 길어진다는 것은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부정적 요소이다. 특히 본문 중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단어라고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한자어의 장점은 '축약성'이고, 이것이 나름대로 유용성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가급적이면 순우리말을 만들어내고 또 사용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자어를 지나치게 터부시하여 사용의 편의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곤란하다. 어차피 한국어의 상당 부분은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는게 사실인만큼 순우리말을 권장하더라도 필요에 따라 한자를 병용하는 정도의 타협까지 터부시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