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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노트

문제의 드라마 "설강화"에 대한 단상

by kirang 2021. 12. 21.

 2회까지 시청. 내가 본 바로 이 드라마에서 일각에서 제기하는 '안기부 미화'나 '민주화 운동 폄훼'의 의도성은 발견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비난 포인트인 '운동권 학생이 사실은 간첩'이었다는 설정도 실제 드라마를 보면 좀 다르다. 안기부 요원들에게 총을 맞고 쫒기다가 우연히 모 여대 기숙사에 뛰쳐 들어온 북한 간첩(남주인공)을 여주인공이 운동권 학생인 줄 '착각해' 도와 주고, 그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전개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어쨌든 다른 이야기다. 간첩이 운동권 학생으로 위장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실제로는 그냥 고시생으로 위장), 여주인공이 간첩을 운동권으로 착각한 것이니까.

  '안기부 미화'라는 의도성을 의심하는 게 설득력이 없는 건, 이 드라마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무려 '간첩'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쇼킹한 건 오히려 이쪽이다. 잘생기고 멋진 남자 주인공이 그냥 대놓고 간첩으로 나온다!! 안기부 미화는 커녕 간첩을 미화했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다. 80년대에 이런 설정의 드라마 찍었다가는 아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안기부에 끌려갔을 게다.

  드라마 제작진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미 커다란 성공을 거둔 "사랑의 불시착"을 염두에 두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남한의 여성과 북한 군인의 위험하고도 금지된 사랑이라는 소재가 '먹히는 아이템'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불시착"보다 비극성을 더 강화하려면, 남북 관계가 훨씬 험악했던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계산도 했을 법하다.

  이 드라마에서 운동권은 시대 분위기를 내는 소재 정도로 가볍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운동권을 비웃거나 폄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학생 운동을 하는 여주인공의 오빠에 대해 '멋지다'는 수사가 등장하고, 명백하게 운동권인 주인공의 룸메이트 역시 긍정적인 인물로 표현된다. 또 안기부가 악명만큼 사악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집단 정도로는 묘사된다.

  2회까지의 내용만으로 보면 시대를 다루는 태도나 방식이 부박하고 낭만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판이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기 위한 음험한 의도나, 역사 왜곡의 혐의를 들이대는 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고 해도 상대를 악마화해 존재를 말살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욕을 해도 비평의 영역에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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