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채널인 TVN에서 방영되는 강연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에서 사고가 터졌다. 최근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최진기라는 사람이 '어쩌다 어른'에서 한국 미술사 강의를 하였는데, 그 내용이 그야말로 오류 투성이었다는 것이다. 최진기가 저지른 오류 내용은 관련 분야 전공자인 황정수가 쓴 "tvN 미술 강의로 본 인문학 열풍의 그늘"이라는 글을 통해 상세히 지적되었다.
http://www.koreanart21.com/review/artWorldStory/view?id=5883&page=1
단순한 실수 정도는 전문가들도 종종 한다. 나 역시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한 적이 있고. 하지만 이건 심했다. 최진기는 멀쩡히 살아 있는 현대 미술가의 작품을 장승업의 작품으로 소개하며 이것이야말로 조선화의 정수라며 떠들어댔고, 방청객과 방송 패널들은 마냥 감탄사를 연발하였다고 한다.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 같은 상황이다. 그런데 이게 어쩌다 발생한 단발성 사고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이런 일은 너무도 비일비재하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자격 미달의 인물들이 대중을 상대로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떠들고 있고, 수많은 오류가 아무런 여과 없이 '명백한 사실'인양 사람들의 머릿속에 흘러들고 있다. 선무당이 설치다가 사람 잡는 꼴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 대중과 방송이 인문학을 철저하게 '인스턴트'적으로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문학이 상품화되는 것이야 꼭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인스턴트'적으로 소비하다보니 '짝퉁'이 판을 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인문학'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그럴듯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향유하고 싶지만 이를 위한 지적 훈련은 되어 있지 않고, 그렇다고 인문학 공부를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정도의 수고는 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설탕과 조미료를 잔뜩 뿌린 '인문학 비스무레한 무엇'을 팔아치우려는 자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게 잘 팔리다보니 미디어 역시 '짝퉁'을 선호하게 되었다.
찾아보면 우리나라에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방송국은 그런 전문가를 발굴하여 섭외하지 않고, 학력이나 경력 상으로 미술사와 아무런 관계도 없도 사람을 데려다 미술사 강의를 시켰다. 방송국이 필요했던 것은 진짜 전문가가 아니라 전문가 연기를 능숙하게 하는 '배우'였기 때문이리라.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작 전문가들은 전문가 연기를 잘 못하였기 때문에 섭외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소외되었다.
어떤 이들은 '인문학 열풍'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대중 매체를 통해 열심히 소비되고 있는 것은 인문학이라기보다 그냥 패션 같은 것이다. 그나마도 짝퉁이라는 것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